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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Jan 16. 2021

백년을 살아보니 - 김형석

네 번째 북클럽

<들어가기 전>


공감의 요소보단 한 사람의 독특한 인생에 대해 알아가는 책


 작가 소개

   1920년에 태어나서 100년이 넘은 인생을 사신 분.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님이며, 2016년에 <백년을 살아보니> 출간. 그 이후 2019년에 인간극장에 출연. 다양하고 많은 책들을 쓰심.


<나의 후기>


   책을 읽는 나의 태도. 언제부터인가, 자기 계발서 또는 인생에 조언을 담은 책들을 읽을 때면 책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현실성 없는 잔소리로 들려 대충 흘려듣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자기 개발서와 수많은 이들의 연설을 들으며 자란 나지만, 점점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본인의 개인적 경험이 진리인 양 단언하는 것들이 불편해졌다. 물론 내 인생이 그들의 인생만큼 특별하지 않아 오는 거리감도 있고, 내가 그들처럼 엄청난 노력을 부을 수 없단 걸 알기에, 자기 개발서를 향한 나의 손길과 눈길도 뜸해졌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그래도' 다른 자기 개발서에 비해 거부감이 덜했다. 아마도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나이대와 그가 겪었던 시대에 대한 감안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적인 부분을 빼면 저자는 그 나이대의 비해서 많이 열려 있는 사람인 거 같다. 나름의 가감법을 통해 책을 읽어 나갔다. 나와 아빠와의 대화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 더 많긴 하다.  


  흥미로운 저자의 삶. 일본 유학. 전두환 정권 당시 청와대 소속. 세계일주. 박사과정. 평양에서 맞은 독립. 월남.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가졌다. 교육 매체를 통해서 듣던 얘기들을 한 사람의 인생으로 읽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작가가 하는 조언들을 챙기기 위해서 책을 읽기보단, 그냥 이 모든 것을 겪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궁금증만을 해결하기에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여성. 지극히 남성 입장에서 쓴 책이다. 아무래도 작가의 나이대와 시대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글을 읽다 보니 작가가 생각보다 열려 있는 사람이라 내심 기대가 있었나 보다. 강단에 서고 강연을 다닌다는 작가가 이 부분에 있어서 배울 점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작가는 그의 강연 때의 일화를 말한다. 직장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작가는 질문을 했다. 물론 일화에 대한 내용도 불편하지만 질문을 읽는 순간 나는 한 템포 쉬어야 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 전무님의 비서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직도 사회에서 이런 강연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어떠한 태도로 이 책을 읽어나가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실생활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포인트였다.

"바가지를 긁다"
"여성들은 감정이 아름다우면 목소리도 표정도 젊어집니다. 반대로 감정이 아름답지 못하면 늙어지고 삶 자체가 윤택을 일게 됩니다"  


  결혼. 재혼, 사별 후 그 후. 황혼 이혼. 지금 당장의 내 나이대 친구들의 관심사는 결혼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재혼, 황혼 이혼 등의 주제들도 번번이 대화에 올라올 것이다. 너무나도 먼 것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니 흥미롭다. 결혼 또는 관계를 맺음에 어떠한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주제에 대한 태도는 다르겠지. 저자는 결혼의 목적을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데 있다고 한다.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아이가 없다면 사실혼이나 동거인으로서 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아이가 생기는 순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다가올, 결혼 이후의 토픽들이 기대되면서 무섭기도 하다.


  민족주의.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민족주의적 발상이다. 내가 겪은 정교 교육 과정에서는 흔한 토픽이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혹은 놀토가 아닌 토요일마다 자율 계발 활동을 할 때 올라오는 단골 주제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은 조금 다르다. 국가와 나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달라졌다. 애국심보다는 거래 관계 같은 것이다. 사회 구성원끼리 약속을 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정부가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각자의 주체에게 서로 최소한의 테두리만 지켜주는.  작가는 아래의 인용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과연 내 세대에서 이 질문에 공감하고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하는 의문이 든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는 서로를 향한 신뢰에 기반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무조건적인 애국심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할까? 또 동시에 과연 저자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어떠한 혜택을 받았기에 큰 애국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렇게 지켜온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조국을 위해 아무 일도 못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까지 저버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대한민국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그러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을 누가 베풀어 주었는가,라고"



<네 번째 독서모임 후기>


세대차이 이 책에서는 작가의 사고와 나의 사고에서 오는 차이가 많다. 아마도 이것은 세대 차이인 것 같다. 작가가 두는 가치와 내가 두는 가치가 달라, 많은 부분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멤버들 사이에서 공감이 어려웠던 점은, [꾸준히 열심히 계속해서] 채찍질하며 노력하라는 태도이다. 나의 치열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삶의 태도와 꽤 일치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캐나다 이민후 내가 지양하는 태도가 되었다. 처음 캐나다로 돌아왔을 때는 내가 너무 안일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며 나름 느린 속도에 안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들을 받아들이기에 아무래도 독서모임 멤버들은 문화적 차이로 어려웠던 거 같다.


노년. 죽음에 대한 준비 내가 살아온 삶에서 노년과 죽음에 대한 생각은 크지 않음 부분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업, 대학교 때는 취업, 그 이후에는 결혼과 인간관계. 정작 결혼 후 나의 삶에 대한 부분엔, 성대한 계획도 마음가짐도 없었다. 그렇기에 노후와 죽음에 대한 준비는 너무나 아득한 개념이었다. 나는 나의 말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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