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4

by 도정하

여행이나 출장을 가면 속옷, 양말, 셔츠 등 손으로 세탁할 수 있는 어지간한 옷가지는 모두 손빨래해서 세탁하고 건조해 입고 그다음 날의 일정을 소화하기 때문에 늘 간소하게 짐을 싼다. 보름 동안의 미국 출장길에서의 내 짐이 기내 반입용 캐리어 1개인 것을 보고 어떤 분은 미국 가며 이 정도로 단출하게 짐 챙겨 온 여직원은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셨다. 나는 그 작은 캐리어에 15일 치 옷가지, 화장품은 물론 즉석밥과 볶은 김치, 컵라면까지 야무지게 담아갔다.


여행을 가든 출장을 가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녹초가 되어도 꼭 손빨래를 하고 방 이곳저곳에 널어두었다가 건조되면 다시 입고 나가니 집에 돌아와서 짐을 풀어 정리해도 빨랫감이 그리 많지 않은데, 어느 여행 간 곳의 숙소에 작은 드럼세탁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나의 손빨래 작업을 이곳에서는 안 해도 되겠다는 기쁨이 밀려오던 찰나, 세탁기 옆의 가루세제가 눈에 띄었다. 살림살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나의 어머니도 캡슐세제로 전환한 지 이미 수년째인데 객실에 비치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제일 싼 제품을 비치할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하면서도 가끔 보는 홈쇼핑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액체세제 세트를 ‘파격 초특가-다시없을 단독 기회’로 판매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볼 때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쉬움을 잠시 접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그 가루세제를 살펴봤다. 어린 시절 깔끔한 의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던 그것은 번개를 뜻하는 번듯한 이름이 있음에도 어린 시절의 엄마, 이모, 동네 아주머니 등 주위 집안일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분들은 그 가루세제를 ‘하이타이’ 라 불렀다. 그 번개 이름의 가루세제뿐 만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나온 가루세제도 모두 하이타이로 통칭했었다. 모기약은 곧 ‘에프킬라’인 것처럼 가루세제는 곧 ‘하이타이’ 었는데 그 뜻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세탁의 수준을 High 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의 ‘하이’를 넣었나 보다 싶은데 그럼 ‘타이’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왠지 타이라는 단어가 깔끔하게 발음되는 것이 뭔가 빨래를 마친 후 탁탁 털어 널 때의 소리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하고 내 맘대로 유추해본다.


구글에서 하이타이를 검색하면 이제는 ‘세제 하이타이’가 아닌 ‘마사지 할인 어플’이 나온다. ‘하이타이 세제’라고 검색해야만 가루세제로써의 하이타이가 나온다. 요새는 빨래세제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최소한 하이타이는 그 굳건해 보였던 세제계의 왕좌에서 밀려난 지 매우 오래인 것은 분명하다.


추가로 더 찾아보니 하이타이는 과거 럭키(현 LG생활건강)의 '하이타이'라는 이름의 세제가 보통 명사화된 것으로, 2017년 별세한 GS리테일 허신구 명예회장이 국내에는 세제가 없던 1962년 동남아 출장에서 가루세제를 처음 접한 후, 세탁기도 없던 국내 시장에서 될 리 없는 사업이라고 반대하는 경영진들을 설득하여 일본증류주식회사로부터 기계를 들여와 1966년 4월 10일 국내 최초 합성세제인 하이타이와 뉴힛트를 출시한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빨랫비누만이 세탁세제로써 유일하던 시절, 초창기에는 잘 팔리지 않아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다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직원들이 직접 하이타이로 빨래하는 법을 알려주는 영업 활동을 했고 결국 하이타이는 세탁세제 시장을 평정하는 것은 물론 모 그룹이 사업 성장을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하이타이를 써본 적도 없는 80년대생인 나조차도 가루세제는 하이타이로 인식할 정도로 브랜딩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랍고 엄청난 마케팅인가.


이 정도 마케팅 역사가 인생의 족적 하나로 남았다면, 지금처럼 일요일 밤에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자발적 직장 탈영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케터가 꼭 되야겠다. 이것은 내 길이다.’ 결연한 의지를 불태워서 마케터가 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광고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그럭저럭 점수에 맞춰 선택한 학과는 그 세계와 매우 거리가 멀었고, 취업준비를 시작하던 대학 3학년 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오래도록 해도 재미있게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생각하던 중 학과에 복수전공 바람이 불었다. 이때의 고민이 그 바람과 만나 이끌리듯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였고, 경영학 수업에서 가장 재미있고 아주 순수한 열정이 생기는 분야가 마케팅이었다. 분연히 일어서는 청춘의 그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기획하고 그 기획을 상세한 계획으로 윗선에 보고하고 설득해 예산을 받아 실현하여 그를 통해 소비자의 반응이 일어나 매출에 영향을 줄 때의 그 짜릿함은 아드레날린 그 자체였다.


배울만큼 배웠다는 사람이 인간에 대한 예의만 빼고 배운 듯 사람을 대하고 협력사를 착취하는 모습을 십수 년간 보면서 사람에는 질렸지만 내 머리 안에 존재하던 생각과 이미지,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실존으로 승화되던 나의 일, 마케팅을 무척이나 깊이 사랑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나의 마케팅 역사에 하이타이 같은 큰 획을 긋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설득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누구나 경탄할 수준의 비범한 크리에이티브가 없는 내 자질에 있을 것이고, 또 하나는 밥 먹으면서도 생각을 거듭한 끝에 기존의 생각 상자를 부수고 만난 ‘이거다!’싶던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마다 말로 손찌검하던 윗분들의 억압에 기죽어 아예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린 까닭도 있을 것이다.


마케팅을 사랑했고, 내가 맡은 브랜드는 곧 자신이라 생각하며 내 역사의 일부로 여겼다. 그토록 사랑했던 마케팅을 하며 사람으로 다친 정서적 외상이 깊어져 떠나온 지금도 생활 속 접하는 모든 제품들, 광고를 보며 ‘이런 아이디어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 때면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헤어진 마케팅, 언젠가 다시 만나 하이타이 이상의 역작을 한번 만들어 볼 수 있다면..


무척이나 설레고 신나고 행복할 것이다.


‘하’와 ‘타’가 강조된 1968년의 하이타이 광고. 딱 떨어지는 ‘하!’ ‘타!’ 발음처럼 깔끔한 빨래를 해준다는 뜻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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