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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Willow Mar 01. 2018

홋카이도의 겨울놀이

수건막대 만들기와 비누방울 얼리기

홋카이도 시골마을의 아침

오전 7시, 알람소리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스물스물 이불 속으로 스며드는 한기가 평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바깥 온도를 확인해보니 영하 17도. 잠이 확 깬다. ‘오케이, 오늘이다!’

홋카이도에서 영하 15도 이하로 내려가면 하는 놀이, 바로 물에 적신 수건 돌려 수건막대를 만들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울도 얼마 안남았는데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수건막대와 비누방울 얼리기


서둘러 아침을 차리고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켰다. 수건막대로 쓸 수건을 준비해두고, 혹시나 해서 비누방울 액체도 만들기로 했다. 홋카이도 겨울에 하는 또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비누방울 얼리기이다. 보통 비누방울을 불면 몇  초 뒤 방울이 터지지만, 정말 추우면 비누방울이 터지기 전에 그대로 얼어버린다. 터지지 않고 공중을 비행하는 비누방울을 입으로 바람을 불어 다시 날리고 주고받기를 하며 노는 것이 이 곳 아이들의 또 하나의 겨울놀이.  홋카이도에서 좀 논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통상 수건막대는 영하 17도, 비누방울은 20도로 알려져 있으니 아마도 오늘은 비누방울은 어려울지도. 뭐, 이번에 안되면 다음번에 사용하면 되니까, 하는 생각에 물 5: 세탁풀 4: 주방세제 1 을 섞어서 순식간에 비누방울 액체를 만들었다. 슬라임매니어 우리딸 덕분에 세탁풀이 상비되어 있는게 이럴땐 감사하다.


준비를 끝내고 창밖을 보니, 저런 벌써 햇살이 예사롭지 않다. 11월부터 3월까지 5개월간이 겨울인 홋카이도라지만 2월 말쯤 되면 해의 기운이 꽤나 강해진다. 밤에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도 아침에 해가 나면 1미터는 족히 쌓인 눈의 표면이 조금씩 녹기 시작하고, 지붕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을 타고 똑똑 물이 녹아 떨어지기도 한다.


“얘들아, 서둘러! 해 높아지기 전에 얼른 나가자!”

“엄마, 너무 추워요, 저희가 창으로 볼테니까 엄마가 밖에서 하시면 안되요?”

엄마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애들은 어쩐지 심드렁. 하긴 겨울에 홋카이도 올때마다 매번 하는거니 이젠 별로 신기할 것도 없겠지. 게다가 밖이 오죽 추운가. 잠 덜 깬 아이들을 혹한의 추위로 내모는건 쉽지 않은 미션이다.

그래도 좋다는 엄마 장단 좀 맞춰주면 안되냐, 속으로 투덜 거리며 일단 비누방울 액체를 들고 옷을 껴입고 혼자 현관 밖으로 나섰다. 맑고 투명하고 아찔한 아침추위에 남아있던 잠이 완전히 사라진다. 아까보다 조금 올라 현재기온 영하 16도. 좋아, 해보자. 빨대를 액체에 꽂은 다음에 후~ 하고 부니 귀여운 비누방울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다행히 액체 배합은 대성공! 그러나….. 몇 초 지나지 않아 방울들이 다 터져버린다. 집안에서 창을 통해 보던 녀석들, 고개를 좌우로 흔들흔들, 그럴 줄 알았어요, 하는 표정으로.


역시 더 추워야 하는구나,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이왕 시작한거 비누방울이나 잔뜩 불지 뭐.  파란 하늘, 하얀 눈을 배경으로 공중에서 날아오르다가 사라지는 무지개색 방울들은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즐거운 놀이. 그나저나 나는 어쩌다 혼자 노는 신세가 됐는지.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우리집 꼬마들, 몇 년 전에는 그렇게 신나서 환호하던 순수의 결정체였던 우리 애들 맞나. 아, 너무 많이 커버렸다.


비누방울 얼리기 놀이는 다음을 기약하며 일단 집으로 들어가 액체는 찬장에 고이 올려두었다. 그러는 새 아이들 친구들이 도착했다. 엎어지면 코닿는 학교인데도 같이 가자고 매일아침 우리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네다섯명이 입을 모아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서둘러 수건에 물을 적셔서 가지고 나갔다. “얘들아~ 우리 수건막대 만들자!”

역시 홋카이도 아이들, 이게 뭔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수건 좀 더 얇은거 없어요?”

“좀더 차가운 물에 적시는게 나을걸요.”

“지금 기온에서 이거 얼리려면 한 10분은 돌려야해요.”


녀석들, 다들 전문가마냥 한마디씩 한다. 그러고는 한명씩 교대로 적신 수건을 손에 들고 뱅글뱅글 돌린다. 어떤 아이는 머리 위에서 높이 돌리고, 어떤 아이는 옆으로 잡고 빠른 속도로 급회전. 돌리는 방법도 천차만별이구나. 이제 갓 1학년이 된 옆집 꼬마녀석은 너무 열심히 돌리다가 그만 벌러덩 자빠지기까지 했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틈에 가방을 짊어지고 나와 교대로 수건돌리기에 참여.


열심히 수건을 돌리는 동네 아이들


그렇게 하길 한 5분 했나, 오, 수건이 점점 딱딱하게 얼기 시작하고 있었다. 좀더 빠른 속도로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수건은 딱딱한 막대로 변신. 수건막대 만들기 성공!

신나는 엄마, 흐뭇한 표정의 아이들. 이거 뭔가 좀 뒤바뀐거 같은 느낌.  


아이들 학교 늦을새라 서둘러 인사하고 배웅한 뒤 나는 수건막대 기념촬영. 아이들이 모아놓은 고드름 더미 옆에 막대를 세우고 또 찰칵. 막대수건과 고드름, 왠지 매우 아방가르드적이구나.  이렇게 또 홋카이도 겨울의 새아침이 시작됐다. 한달남은 홋카이도 체류기간동안 영하 20도의 아침이 꼭 한번은 찾아왔으면 좋겠다.

‘그래, 비누방울 입으로 불어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나 시합하면 재미있을꺼야! ‘

이번엔 분명히 애들이 호응해줄 것 같은 예감.


수건 막대 만들기 성공!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고드름 더미, 왼쪽에 함께 세워놓은 것이 수건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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