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3
지금 내 옆에는 핫핑크색 계산기가 놓여있다.
주로 인터넷으로 먹거리나 생활용품을 사는 내게 계산기는 필수다. 화장지가 10m 당 얼마인지, 이 세제는 100ml당 얼마인지를 체크하려면 한 손에는 스마트폰, 한 손에는 계산기를 두고 진지하게 쇼핑에 임해야 한다. 요새 쇼핑몰에서는 소비자가 일정 용량/수량당 단가가 얼마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두지만 표시가 안되어 있는 제품들도 꽤 있다. 내 경험상 그렇게 계량 단위당의 단가가 표시 안된 제품들은 더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하는데, 그 이유는 나처럼 단가를 꼼꼼히 확인하지 않고 지나칠 소비자들에게 교묘히 더 비싼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속 보이는 상술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제품일수록 더 진지하게 계산기로 계산해보면 역시나 단가가 높은 경우가 다수이다.
나는 근무하는 회사에서마다 필요한 사무용품을 신청할 때 계산기를 1번으로 넣었다. 마케터로 일하면서 여러 협력사들과 계약을 맺고 또 정리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계약서 상의 기간과 금액 등을 꼼꼼히 확인할 때 계산기는 필수품이다. 그 외에도 온라인 광고 집행을 하면서 일일 광고비, 클릭률, 클릭당 단가 등을 계산할 때도 계산기는 꼭 있어야 했다. 물론 엑셀에 수식을 걸어 더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20세기 태생의 올드스쿨인 나는 이마에 내 천자 (川)를 그려가며 계산기를 열성적으로 두드리는 것이 더 일하는 느낌이고 제대로 한 느낌이다. 하지만 21세기에 10대와 20대를 경험한 하이브리드형 인간이기도 해서인지 엑셀 수식도 함께 쓴다. 계산기로 해보고 엑셀로 추가 확인을 한다. 1차적으로 속도전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기를 쓴 후 2차 엑셀로 완성을 하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숫자 감각이 약한 나는 이렇게 몇 번의 점검을 해야만 그나마 보통 수준을 따라갈 수 있다.
계산기를 업무의 분신처럼 여기기에 내가 사용했던 계산기들에는 어김없이 이름이 적혀있었다. 평생 머물 듯 일하고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하자는 모토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사용했던 계산기에 모두 켈리그라피처럼 서명해놨고, 퇴사 후에는 그것을 내 자리로 올 누군가를 위해 고이 남겨두고 왔다. 보통 퇴사하면 사용하던 개인물품은 버리거나 다시 들고나가고 내가 쓰던 컴퓨터는 포맷이 되니 후임자가 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은 계산기인 것이다.
숫자가 약한만큼 나는 계산기를 직장생활의 절친으로 삼아 두면서 정말 많은 계산을 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업무용 계산이 대다수였지만, 가장 진지하게 계산했던 것들은 역시 연봉, 퇴직금 총액, 총 얼마나 근무했는지 대한 근무 누적일 등이었다.
인류가 발명한 물건 중 최고 수준의 영역에 계산기는 꼭 들어가야 한다. 암산으로 하다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거나 에라 하며 포기하게 되는 수많은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때 계산기는 빛줄기와 같은 존재가 아니던가. 숫자 감각이 약한 나에게 계산기란 수학적 근시를 해결해주는 신비의 안경이다.
나는 이미 중학교 1학년 때 수학과 작별했다. 2차, 3차의 복합 단계를 거치는 계산과정을 접하는 순간 나는 우리의 이별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었다. 나는 그와 끝난 사이임을 알았음에도 매 학기마다 수학 문제집을 1번으로 구입하며 구애했고 끈질기게 달려들며 집착했지만, 결국 수능을 목전에 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정말 공식적인 결별을 감행했다. 까만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인 수학책을 펼치며 패배감을 느낄 시간에 백스트리트 보이즈 노래 가사 해석에 도움이 되는 영어에 조금이라도 더 투자하는 게 취미생활이나 수능, 앞으로의 미래에도 더욱 건설적일 것 같았으니까.
많은 문과생들이 수포자이다. 고등학교 때 내 짝 하나는 흩어진 도형들을 합쳐 어떤 최종 도형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 아예 시험지에 인쇄된 이미지를 샤프로 한 땀 한 땀 테두리 따라 구멍을 내어 누끼(이 용어를 한글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마케터들이 디자이너들에게 업무 요청할 때 많이 쓰는 말로, 하나의 이미지를 배경과 깔끔하게 분리시키는 작업을 말한다.) 따서 직접 그 조그만 종이조각을 이어 붙여가며 문제를 풀었고, 맞추었다. 그 작업을 하는 덕에 그 문제 이후로는 전혀 풀지 못했다는 아픈 이야기도 함께 있지만 말이다. 그날 그녀의 시험지에는 마치 전문가가 작업한 듯 정교한 공간이 생겨있었다. 샤프로 딴 누끼가 어찌 그리도 정확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한 문제라도 맞혀보기 위한 문과 수포자의 절박함으로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일까?
학창 시절 접한 모든 시험에서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것이 수학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한 내게 수학은 호오의 감정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였다. 성인이 된 후 서점에서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를 본 적이 있는데, 이것이 수학 문제인지 사고력 향상을 위한 논리문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사칙연산을 활용한 연산능력에 대한 훈련을 일찍 마무리하고 그 후부터는 수학적 사고를 키우는 방향으로 요새 수학교육이 흘러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 때만 하더라도 ‘응용문제’라 불리는 사고형 문제도 있긴 했지만 대다수가 기계적인 숫자 계산이나 연산능력을 향상하는 문제은행 유형이 많았다. 요즘의 사고형 수학 교육시스템을 경험했다면, 나와 수학의 이별은 없었을까? 복잡해 보이는 계산을 계산기를 활용해 쉽게 해결하고, 그다음 단계에서 더 깊이 있는 사고력 위주 학습을 하며 수학과의 밀당을 통해 작별 없는 사랑을 이어갔다면 현재의 삶은 또 달라졌을까?
학창 시절 8할은 아무래도 공부, 입시, 성적이다. 그 속에서 가장 박탈감 들게 했던 수학의 세계. 정석을 세계 최고의 책이라 칭하던 고등학교 시절 수학선생님은 정석을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는 친구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정석은 라면 받침 하기에는 너무 두껍지 않나? 개념원리면 몰라도..’였다. 내게 정석은 그냥 두꺼운 물체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도하기 짝이 없는 나쁜 남자 같은 존재였던 수학의 큰 벽 앞에서 좌절했던 시기의 나에게 계산기가 허용되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지금도 일선 학교에서 수업 중이나 시험 때 계산기 사용은 불가할 텐데, 나처럼 계산의 벽 앞에서 쩔쩔매는 친구들에게 계산기를 통해 쉽게 문제 해결의 방법을 알려주면 오히려 그다음은 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이런 다른 방법, 수단도 있다고 일러주는 것은 우리 교육시스템에서는 정녕 불가한 것일까?
10대 초입에 이미 수학과 이별해버린 수많은 ‘나’들을 위해 포효하고 싶다.
우리 그냥 계산기 쓰게 해 주세요!!!
그게 살아가는 데는 더 편할지 몰라요.
우리 그냥 계산기 쓰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