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 중 “대~~단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의 출중하게 뛰어날 때 쓰는 ‘대단하다’가 아닌 ‘참으로 대~~단 하십니다~~’라며 상대방을 비꼴 때 주로 사용된다.
남편 퇴근 후, 5분 만에 “대~~단하다”를 2번이나 들은 대단한 날이 있었다.
대단한 양미리 1탄.
남편이 회식으로 늦게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녁을 먹은 후 아이들과 생라면을 뜯었다. 건강주의자 남편씨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 중
NO 1.은 라면이고, 그중 top of the top은 생라면이다.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중 top도 생라면이기에 오늘 같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양심 있는 엄마인 나는 아이들에게 저녁을 먹인 후에 생라면을 뜯었고 2개를 뜯어서 나 혼자 1개를 다 먹고 싶었지만 우리의 건강을 위해(?) 1개로 나눠 먹었다. 어렸을 때도 부모님 몰래 하는 일이 제일 신난 것처럼 아이들과 나는 아빠 몰래 생라면을 수프에 찍어 먹으며 킥킥 거리는 이 시간이 너무 신났다.
생라면을 다 먹은 후, 완전범죄를 해야 하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라면 봉지를 A4종이에 감싸서 검은 봉투에 넣은 후 절대 휴지통에 넣으면 안 되고 바로 종량제봉투 중간쯤에 쑤셔 넣어야 한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라면 부스러기를 청소기로 밀어준 후 청소기 먼지함까지 비우면 완벽..........완벽............해야 되는데 먼지함이 안 빠져서 낑낑 대고 있는 그 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띡띡띡띡" 현관문 비번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급기야 바닥에 대고 먼지함을 쿵쿵 치고 있는데
“ 양미리 뭐 하냐. 사고 치지 말고 딱 멈춰라”
“ 그게 아니고 청소하고 먼지함 비우고 있는 거야. 근데 안 빠지네….아..얘가 왜 이러지”
“ 그니까 네가 갑자기 청소기 먼지함을 왜 비우냐고. 생전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거는 사고를
쳤다는 거지. 괜히 고장 내지 말고 이리 내”
“ 아니, 내가 해볼게. 내가 할 수 있어”
“ 이리줘”
하며 남편이 먼지함을 여는 순간 후드득 떨어지는 라면 부스러기들과 수프의 파편들……
“ 대~~단하다 양미리”
대단한 양미리 2탄
남편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라면 부스러기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쪼르르 달려온 첫째가 아빠에게 말했다.
“ 아빠 ~ 엄마때문에 챙피해 죽겠어~”
“ 왜 또? 너네 엄마 또 무슨 사고 쳤지?”
“ 파스타 만들다가 소스 뚜껑 안 열린다고 옆집 아저씨한테 열어 달라고 갔다 왔어 ~ 알지도 못하면서”
“ 뭐라고? 와 ~ 안 챙피해? 옆집 아저씨 없으면 어떡할라고?”
“ 1층 내려가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열어달라고 하면 되지?”
“(남편, 딸) 와~~ 진짜 대~~단하다”
아니, 그게 뭐 그렇게 대단히 어렵거나 힘든 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찬사를 보내고 그러시나 사람 부끄럽게.
양미리. 오늘도 대단하느라 고생했어.(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