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2
내 최초의 독서 기억은 5-6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장 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 길거리 좌판에서 샀던 책이었는데, 엄마 토끼, 아기 토끼가 등장했고 소풍을 가기로 한 날 비가 왔다는 것이 줄거리였다. 세세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소풍에 들뜬 아기 토끼에게 잠들기 전 이불을 덮어주던 엄마 토끼의 다정한 모습과 소풍 당일 쏟아지는 세찬 빗줄기에 속상해하던 아기 토끼가 블러 처리한 듯 희미하게 그려진다.
어릴 적부터 누가 시키지도,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책이 좋았다. 하지만 친구들 집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동화집을 사줄 형편이 우리 집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 1장씩 배달되는 아이템풀 학습지 뒷장에 있던 만화를 수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독서 열정을 동화전집이 있는 동네 친구의 집에 하루 종일 상주하는 민폐 행태로 해소하며, 사달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강렬한 구매 압박 신호를 엄마에게 보냈다. 결국 엄마는 없는 살림을 쪼개어 동화 전집의 절반을 사주었다. 아마도 한 달 생활비 수준의 큰돈이었을 것이고, 정말 큰마음을 먹고 사주신 것이리라.
그 동화 전집을 마르고 닳도록 보았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다. 책을 읽는 어린이의 부모님을 위해 책의 마지막 장에 실린 동화의 배경, 작가에 대한 설명글 부분까지 읽었다. 그 시작 문구는 지금이라면 사용했다가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고도 남을 ‘어머니에게’ 었다. 그때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다정히 설명해주는 역할 주체는 곧 어머니, 엄마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시대였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주인집과 방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셋방 집 딸이 아니었고 동화 속 주인공의 친구도 되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했던 순간일지 모른다.
내게 독서란 또 다른 세상으로 순식간에 날아가게 해주는 마법의 양탄자 같은 것이었다. 이런 내 독서욕을 채우기에 우리 집 살림살이는 너무도 팍팍했다. 엄마에게는 딸의 동화책보다는 일단 오늘의 반찬거리, ‘내 집 장만’이 더 중요한 과업이었다.
독서욕을 넘어 활자 중독 수준이던 나는 엄마가 장 봐오는 물건들, 집안 살림들에 붙어있는 상표, 가전제품의 설명서까지 모두 읽었다. 이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 무언가를 읽고 싶은 욕구가 항상 들끓던 시기. 그러던 어느 날 이 모든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천상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곳은 바로 도서관이었다.
나의 읽기 욕구를 채워준 인생 첫 도서관은 초등학교 시절 만났다. 집에서는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은 가야 했고, 학교에서도 꽤 거리가 있어 어린이가 걸어갈 만한 곳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학교가 끝나면 부지런히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용하며 어디에 있는지를 처음 알려준 것은 동네 아주머니였는데, 그 아주머니에게는 딸이 둘 있었고 첫딸이 특히 영특하고 공부도 잘했다. 원래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열성적인 그 아주머니 내외의 교육열 탓인지 아니면 두 개의 결합으로 인한 시너지일 수 있는 그 집 큰딸은 정말 똘똘했다. 어린이였음에도 마치 아나운서 같은 발성과 말투였고, 딱 1살 차이 나는 내게 존댓말을 했다. 초등학생끼리 말이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수영장을 오래 다녔는데 거기서 만난 언니들에게 존댓말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존댓말이 어색하고 불편하니 하지 마라 하였지만, 쉽사리 바뀌지 않았고 본인이 편하다니 그냥 두었다. 자식이 공부 잘했으면 하는 욕심은 있지만, 지원해 줄 형편은 되지 않았고, 삶의 노곤함으로 인해 교육열이나 이에 대한 실행 의지도 낮을 수밖에 없던 나의 부모님과는 차원이 다른 관심과 지원을 해주는 그 아이의 엄마, 아빠가 참 부러웠다.
그 아이의 집에 가면 방의 전면을 채운 책장 속 빼곡한 책들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 방학이면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으로 발레 공연을 보러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으며 대체 직접 발레를 본다는 그것은 어떤 느낌일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간접으로나마 경험을 해야 펼쳐볼 수 있는 상상의 나래는 내게 수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것이었다.
그 집의 많은 책들을 부러워하는 내게 엄마는 그 집에 자주 놀러 가라고 했고, 그 집의 아주머니 역시 언제든 와서 책을 보라고 하셨지만, 눈치 없던 동심은 정말 자주 갔었나 보다. 어느 날 그 집 아주머니가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 있으니 가면 맘껏 책을 볼 수 있고 빌려서 가지고 올 수도 있다고 일러주셨고 그 말을 들은 다음날 아무 준비 없이 그 먼 길을 혼자 걸어간 도서관에서는 부모님 신분증을 가져와야 대출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고 곧바로 집으로 걸어가서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을 들고 다시 걸어 도서관을 갔다. 그것이 나의 최초 도서관 회원 등록이었다. 그 도서관을 다니며 읽었던 책 중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사랑하는 남자의 질투를 끌어내기 위하여 다른 남자와 결혼도 하고, 침입한 군인을 강단 있게 처단하며 인생을 헤쳐나가는 스칼렛 오하라에게서 느꼈던 충격이 지금도 아스라이 떠오른다. 아니 이렇게 살인을 해도 잡혀가지 않다니!
