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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주 Aug 28. 2020

채식연습

천천히 즐기면서 채식과 친해지기




나는 요리사가 아니다. 17년간 순식물성 한약재로 한약을 처방하는 한방채식한약국을 운영해온 한약사이고, 채식운동가이다. 언뜻보면 주방과 전혀 거리가 먼 하루를 살아가지만, 무엇보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나서, 또는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 빡빡한 일거리에 치이는 오후에, 몸과 마음이 다 늘어지는 주말에 요리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쉼이고 위안이기 때문이다. 또한 내 요리를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인생의 깊은 행복과 위안을 준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정성스런 요리를 먹일 때의 뿌듯함은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기분마저 든다.      




내가 17년 전 처음으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그저 마음을 좀 평안하게 가라앉혀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채식을 몇 주 정도 해보다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채식이 어렵지 않았다. 그다지 고기에 대한 갈망이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말 특별식으로 함께 먹는 피자나 햄버거, 삼겹살 정도는 어렵지 않게 포기할 수 있었고 마음이 점점 차분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예상했던 몇 주가 지나자, 조금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00일 쯤 지나서 뜬금없이 내 속에서 메시지가 들려왔다. “채식한약국을 열면 어때? ” 녹용, 사향, 웅담 같은 동물성 약재 대신 채식식단을 권하면서 식물성약재로만 처방하는 한약국을 열어보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이 생각이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나는 한방채식 한약국을 열었고, 나의 본업인 한약사로서의 활동 못지않게 채식 관련된 활동이 많은 별난 삶을 살게 되었다. 여러나라를 다니며 먹거리 관련된 강연을 하고 유명인사들과 네트워킹을 하는 특별한 축복이 내 삶에 빛처럼 스며들어왔다. 또한 전세계의 유명한 채식레스토랑을 방문하거나 채식관련된 행사에서 다양한 채식요리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요리들은 고기가 빠진 풀때기 밥상이 아니었다. 마치 채식의 대륙을 탐험하는 여행가가 된 것처럼 새로운 문화적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요리도 다 있구나, 이런 식으로 조리하는 방법도 있구나, 이런 맛도 있구나...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스펙터클 무비같은 세계를 만날수록,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이렇게 맛있고 아름다운 채식의 세계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게 되었다.      


나는 점점 전에는 먹어보지 않았던 다양한 채식재료들을 여러 가지 조리방법으로 실험하며 탐험하기 시작했다. 또한 단순한 요리를 넘어  음식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다양한 공부들을 깊이있게 접해보고자 노력했다. 인도 전통의학인 아유르베다의 식이요법과 일본의 니시의학, 영국자연학교의 섭생이론, 하와이자연학교의 야생의 지혜 워크샵, 콜린캠벨 박사의 자연식물식을 공부하면서 영양학적 체계를 보완했고 하버드의대에서 열린 생활습관의학 프로그램과 요리의학 쉐프코칭(Culinary Medicine Chef Coaching) 클래스를 통해 전문가들과 소통하면서 먹거리를 통한 치유방법론을 정립했다.     



나는 각각의 방법론들이 이론적으로 옳고 가치있다고 믿었지만, 인간본연의 행복을 채우기에는 무언가 부족하지 않을까 다시 고민이 되었다. 먹는다는 것이 단지 한 끼의 식사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이자, 자아를 규정짓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는 너무 가치지향적인 삶으로 우리의 자아를 밀어붙이느라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입맛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위안을 받으며 사랑을 표현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반복하고 있는 습관과 취향들이 사실상, 우리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전수받고 학습되어온 문화패턴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는 가치와 일상의 간극을 좁히기 위하여, [채식연습]을 집필했다. 이 책의 도입부에는 독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몇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내가 늘 먹는 음식들, 내가 의존하고 있는 식습관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고, 지금 내 몸의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지 대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며 음식과의 관계설정을 다시금 조명해볼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여기에 전세계의 다양한 섭생론과 자연의학이론을 통해 정립된 건강한 식단에 관한 제안들을 덧붙였다.      



이 책에 수록된 100여가지의 레시피들은 독자들에게 채식을 하는 본연의 즐거움과 행복을 전달하고자, 시각적으로 보다 아름답게, 미각적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어떤 이들은 아주 맛있고 새롭다고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성에 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요리의 맛에 상관없이 누구나 다 채식요리를 한번쯤은 이렇게 시도해보고 싶다고 느끼기를 희망한다.      


 이 책을 통하여 채식의 세계가 누구나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여행지처럼, 설레는 감정이 들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채식만해도 충분히 건강하고 맛있게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 채식인으로 살고자 하는 분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하루만 채식을 해도, 1년에 1인당 나무를 15그루나 심는 효과와 맞먹는다. 또한 채식을 하면할수록 덜 먹고 덜 버리는 삶은 차차 스며들어오게 될 것이다. 부디 독자분들이 먹고사는 일에 대하여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보다 맛있고 멋지게 즐겨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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