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5]

by 도정하
여름은 그리 길지 않아.

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여름의 한복판 7월 말에 태어났다. 본인의 말로는 여름에 태어나서인지 여름에 더욱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여름의 끝물이자 가을의 시작, 환절기에 태어나 더위에 유독 약한 나에게 여름은 겨울과 함께 1년에 5개월은 되는 듯한 긴 계절감이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쏟아지는 땀, 생면부지의 사람이 갑자기 꼬집고 도망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수준의 짜증을 저어내는 습도의 나날들이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은 8월 초에 있는 입추의 존재를 피부로 느끼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절기만큼 정확한 게 없다고 하셨는데, 정말 맞는 말임을 서른이 넘어 절절히 체감하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맨 몸에 와닿는 찬 공기처럼 깨닫고 알게 되는 것. 나이 듦의 매력이기도 하다.


2021년의 입추는 8월 7일이었다. 그날 밤부터 선풍기의 바람세기를 6에서 5로 낮추었고 8월 12일인 어제는 3으로 낮추었다. 입하에서 입추까지, 약 3개월. 여름은 90일 정도, 그중에서도 하루 걸러 하루씩 더위가 찾아오는 5-6월을 제외한다면 실제 정말 덥다를 연발하는 여름은 약 한 달 남짓.


여름은 정말로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 환절기에 태어난 나는 태생적으로 약한 면역력을 갖고 있는 탓에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면 정확하게 동일한 증상이 나타난다. 맑은 콧물과 쏟아지는 재채기 – 알레르기성 비염이다. 코가 간지럽고 재채기가 터진다면, 영락없다. 가을이다.


입추였던 8월 7일을 하루 앞둔 8월 6일 밤부터 맑은 콧물을 동반한 재채기가 8 연타 나왔다. 직감했다. ‘아 가을이 또 이렇게 왔구나.’


특정시기가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이 증상의 발현들을 긴 시간 코감기로 알고 살았다.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생활편의시설, 안락한 주거 환경, 안심되는 치안과 편리한 교통과는 매우 거리가 먼 곳에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비염 증세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되었는데, 먹고살기 바빴던 나의 양육자들께는 딸의 비염까지 살필 여력이 전혀 없었다. 쏟아지는 콧물로 학교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보면 30분도 되지 않아 여행용 티슈 한 봉지를 다 쓸 때도 많았다. 하루 종일 콧물과 재채기에 시달리다 두통까지 찾아와 힘들어하는 내게 엄마는 콘택 600을 먹으라고 했었다. 콧물과 재채기는 잦아들었지만 밀려드는 졸음을 견디기 어려웠다. 내게 가을의 시작은 그냥 괴로움이었다.


화장실에서 웅크리고 콧물을 풀어대며 멍해진 머리에 힘들어할 때면 오래되어 썩어버린 화장실의 나무 문 너머로 듣기 싫다고 짜증 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참았다가 다시 코를 풀고 재채기하는 입을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미세하게 선선해진 바람이 가장 먼저 울리는 것은 내 코 안의 비염 알람이다. 나는 비염의 시작으로 가을을 맞고, 내 안의 가장 눅눅한 기억을 환기한다.


아버지는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아버지의 4남매 중 유일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긴 병치레를 수발했다. 하지만 아내에게 살뜰한 남편이자 자식에게 따뜻한 아버지의 역할은 그리 맞지 않았다. 살림을 차린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없는 살림 속에서도 여러 번의 외도로 엄마 마음을 피멍 들게 했고, 동생에게 과자를 양보하지 않는다거나 학습지 안에 끼어져 온 어린이 영화 티켓을 흔들며 영화관에 가보고 싶다고 조르던 나를 밤새도록 때렸다. 제법 소녀티가 나는 중학생 때도 아버지에게 맞아 다리에 든 멍을 가리기 위해 밴드를 붙이고 등교했었다. 민트색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밴드였다. 매질로 멍든 다리보다 살색의 밴드가 더 보이고 싶지 않은 때였다.


아버지는 삼 남매 중 첫째인 나에게 유독 폭력을 많이 썼다.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했지만 방의 한 구석에 나를 몰아넣고 때렸다. 가끔 맞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기도 했다. 내 최초의 폭력 기억은 4살에서 시작한다. 4살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폭력은 내가 완전히 성장하여 때리려는 매를 손으로 잡은 18살에서야 끝났다. 숱하게 맞았지만, 왜 맞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 당시에도 그렇게 납득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맞을 때면 엄마와 동생들은 다른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치킨을 시켜먹기도 했다. 내가 악을 쓰며 울어대는 소리와 건넛방의 텔레비전, 엄마와 동생들의 웃음소리가 음식물쓰레기처럼 뒤섞여 작은 집의 밤을 채우던 날들이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하지 말고, 아버지라는 재능은 원래부터 없던 사람으로 포기에 가까운 감정 정리를 하게 되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무감각해졌다. 아버지는 성실했지만 내게는 불편한 존재였다. 정신을 놓을 때까지 때리던 때의 아버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아버지와의 끈은 조금씩 끊어졌다. 어쨌든 아버지이고 나의 가족에서 가장의 위치에 있는 어른이기 때문에 손가락질받지 않을 정도의 도리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고, 이에 충실하려 하지만 살갑고 뭉클하고 감사한 마음은 애초부터 그리 깊지 않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될수록 그 감정은 더 사그라들었다. 구석에 몰아져 정신없이 얻어맞는 나에게 엄마는 왜 도망가지 않느냐고 한 적이 있었다. 얘는 도망도 안 가더라고. 도망가는 법을 알기도 전부터 맞았기 때문에 아예 저항하는 법을 몰랐다. 4살의 내게 집은 우주였고 엄마, 아빠는 절대자였다.


