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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별 May 30. 2023

순례길 아홉 번째 이야기

부엔 까미노, 순례자를 향한 환대

구간 : 토레스 델 리오 - 로그로뇨
거리 : 20.2KM
소요 시간 : 5시간 30분


  Buen Camino! 순례길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스페인어는 역시 인사말인 '올라' 혹은 '부에노스 디아스'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인사말은 일상적인 인사이기 때문에 굳이 순례자가 아니더라도 스페인 여행 중에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인사말만큼이나 순례길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은 'Buen Camino'이다. '좋은'을 뜻하는 'Buen'과 '길'이라는 뜻의 'Camino'가 만나 '좋은 순례길 되세요' 내지는 '무탈한 순례의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정도의 인사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다양하다. 수백 년 동안 순례객이 다녀간 길 위에는 많은 마을들이 세워져 있고, 마을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바, 마켓, 알베르게 등 편의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마을 안팎에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정표가 준비되어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을 이용하기에 길을 잃는다 해도 쉽게 길을 찾아갈 수 있지만, 스마트폰이 상용화가 되기 이전에는 순례길에 대한 책자, 그리고 그 이전에는 먼저 간 순례자들이 남겨놓은 표시를 보고 따라가야 했다. 현재도 많은 순례자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큰 마을을 빠져나가거나 여러 방향으로 난 갈림길에서는 길 위의 표시를 보고 따라가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방향을 알려주는 여러 표시들

  마을과 길 위에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순례자들을 반기는 것만큼,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순례자들에게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건넨다. 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마을 주민들에게 인사를 받는 것이 낯설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갈 텐데 그들을 만날 때마다 좋은 길이 되라는 인사를 건넨다는 것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경우에는 우리 지역이 갑자기 관광지화가 되어버려 내가 그동안 누렸던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역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 대한 괜한 반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객에 대해 어떤 축복의 인사는커녕, 그들을 반기는 마음조차 가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수많은 순례자들이 마을을 지나갔을 것이고, 그들은 순례자들의 발소리와 함께 자랐을 것이기에 자신의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낯선 존재가 아닐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인사는 어떤 의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그들의 표정에 있었다.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환하고, 반기는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부정적인 표정도 섞여있었다. 낯선 곳에 와서 순례를 행하는 이들을 향한 인사는 환대의 말과 함께 환대하는 표정을 보여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어떤 사람은 웃으면서, 어떤 사람은 무표정으로, 어떤 사람은 짜증 난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부엔 까미노'를 외쳤다. 말이 좋아 의무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표현했지, 기계적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다.


  표정과 인사말의 괴리감에서 질문이 생겨났다. 굉장히 불편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부엔 까미노'라고 말해주는 주민들은 어떤 마음가짐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밝은 표정이지만 우리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말하는 '부엔 까미노'와 귀찮은 표정이지만 순례자를 존중하는 사람이 말하는 '부엔 까미노'에는 다른 점이 있을까.

벽화와 돌탑은 만국 공통?

  환대의 완성은 궁극적 환대이다. 환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타자는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그의 포로가 된다. 그러므로 타자로서 다가오는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내가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그것이 데리다가 말하는 환대의 궁극, 이상이며 예수가 말하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까지 대접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타자가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 없으므로 타자를 향한 환대, 절대적인 환대는 무조건적이며 반드시 해야 하는 법칙인 것이다.


  나는 환대의 주체가 되고, 또 환대의 객체가 된다. 나의 인생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다가올 때는 환대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세계에 들어갈 때는 환대의 객체가 된다. 윤리학의 다면적인 시선에서 인간이 가지는 양면적인 위치는 절대적인 정답을 내릴 수 없게 만들뿐더러 그것을 위한 오답 역시 만들 수 없게 한다. 비록 지역 사람들이 던지는 '부엔 까미노'가 불편한 표정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리고 '부엔 까미노'라고 말하며 속으로는 불편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말하는 이들은 순례자에 대한 절대적인 환대를 학습하고 답습한다. 우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을지언정, 우리가 순례자인 이상 우리에게 그들은 끝없는 환대를 보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럴 경우, 그들이 보이는 환대는 인간의 기준에서 내릴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판단, 저 너머에 있다.


"부엔 까미노." 이 말은, 이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절대적 이방인인 순례자들에게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어야 하는 의무이자 법칙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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