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 미리야, 너는 눈이 젤 못 생겼는데 마스크 쓰니까 눈만 보인다.
미리 : 그치? 내 이쁜 코랑 입술 안 보이지?
남편 : 아니, 눈이 제일 못 생겼다고
미리 : 그니까, 코랑 입술은 예쁘다는거자나
남편 : 와~ 너는 그걸 어떻게 그렇게 듣냐. 너는 긍정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만.
미리 : 그 말 아니야?
남편 : 그 말 아니야.
#미리둥절
#그말같은데
#그럼무슨말이야
#대화가안통해
살면서 오랜 친구들도,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도 자주 듣는 얘기 중에 하나가 ‘너는 진짜 특이하다’이다.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다들 나와 얘기를 하고 나면 ‘진짜 특이하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내가 왜? 나 엄청 평범한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얘기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나의 얘기에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리둥절’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첫 직장은 신당역이었고, 내가 사는 곳은 인천 부평역이었다. 이 말의 뜻은 아침마다 지옥철인 1호선과 2호선을 1시간 30분 동안 타고 출근을 해야 한다 말이다. 아침마다 내 앞에 멈추는 지하철 안은 이미 사람이 문 앞에 얼굴이 찌부되어 더 이상 사람이 탄다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이 거기에 또 들어가진다. 그게 나는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렇게 짜부되어 끼여 타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다. 다들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어도 ‘저 사람들도 출근을 해야 하니 우리 조금씩만 더 붙어봅시다’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탈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마법이 생기는 기분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해서 탄 지하철 안에서는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그럼 난 넘어질 걱정 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던 책을 읽는다. 물론 가끔 앞사람의 등이 너무 코앞이라 책이 끼어들 자리가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또,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너무 좋다.
어디선가 봤는데 E성향과 I성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질문이 있단다. 애인과의 기념일 저녁식사에 애인이 친구들을 데리고 왔을 때 기분은?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오?? 새로운 이벤트인가?? 와~사람이 많으니 더 재밌겠는데~”이다. 애인하고 둘이 노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같이 노는 게 더 재미있지 않나? 나는 콜이다!!
회사 생활에서 회식과 노래방은 나의 즐거움이었고, 다른 회사와의 협업이나 다른 회사와의 워크숍, 세미나 이런 것들도 즐거운 업무였다. 그런 나를 모두 “진짜 너 특이하다~”하고 바라봤다. 재밌지 않나? 나와 다른 새로운 사람들~ 미리둥절하다.
아! 그리고 재미있었던 일화 하나 더.
남편이 장교로 군대 생활을 했던 당시, 내가 좋아하는 H.O.T 강타가 군대에서 뮤지컬을 하고 있었다. 남편 부대 근처에서 강타 뮤지컬을 한다는 걸 알고 남편이 나를 데려가줬는데 남편과 함께 군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군인들로 가득 차 있는 버스에 올라타기 전 남편이 “남자들 너무 많지? 부담스러워? 다른 차 타고 갈까?”라고 물어보는데 “아니! 전혀! 내가 탈 때 남자 30명이 다 나 쳐다보는 거야? 너무 신나~~”하며 해맑게 그 버스에 올라탔다. 일부러 천천히, 모두의 눈을 쳐다보며, 마치 내가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긴 생머리도 휘날려주면서. 그걸 알고 남편이 내 귀에 속삭였다.
“미리야, 저 애들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이 에피소드를 친구들에게 말하면 모두가 기겁을 했다. 그 버스에 어떻게 타냐며. 그럴 때 나는. ‘왜 못 타지? 너무 신났는데’라고 생각하며 미리둥절한다.
이렇게 사람 좋아하는 나도 아이를 낳고서는 예전처럼 아무 데나 마음대로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남편 없이 아이와 둘이 어딘가를 가는데 큰 걱정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홍대를 가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못 간다? 그럼 같이 가지. 페스티벌이나 공연에 가고 싶은데 아이 때문에 못 간다? 왜 못가? 아이도 같이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같이 가서 같이 놀면 되지~ 남편 없이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상을 SNS에 올리면 같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친구들이 하나같이 놀랐다. 어떻게 남편 없이 대중교통으로 아이와 다니냐고. 나는 오히려 취향이 달라 늘 다툼이 있던 남편보다 언제나 내 취향에 맞춰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아이가 더 좋은 여행 친구였다. 유모차를 끌고 짐을 들고 다니다 힘이 부칠 때는 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쌍한 표정으로 “도와주세요~”하면 어느 누구 하나 거절하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아이 덕분에 여기저기서 음료수도 얻어 먹고, 사탕도 얻어 먹고, 지하철 자리도 양보받고, 화장실이 급할 때는 아이 핑계로 어느 화장실이든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 즐거웠던 시기였다. 자기의 생각과 의지가 생겨버린 지금이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더 어려우니 말이다.
미리둥절한 일들은 아이들과의 대화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1. 지예가 수학 100점을 받고, 세아가 받아쓰기를 100점 받은 날을 기념하여 외식하는 날.
미리 : 오늘은 너희들 100점을 기념해서 엄마가 먹고 싶은 매운탕을 먹으러 가자
지예 : 아니 왜~~우리가 100점을 맞았는데 엄마 먹고 싶은 걸 먹는데
미리 : 너희 100점을 누구 덕분에 맞았어? 엄마가 받아쓰기 계속 불러주고, 수학 학원비 내주느라 일하러 다니고. 엄마가 고생했잖아.
지예 : 아니 그래도 100점을 맞은 건 우리잖아.
미리 : 그래~ 100점을 맞은 너희를 낳은 건 엄마잖아.
지예 : 거기까지 간다고?
미리 : 거기서부터 시작이니까
지예 : 진짜 이상한 엄마다.
미리 : (미리둥절) 왜?
#2. 어린이날 VS 어버이날
세아 : 엄마, 나 어린이날 선물 뭐 사주 꺼야?
미리 : 너는 어버이날 뭐 사줄 건데?
세아 : 우리는 돈이 없잖아
미리 : 저금통에 돈 있잖아
지예 : 거기까지 간다고?
세아 : 그거는...안돼.
미리 : 그럼 우리 퉁치자. 어차피 주고받을 거니까
세아 : 퉁치는 게 뭐야?
미리 : 니 선물. 내 선물 퉁!!! 줬다 치는 거야
세아 : (으앙~) 그런 게 어딨어~~~ 어린이날 선물 안 주는 엄마가 어딨어~~
미리 : (으앙~) 그런 게 어딨어 ~~~ 어버이날 선물 안 주는 딸이 어딨어~~
세아 : 진짜 이상한 엄마야
미리 : (미리둥절) 왜?
미리둥절한 일이 아이들하고도 생기니 이쯤 되면 내가 이상한가 싶은데 뭐가 이상한지 모르니 고칠 수가 없다. 내가 이상한가………….(미리둥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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