나를 때리려고 내려쳐지던 몽둥이를 손으로 잡고 처음으로 저항하던 날 아버지의 표정이 당황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기억한다.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숱하게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 내 피와 살을 이어받은 자식을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리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이해가 가지 않아 아예 이해에 대한 감정을 지웠다. 각자의 주어진 역할로 할 수 있는 선까지만, 부담되지 않게 딱 거기까지만 다 하는 것으로 나의 책임을 선 그으니 편해졌다. 숱하게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은 그저 스스로에 대한 자해에 불과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될수록 그 괴로움은 더해졌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던 엄마, 때리던 아빠의 행동은 젊은 나이에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준비 없이 태어난 첫 아이로 인해 버거웠던 부모라는 무게, 생계의 고단함에 대한 짜증과 화풀이 었다는 것을.


12살 때 큰 이모 댁에서 온 가족이 갔다가 하루 자고 오던 날, 잠이 안 와 뒤척이던 나는 엄마가 밖에서 이모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첫애는 이쁜 걸 모르겠다.
둘째부터는 키우는 재미도 있고 이쁜데 쟨 이쁜 걸 모르겠다.’
내리사랑이 맞더라.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밖에 나가 ‘엄마는 내가 안 예뻐?’라고 물어봤고 그때 엄마가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엄마의 그 표정은 18살, 아빠의 매질에 처음 저항하던 날 보았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부모에게 그리 귀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임을 받아들이기가 참 어려웠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도 있었다. 여기에 대한 보상심리, 결핍된 사랑과 안정감을 연인에게서 찾으려 했다. 나의 말을 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들어주는 사람들만 만나고, 그들에게 이상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베풀어주는 수준의 배려, 이해, 관용, 보살핌을 요구했다. 애정으로 들끓는 연애 초기에는 그 이상으로 보답해주었지만, 시간의 힘 앞에서 점차 무력화되는 얄팍하기 짝이 없는 남녀관계에서 나의 요구는 선을 넘는 것이었다. 내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풍성하게 해 준 옛 연인들은 부모로부터 얻지 못한 애정의 갈급함을 해소해주던 대체제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한줄기 차가운 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방 안의 공기에 균열을 내듯, 그때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 내가 아주 비정상적이고 뒤틀린 연애를 해왔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심장이 서늘해졌다.


나에게 목매는 사람, 나를 위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겠다고 애걸복걸하며 쫓아다니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살짝 넘어가 주는 것이 나의 연애 패턴이었고, 남자가 더 좋아하는 관계가 이상적이며 정상적이라 생각했다.


연인은 일방향의 관계가 아닌 상호관계임을, 서로의 마음이 만나 손깍지처럼 단단히 결합하여 부족함을 채워주고 보듬어주며 함께 가는 것임을 많이 늦게 알게 되었다. 상대를 생각만 하여도 사각거리는 겨울 사과처럼 달콤하고 시원한 기분이 주위를 감싸고, 때때로 부드러운 솜이불에 파묻힌 듯 따뜻하고 포근한 기분에 젖어드는 것. 만지고 향기 맡고 얼싸안으며 일상을 공유하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드러내고 또 상대의 그것도 어루만져 주고 싶은 무한정의 감정을 몰랐던 시간이 창피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라, 그 상대와 나누어 가진 것이기에 마음 깊이 파고드는 가책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날이지만 문득 내가 저질러버린 수많았던 비연인적 미숙한 행동들이 머릿속을 비집고 나올 때가 있다. 그날은 7월에 태어난 그녀에게 흑역사를 방출하고, 그녀는 ‘과거사정리위원회’ 역할을 수행해준다.


나의 가을은 맑은 콧물,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를 타고 온다. 비염이 시작되었다. 또 가을이다. 그렇게 또 무채색 기억에 또 한 겹의 시간을 담요 삼아 덮는다. 그럼에도 새어 나오는 곪아 터진 기억의 염증 냄새를 달래주는 것은 매년 10월 31일이면 앞뒤 설명 없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7월의 그녀에게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 답할 수 있는 끼리끼리 낭만이 되겠다.


그녀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다.


2020년 10월의 마지막 밤. 우리는 취했고, 다시 생각도 안나는 남부끄러운 얘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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