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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업하는 회계사 K Mar 01. 2020

눈이 나빠 처음 안경을 맞췄을 때를 기억하세요?

회계라는 안경과의 만남


칠판을 보면 글씨가 뿌옇게 보였다. 그러다 눈을 마구 찌푸리면 다시 선명히 보였다.


엄마, 칠판 글씨가 보이긴 하는데요, 눈을 가늘게 떠야 잘 보여요.


몇 달을 불편한 채로 수업을 듣다가,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어머니께 처음 꺼낸 말이다. 늘 좌우 양쪽 시력이 1.2 정도였던 나는 눈이 나빠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몰랐다. 어쩌면 내가 눈이 나빠졌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약간 부끄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를 따라 안과에 들러 시력을 재고 나서, 1층에 있는 안경점에서 안경까지 맞췄다. 그 안경점의 이름은 '서독 안경'이었다. 서독의 앞선 기술력이 들어간 것만 같은 안경을 처음 썼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개안"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몇 달간 뿌옇게만 보였던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었다. 심지어 정신까지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 14살이 되던 해이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때가 마흔이니 그 이후로 25년 넘게 나는 안경과 함께 했다. 중간에 컨택트 렌즈나 라식 수술의 유혹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나는 안경이 편했다. 나에게 있어 안경은 세상을 가장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도구였다.




나는 물리학도가 되고 싶었다. 이유는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 당시에는 물리라는 학문이 그저 좋았다. 노벨상도 타고 싶었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설레지 않는가? 한국 최초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될 줄 알았다. 나는 그렇게 큰 고민도 없이 또 아무 생각도 없이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나는 다능인(multipotentialite)이었다. 이곳저곳에 그냥 관심이 갔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영이라는 것이 늘 궁금했다. 경영학과는 심지어 건물도 좋고 강의장도 최신식이었다. 물리학과 수업시간에는 칠판에 수식이 난무했다면, 경영학과 수업은 간결한 PPT 슬라이드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있어 물리는 아름다웠고, 경영은 멋져 보였다. 경영을 더 알고 싶었다. 하지만, 늘 이과생으로만 살아온 나는 기초지식이 너무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주워들은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회계는 경영의 언어다!



그렇지! 영어를 배우면 외국사람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듯이, 회계라는 것을 배우면 경영을 더 쉽게 알 수 있겠구나!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했고, 그 단순한 생각이 아주 정확했음을 알아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계를 익히고 나서 나는 "개안"을 했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다른 경영학 수업들 까지도 덩달아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져서 학점을 받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경제신문도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계라는 언어가 주는 선물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회계의 매력에 빠진 나는 여러 해 시험을 준비한 끝에 회계사가 되었고, 이를 업으로 한 지도 13년이 되었다. 소위 13년 차 회계사다. 자칭 다능인인 내가 이렇게 한 가지를 오랫동안 한 걸 보면 회계와 나의 궁합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다.




13년간 회계사 생활을 하고 나서 다시금 물어보게 된다.


회계는 경영의 언어인가?


여전히 나의 답은 "그렇다"이다. 하지만, 뭔가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장들을 만났지만, "회계는 경영의 언어"라는 말에 감동받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회계가 경영의 언어라는 설명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와닿아하지 않았다.


특히, 사장들은 실전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장에게 회계는 왜 필요할까? 사장에게 회계가 필요하기는 한 걸까? 회계를 잘한다고 사업을 잘하는 것은 아닌데... 만약, 그렇다면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들이 사업의 달인이 되어 있어야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장에게 있어 회계란 무엇일까? 이런 생각들이 늘 머릿속을 맴돌다가 그 옛날 나의 눈을 밝혀준 "안경"이 떠올랐다. 그렇지!



회계는 내 사업을 바라보는 가장 편한 안경이다!


사업을 바라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맨 눈으로 보는 것이다. 내가 타고난 사업가이거나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업에 필요한 지식들을 체득한 경우에는 사업을 맨 눈으로 바라보아도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직감과 실질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재무제표를 보지 않고도 회사의 실적을 동물적으로 아는 사장들이 실제로 있다. 그런 분들에 회계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은 서로 간의 시간낭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장들은 사업이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했는데도 집에 가져갈 돈이 없는 경우도 많다. 더 암울한 것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내 사업체를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더 열심히 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뿌옇게만 보인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안경이지 않은가?


사장에게도 안경이 필요하다. 내가 아는 한 그 역할을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회계"이다. 내가 중학생 때 안경을 끼고 순식간에 "개안"을 했듯이, 사장들이 최소한의 회계지식(이를 "돈버는 회계"라고 부르겠다)만 익히면 불과 며칠 만에 내 사업을 편안하게 쳐다볼 수 있다. 회계학이라는 학문은 공부의 범위가 상당히 넓지만, 사장에게 필요한 "돈버는 회계"는 배울 게 그리 많지도 않다. 아마 가성비 최고의 공부가 될 거라 자부한다.




나는 회계사이자 사업가이다. 회계사라는 업을 하고 있지만, 회계법인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한다. 사업가인 나에게 있어 회계란 무엇인가?


나에게 있어 회계는 서독 안경점의 안경이다!


'여러분의 손에도 기술력 최고의 서독 안경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은 바람으로 이 책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디 "돈버는 회계"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성취하는 사장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아니 단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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