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zel Aug 15. 2020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두 번째 북클럽

들어가기 전 질문.

  시미는 아이를 볼 자격이 있는가? 본인만을 생각한 접근은 아닌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연락을 한 것인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들을 보면 이런글들이 많다. 어렸을적 자신을 두고 도망간 엄마. 혹은 자신을 방치한 아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더 이상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닌 때서야 찾아오는 부모들.

  아이와 원치 않는 이별을 하여 아이에 대한 갈망이 큰 시미와, 어렸을적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폭력을 견디며 자라야 했던 아들. 두 쪽다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과연 내가 시미라면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을까?


  ' 저기요,로 시작한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게 있잖아요 사실은, 제가 가장 필요로 했을 때 있어주지 않으셨거든요 옆에, 일일이 말씀은 안 드리는데 제가 다 혼자 견뎠고 아버지를, 그래서 지금은 뭐랄까요, 이렇게 말예요 뒤늦게, 옷이니 밥이니 엄마 노릇하려고 좀 안하셨으면 좋겠거든요. 그게 말하자면요, 그냥 노릇으로 보이는게 아니라, 행세처럼 여겨 지거든요.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 그러니 사실 몸에 문신 두어 개 정도 남기고 그것이 의외로 맘에 들지 않아 낭패하더라도, 아이가 그걸 보고 소스라치거나 연세에 맞지 않게 주책이라고 눈살 찌푸릴 일도 없을 테고, 그런 퉁명스러운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모자 관계가 애당초 형성되지 않았음을, 모를 척하고 싶었던 현실을 시미는 뒤늦게 인식했다'




1. 제목.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문학적으로 보면 예쁘고 아름다운 제목이다. 하지만 글자 그대로 본다면 피를 연상케 하는,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을것만 같다. 이 책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진다... 끝 부분에서야 제목의 해설이 등장한다. "타투를 몸에 새기면서 의미들이 심장에도 수 놓아 진다". 구병모 작가 특유의 명쾌한 문장들과는 다르게 유일하게 애매 모호했던 문장.


2. 전개. 

  술술 읽힌다. 문장들이 긴 편임에도 부드럽고 매끄럽게 넘어가는 소설. 문장들이 clear하다. 깊게 생각할 필요 없이 다 설명해준다.


3. 등장인물들의 초현실적인 죽음과 타투. 

  생존자들은 사건 후 몸에 번진 타투를 가지고 있었고, 사망자들은 살아 당시 생존자들을 힘겹게 만든 사람들이였다. 타투들은 요즘 이슈가 되는 사회 문제들이 연관되어 있다. 정말로 타투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슨 타투를 새길까?


각 인물들과 타투의 관계를 요약해보쟈면.


     화인의 아빠 - 불에 타 죽어. 아파트에서 떨어짐. 가정폭력, 아동학대

     화인- 시미의 아들을 떠올리게 하는 처지. 붉은 쉐이딩의 샐레멘더 타투. 도룡뇽. 신화속의 샐래멘더.


     33세 K 씨 - '목을 찔렀다. 육식동물의 날카로운 송곳니로 찢어 놓은 듯한 열상'. 짐승. 스토킹

    그의 전 여자친구- K씨의 죽음 당시 짐승의 소리를 들었다던 그녀는 타투 관련해서 레이져로 지우려고 했었으며 타투에 무엇이 그려져 있었는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 아마도 타투의 비밀을 알고 있는듯하다.


     51세 Y씨.-  집에서 익사체 발견. 화장품 업체의 대표. 평소 악행. 소위 갑질

     M씨  운전기사 - 넓은 얼룩.  번진 타투 자국. 자연 풍경. 우키요. 일본 전통 민화.  - > 그는 물이 그려진 자연 풍경의 타투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 두번째 독서모임 후기> - "다양한 앵글과 다양한 배경의 이슈들을 녹여낸" (H)


이름. 소설속에서는 인물들의 특징으로 그들의 이름을 대신한다. 심지어 이름이 있는 화인과 시미는 성도 쓰이지 않는다. 북미권의 이름 위주를 부르는 사회에 익숙해져, 책일 읽는 내내 인지하지 못했지만, T가 언급한 이 내용이 곧 수긍이 가며 색다르게 느껴진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또한 시미의 아이는 "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아마도, 시미의 기억속의 아들은 "아이"인 때에 머물러 있어서 그런거 같다.


모성애. "모성애는 엄마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인가. 엄마의 욕구충족이 자식의 필요와 맞아 들어 갔을때 비로소 올바른 모성애가 아닐까"(H).아직은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영역이라, 쉽게 이렇다 저렇다 의견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다. 시미와 아이의 관계는, 타이밍과 운의 잘못인것인가. 둘 사이의 회복이나, 처음부터의 돈독함은 결코 가질수 없었던 것인가.


타투. 타투가 가진 상징성을 신비롭게 풀어나갔다. 또한 타투에 대한 관점 차이를(타투 vs 문신) 생생하게 녹여냈다. 사실 타투고 담배고 술이고 기호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기호의 차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는게 (사실 나도 그 중 하나이지만) 아쉽다? 평범해 보이던 사람도(이것도 본인의 기준에서 평가한) 어느순간 어깨의 타투가 보이거나 손에 담배를 쥐는 순간,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히 "질"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한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나 확고하고 일렬된 틀을 만들어 놓은 것인가.


꼰대. 꼰대라는 것은 세대차이의 필연적 존재인가. 우리도 나이가 먹으면 꼰대가 되는것인가. 한국에 있었을때(대학생때) 내가 노는 그룹들은 거의 나이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무려 3살차이도 많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캐나다로 넘어오고 나의 또래 집단들은 내 나이에서 위 아래로 10살 정도 차이가 난다. 자연스레 영어와 한국어가 섞이는 자리들 위주라, 반말이 나와도 어느 누구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200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과도 어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 종종 드는 생각은 나도 그들에게 꼰대가 될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토론하면서, 결과적으론, 어린 아이들과 놀지 않는것이 정답이라고 나왔다. 초자아적 성향을 가진 나도 자기 검열을 빡세게 하는데, 나도 모르게 꼰대력이 상승하여 남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렵다


폭력. 이 소설에서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갑의 폭력등이 등장한다. 물리적 폭력은 확실히 징벌을 내릴수 있지만 그것조차 미미하다. 사회적 폭력또한 말도 안되게 많아지고 있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잊기 좋은 이름 - 김애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