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플라이

by 파롤



“집이 어디야? 구경 좀 시켜줘.”

택시에서 자신을 따라 내린 창윤의 말을 듣는 순간, 승희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바로 그때, 눈앞으로 지나가는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택시!!!”


승희는 다급히 택시를 잡아 세워 창윤을 뒷자리에 밀어 넣었다.


“팀장님, 빨리 들어가세요!”


차문을 세차게 닫아버린 뒤, 승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혹시라도 창윤이 따라올까 봐 무서워, 어딘지도 모를 방향으로 한참을 내달렸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발걸음이 무거워졌을 때에야 겨우 멈춰 설 수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입사 첫날부터 탕비실에서는 여자들의 뒷담화와 욕을 견뎌야 했고, 퇴근 후에는 남자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이렇게 도망치듯 달리고 있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 순간, 문득 재희 생각이 났다. 승희는 시계를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결국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울리고—


“승희야!!!”


반가움과 걱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목소리였다. 그 한마디를 듣자마자, 승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응…”


“무슨 일 있어? 아 맞다, 오늘 첫 출근 했지?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승희는 눈물을 닦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재희가 너무 걱정하는 게 느껴져서, 목소리에서만큼은 눈물기를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응… 오늘 첫 출근했는데… 여기 힘드네. 신고식을 너무 험하게 해.”


애써 웃으며 말하자, 이번에는 재희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이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퇴근한 거야? 고생했네… 어떻게, 언니가 내일 거기 출동 한 번 할까? 누가 입사 첫날부터 직원을 이 시간까지 붙잡고 있어!!”


승희는 그 말에 또 눈물이 났다.


첫 회사에서도 재희는 늘 그랬다. 승희가 사람들에게 당할 때마다 언니 행세를 하며 대신 복수해주곤 했다. 마치 잔다르크처럼.

“잔다르크는 화형 당했대. 너 앞으로 그러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승희는 종종 그렇게 말했다. 고맙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늘 강한 척했지만 재희는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더 걱정됐다. 그러면서도, 그런 재희에게 자꾸만 기대게 되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첫날이라… 환영식 해준다고... 참! 나 오늘 노래방 갔는데 사람들 노래 엄청 잘하더라. 우리 마지막으로 노래방 간 게 언제지?”


승희는 괜히 딴청을 피우듯 말하며 집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아! 근데 우리 그거 합창했던 거 생각난다. 버터플라이!”


승희가 웃으며 한 소절을 불렀다.


“눈부신 사람아 난 너를 사랑해~~”


그러자 재희가 기다렸다는 듯 뒷소절을 받았다.


“널 세상이 볼 수 있게 날아 저 멀리!”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또 기억이 나네?”


재희가 웃으며 말하자, 승희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우리 다음에 만나면 노래방이나 가자. 내가 쏜다!”


“좋아! 그럼 나는 닭갈비 쏜다!! 토핑 왕창 시켜!”


승희는 웃으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길고 힘들었던 하루가 재희와의 통화 한 번에 눈 녹듯 사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자정.


승희는 샤워기를 틀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자, 하루 종일 몸에 들러붙어 있던 피로와 공포가 조금씩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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