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최전선은 접전이 끊이지 않는 곳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 저와 제 마음이 주먹다짐하는 곳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중에서
은유작가님의 책에서 이 구절을 만났을 때 내 마음의 최전선은 어디인지 생각해 봤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에서 나와 내 마음이 주먹다짐하는 곳. 거기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미리야, 제발 생각 좀 하고 해~~”이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도, 입 밖으로도 내뱉는 말이다.
당장 오늘도 도서관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저녁거리를 샀다.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였고, 두부, 애호박, 바지락만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산대에는 대파, 양파(중), 무, 당근, 고등어, 삼겹살, 굴소스 기타 등등이 놓여 있었다. 계산대에서 바코드에 찍혀 나오는 것들을 가방에 담으며 그제야 이 모든 것들을 다 들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었고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넣은 후 나머지 물건들은 박스에 담아서 앞뒤로 짊어지고 20분을 끙끙대며 집까지 걸어왔다. 걸어오는 내내 시야를 가로막는 대파와 무거운 무를 째려보며 “미리야,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아~”를 몇 번이나 외쳤다. 그리고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생각이 났다.
‘아, 3만 원 이상 사면 배달되는데…………..’
나는 왜 이모양일까,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럴까.
40대가 되어서도 매일 이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5년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사한 후 쉬고 싶어 하는 나에게 남편이 제안을 했다.
공무원시험 준비를 한다면 1년을 기다려주겠다고.
40살이 넘어 갑자기 공무원? 인가 싶겠지만 남편은 그동안 끊임없이 나에게 공무원 시험을 권했었고, 그때마다 회사일을 핑계로 도망을 갔는데 이제는 도망갈 곳도 없으니 이참에 이 핑계로 쉬어보자 아니 공부 그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어 갔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공무원이 아니니 공부가 될 리가 없고, 남편에게 큰소리쳤으니 공부는 해야겠고, 공무원이 돼야 하지만, 되고 싶지 않은 나는 매일 나와 싸우고 있다. 그러다가 이럴 때는 마인드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니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단기간에 집중해야 하니 빠르게 집중할 수 있는 방법 영상을 찾아본다. 그러다 공부를 왜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인생에서 공부가 필요한 이유 영상을 찾아본다. 그러다 자꾸 침대에 가고 싶은 마음을 참기 위해 인생에 한 번은 치열하게 살아봐야 한다는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본다. 이제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다시 공부에 집중한다. 한국사 강사님이 강의를 너무 잘하신다. 이 분은 어떤 분인가 궁금해져 강사님의 SNS와 유튜브를 찾아본다. 유튜브에서 역사 강의를 듣는 것도 공부니 죄책감 없이 듣다가 관련된 영상들을 이어서 찾아보다 보면……하루가 지났다.
아, 안 되겠다. 집에서는 도저히 집중이 안 돼서 도서관으로 갔다. 하지만 화장실에 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책가방 가득 소설책들을 빌려온다. 이 패턴을 반복하며 나는 매일 나와 싸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기로 했다.
첫째,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한다.
둘째, 공무원이 되지 않기 위해 딴짓을 한다.
이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쓴다면,
시험에 떨어졌을 때 “그래, 미리야.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위해 네가 비켜주는 게 맞지, 그리고 솔직히 열심히 하지 않았잖아. 당연한 결과야. 하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그만 놀고 일할까?”라고 나를 지킬 수 있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역시 넌 될 놈이야. 거봐, 온 우주가 널 돕는다니까. 그동안의 너의 시간이 지금의 너를 만든 거야. 고생했어 잘했어”라고 나를 칭찬해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맘 편하게 공부하다가 책을 읽다가 다시 공부하다가 책을 읽는다.
나에게 자존감을 지킨다는 건 자기 합리화를 기가 막히게 하면 되는 일인 것 같다.
갖가지 핑계를 자존감 지키기라고 과대 포장하는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동의는 필요 없다.
오직 나만 설득하면 되니까. 그래서 내가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은 절대 비밀이다.
끙끙대며 이고 온 재료들 덕분에 오늘 저녁은 된장찌개에 대파를 듬뿍 넣었고, 무생채에, 고등어구이까지 온 가족이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맛있다 맛있다를 외치며 밥을 2그릇씩 먹는 아이들을 보고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역시 끙끙대고 사 오길 잘했어’
나는 영영 생각하며 살기는 글렀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