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설레다

오래된 찰나의 귀환

by 감격
어떤 소식은 뜻밖에도, 오래 닫혀 있던 서랍을 열게 하곤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후속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20년 만이다. 그것도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은 참 묘하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기엔 너무 크지만,

막상 내 삶 위에 올려놓으면 또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다.

마치 시계의 긴 바늘이 단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지만,

그 움직임을 우리는 뒤늦게야 알아차리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혼자서도 가던 영화관을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언젠가는 갈 곳'으로 분류해 버렸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나중에 기분이 내키면.

그렇게 미뤄둔 날들이 켜켜이 쌓여, 영화관은 어느새 '지나간 취향'처럼 멀어져 있었다.


그런데 짧은 한 편의 티저가 묵혀있던 감각을 흔들었다.

팝콘 냄새와 시작 전 광고의 잔향, 첫 장면을 보기 전까지의 짧고도 설레는 정적.


그리고 그 순간들을 지나왔던, 그때의 나.


20년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보다 덜 지치고, 조금은 서투르면서, 왜인지 용감했던.

세상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나이.

그때의 나는 어떤 얼굴로 삶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돌아보면 나는 매일 1밀리미터식 변하고 있었다.

시곗바늘처럼 소리 없는 움직임으로.


좋아하는 색이 바뀌고,

소중했던 관계의 모양이 달라지고,

견고하다 믿었던 신념이 때때로 무너졌다가 또 다른 모습으로 쌓여갔다.


그러나 그 변화를 나는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변화는 항상 '조용한 축적'의 방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순간, 마침표처럼 찾아오는 깨달음,


"이렇게 멀리 와 있었구나"


후속작 소식은 단순한 개봉 정보가 아니었다.

그 시절과 지금을 동시에 비추는 거울이었다.


영화 속 그들은 어떻게 나이 들었을까?

미란다는 여전히 완벽을 강요할까?

앤디는 꿈을 이뤘을까?

아니면 모두 우리처럼 전혀 다른 선택지를 걸어왔을까?


그들의 변화가 궁금했고, 그 변화를 바라볼 지금의 내 마음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문득, 중요한 사실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주 짧은 찰나를 살지만, 동시에 긴 인생을 산다.


찰나는 금방 지나가 버리지만,

그 찰나들의 연속이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 하나,

사소해 보이던 하루의 선택 하나가 20년이라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작은 설렘에도 마음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후속작이 완벽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20년의 시간을 한 작품에 온전히 담기엔 시대도, 사람도, 감정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아쉬움이 있을 것이고, '이건 아닌데'하고 갸웃거리게 할 장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함께 지나왔기 때문에'의미 있었던 것이니까.


그 영화는 20년 전의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언젠가 또 다른 나에게도 동시에 말을 걸어올 것이다.


오랜만에 설렘이라는 잊고 있던 감정을 느꼈다.

찰나의 설렘이 인생의 결을 바꾸곤 한다는 것.

그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해 준 소식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웠다.


20년 만에 돌아온 것은 영화만이 아니었다.

설렐 줄 아는 나도,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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