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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Mar 12. 2021

옥탑방의 추억

그때로 다시 되돌아 갈수 있다면

미세먼지가 잔뜩 낀 흐린 날이어서 그런지 유독 영국에서 살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살던 플랏(FLAT)은 5층 건물(주상복합)의 꼭대기 층에 있는 작은 방으로 우리로 치면 원룸이었다. 1층에는 펍(PUB, 선술집)이 있고 건물로 들어가는 페인트가 칠해진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실(좁은 복도 형식)을 지나치듯 통과하 카펫이 깔려있는 계단을 따라 각 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까지 계단으로 그것도 카펫이 깔린 계단으로 이삿짐을 옮겨야 했던 날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층에 다다르면 양옆으로 방문이 연속되는 복도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오피스텔처럼 제대로 된 철문과 도어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페인트칠이 된 약하디 약한 나무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서면 작은 화장실이 있고, 오픈 주방이 있었다. 

방안에는 다행히 카펫이 아닌 마루가 깔려 있었고, 옥탑이어서 천정이 창쪽으로 높게 형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작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위로 들어 올려 열어야 하는 전형적인 영국식 주택의 창문이 하나 있는 방이었다. 방안에 한쪽을 차지한 주방 벽에는 여러 가지 색상이 조화로웠던 타일이 붙어있었고, 벽은 아주 약간 그린빛이 도는 페인트로 마감되어 있었다. 그 색감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창문을 열면 도로를 건너 앞 건물이 바로 보였지만, 비슷한 높이의 건물 지붕 너머로 예쁜 노을이 질 때도 있었고, 이상기온으로 눈이 쌓인 창문밖에 작은 눈사람도 만들 수 있었다. 1층에 있는 펍에서 주말이면 쿵쿵거리는 음악소리와 취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올라와 잠들지 못하기도 했고, 그 방에서 혼자 논문도 쓰고,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기도 하고, 외로워 울기도 하였다.

노을맛집이었네...
외로웠나봐...

볼륨을 높여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라도 하고 있는 날에는 복도를 지나가던 같은 층 사람들이 다 들린다는 듯, 방문을 두들긴 후 도망치기도 하였다. 컴플레인보다는 장난질로 여겼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그 얇은 문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 작은 방에 참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많은 물건들이 함께했다. 이케아에서 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조명이며, 엄마가 사서 챙겨주셨던 침구류며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한 공간에 펼쳐져 있어서,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색상의 옥탑방으로 기억된다. 20대를 추억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와 색감이다.





비알레티 커피포트는 옥탑방과 함께한 추억의 물건이다. 직접 끓여서 에스프레소 진액을 추출할 수 있는 작은 포트로, 혼자 끓여 마실 때는 1인용을 친구들이 오면 3인용 포트를 썼다. 라테를 마시고 싶을 때는 빈 유리병에 우유를 담아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뚜껑을 덮고 흔들어 우유 거품을 내서 라테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누군가가 궁상떨지 말고 전동 거품기라도 하나 사라며 잔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생활이 넉넉히 않은 학생 시절에 그것 또한 추억이었다. 데워진 유리병을 팔이 아프도록 흔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렇게 만든 커피 항상 무민 머그컵 담아내었다. 높이가 나지막한 비율이 아담하고 검은색 바탕에 무민이 낚시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머그컵은 영국에서 데려와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 나와 함께 이사를 다녔었다. 이가 나갔다고 묻지도 않고 버리신 어머님께... "필통으로라도 쓰면 되는데요... 그거 제가 진짜 아끼는 건데요..."라며 속상해했던 날이 떠오른다.


내가 그렇게 아끼고 버리지 않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내 영국 생활을, 그 옥탑방에 대한 추억을 그 컵에 압축해서 담아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민 컵은 지금 없지만 그때의 그 추억과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담겨 있고, 가끔 이렇게 꺼내 써 볼 수 있음에 만족한다. 아니 사실 만족하지 않는다는걸 안다. 


런던 한달 살기는 못해도 일주일 살기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테이트모던, 빅토리아앤 알버트 뮤지엄 등등 전시장은 다 찾아다닐것이다. 새로 생긴 핫한 공간도 다 가보고 싶고, 차이나타운에서 딤섬과 크리스피 덕을 먹고, 런던시내를 걸어다니다 배개 고프면 식초를 뿌린 피쉬앤 칩스로 배를 채울 것이다. 빨간 버스의 2층 맨앞자리에 앉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반짝이는 거리를 지나고 싶다. 그때 그시절처럼 친구와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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