눈치 없이 들락거리며 책을 읽고 빌려 가던 동네 아이에게 면박을 주거나 그만 오라는 말을 하지 않고 도서관의 존재를 일러줬던 아주머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큰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도서관을 알게 된 후로는 그 집에 더 이상 발길을 하지 않고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이 즐거운 도서관 생활은 집안 사정상 시골로 이주한 후 중단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내가 도서관을 다닌 시기는 겨우 2년 남짓인데, 그 시기의 강렬한 기억은 도서관을 향한 타는 목마름과 같은 그리움을 남겼다. 마치 일사후퇴 때 헤어진 가족을 찾듯,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진 연인을 가슴에 품은 사람처럼.
다시 도서관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7년이 걸렸다.
조금만 어두워지면 빨간 불이 켜지는 술집이 있던 하굣길,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범죄 현장과 너무나도 똑같아 집에 가는 것이 공포 그 자체였던 집 앞 골목길을 종종걸음으로 뛰어와 겨우 도착하는 집에서는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마주치면 신경질을 낼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인해 늘 화가 났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그랬다. 잠기지 않는 화장실 문을 물 채운 양동이로 막아가며 쓰고, 다섯 식구가 모두 앉아 밥 먹을 공간조차 되지 않아 밥상을 비스듬히 놓고 다리를 오그리며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나 감정의 상온 상태가 ‘화’ 또는 ‘짜증’ 일 것이다. 이미 도서관이라는 짜릿한 문화생활의 맛을 이미 경험한 내게 강력범죄의 가능성이 만연한 귀갓길에서 수시로 마주하던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개들, 그리고 공연음란죄로 잡혀 들어갈 과다노출 또는 연관 행위를 선보이는 이들이 출몰하던 그곳에서의 생활은 아무리 좋게 윤색하려 해도 그저 탁한 먹색이다.
이 모든 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오직 서울로 대학 진학하는 것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7년의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도서관과 재회했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살림에 실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권했지만 뿌리치더니, 이번에는 전문대가 아닌 사립 4년제를 고집부려 진학한 딸에 대한 엄마의 미움은 엄청났다. 그렇게 엄마를 비롯한 가족에 대한 죄의식이 결합된 원망과 박탈감이 뒤섞인 20대를 맞았다. 그 뒤엉킨 감정의 타오름이 잠시 식을 때는 오직 도서관에서의 시간뿐이었다.
도서관이 매력적인 이유는 냄새에 있다. 오랫동안 배정된 자리를 차지한 채 시간을 흡수한 책들이 내뿜는 강렬한 향기. 나를 끌어당긴 그 향기 속 책을 바라볼 때 스며드는 평온의 기분. 한 장씩 책장을 넘길 때 손끝에 닿는 종이 질감의 짜릿함,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에워싸는 적막 속 백색소음 속에서 나는 허기조차 잊곤 했다. 안정, 인정, 애정에 항상 굶주려 있던 내게 도서관은 내면의 감각이 한껏 충족되는, 일종의 욕구 충족의 장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던 시기 4년간 대출했던 책을 조회해보니 대략 300권 정도였다. 다 읽은 책도 있고, 다 읽지도 못한 채 반납한 책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씩은 모두 내 손에 닿아 나와 보이지 않는 끈의 인연으로 연결된 20대의 편린들이다. 그것들이 있어 비빌 언덕 하나 없는 막막함과 빈곤으로 점철된 대학생활 속에서도 순도 100% 희열을 경험할 수 있었다.
너무도 가난하고 상처 받은 일들이 많았던 20대, 특히 대학생 시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혹여나 다시 돌아간다면 더 열심히 도서관을 찾고 싶다. 도서관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아는 게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세속적이지만 순수한 지적 유희를 충족했고, 지난한 삶을 잠시나마 벗어나는 판타지를 실현하며 당장 오늘의 점심값 따위는 걱정할 일 없는, 내면의 성숙을 도모하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되고 싶지만 될 수 없는 귀한 집 딸이자 여대생의 모습으로 잠시나마 위장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누구나 경험하는 추억들을 감히 쌓을 수 없던 시기, 내가 정말 대학생이었던 시간은 모두 도서관에서 이루어졌다. 대학 졸업 후 오랜 시간 남의 돈을 벌어다 주는 부속품으로 살았지만, 한 사회의 시민이자 인격체, 온전히 나 자신을 생각하고 집중하며 성숙시키는 하나의 존재로서의 시간을 만끽하는 곳은 여전히 도서관이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직업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진정한 욕구의 완성은 도서관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은 참 섹시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서관을 찾아 책들이 내뿜는 강렬한 페로몬 향기를 들이마시고, 그들이 일렬로 꽂힌 매력적인 직선의 자태를 눈으로 훑으며 손 때와 시간이 묻어있는 책들을 어루만질 때 찾아오는 쾌감의 절정을 만끽한다. 나는 도서관성애자, ‘책르가즘’을 느끼는 별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