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8]
수년간 마음에 쌓였던 생채기들이 염증을 일으켜 큰 외상으로 곪아 터질 것이라는 전조를 꾹꾹 누르며 살다가 결국 온갖 악취와 고름을 내뿜으며 터져버린 후 산 송장이라는 표현 그대로의 일상을 맞이한 시간이었다.
2021년 여름은 내게 마치 빈속에 급히 마신 술에 지독히 취한 후 끊겨버린 필름처럼 몇 장의 순간들만 남아있을 뿐, 마치 뇌의 한 부분을 삽으로 떠낸 듯 불완전하게 남아있다.
이불 끄트머리를 손에 쥐고 부들거리며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락의 시간이 언젠가 땅에 부딪혀 산산이 끝나버리면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목숨 부지의 시간을 끝내 버릴지 고민하며 벌벌 떨던 시간이었다.
아무 소리가 없는 방 안에서 부들거릴 때 찾아오는 적막의 공포. 문학적 표현으로만 알아왔던 나를 짓누르는 시간에 대한 처절한 두려움이 피부 한 겹을 벗기고 뿌리는 식초처럼 비리고 쓰라리게 생생했다. 어떻게 해야 가장 깨끗하게 주위에 폐 없이 끝내버릴지 고민하면서도 무엇이라도 들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생과 사는 붙어있다는 것을 그저 글이 아닌 머리와 마음으로 체험한 첫 순간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기어서라도 이 어둠을 나가야 한다는 양가의 감정으로 뒤죽박죽이 되어 너를 위해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위로의 가사로 가득한 가톨릭 성가를 들으며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줄도 모르고 무한의 낙하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때, 유튜브의 어떤 알고리즘이 벌써 십 년 전의 ‘나는 가수다.’의 레전드로 남은 임재범의 ‘너를 위해’ 무대로 이끌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줄줄 흐르던 눈물조차 잠시 멈추고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는 그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전성기를 비켜나간 그의 목소리는 음정이 맞지 않을 때가 있었고, 불안정한 고음, 그리고 그 매력적이던 쇳소리는 그냥 삑사리라 할 수준으로 폐부를 찌를 때가 있었지만 눈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며 눈길을 끌어당겨 잡아내는 힘이 있었다.
완벽한 음정, 박자, 매끄럽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빚어낸 가창력이 노래가 주는 감동의 가장 큰 본질이 아님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온통 흑색으로 뒤덮였던 올여름의 ‘너를 위해’를 경험하기 전의 ‘너를 위해’는 20년 전의 토크쇼 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그때 세기의 결혼이라며 세상이 떠들썩한 톱 여배우가 잘생기고 실력도 출중하여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손꼽히던 스포츠 스타와 결혼을 했고 그 둘은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함께 출연했다.
그는 자기의 몸의 반절이나 될까 싶은 자그마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녀를 옆에 끼고 이 노래를 불렀다. 결코 잘 불렀다 할 수 없지만 그 당시의 그녀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민망하면서도 좋아 죽겠다는 마음이 그런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행복의 극치 순간을 수줍어하며 참으려 하지만 새어 나오는 미소를 관리하던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전까지 그녀의 이미지는 그저 내게 똑순이, 가난을 이겨낸 불굴의 스타였는데 그 순간 그녀는 그냥 공주였다. 세상을 다 가져 행복의 정점에 올라앉은 꽃 같은 공주.
그렇게 그 둘은 브라운관을 뚫고 나올 것 같은 단내 가득한 꽃향기를 내뿜으며 사랑을 과시했지만 수년 후 대학의 법학개론 시간의 민법 수업 중 이혼 부분에서 그 둘의 사례를 과제로써 접하며 다시 한번 그가 불렀던 ‘너를 위해’가 떠올랐고 그 후로 오랫동안 내게 임재범의 ‘너를 위해’는 노래가 아닌, 한 때의 톱스타 커플이 행복에 겨워 음정 조차 못 맞추며 벌어지는 입꼬리를 숨기지 않고 부르던 ‘사랑의 찬가’ 무대로 남았다. 그리고 그 사랑의 찬가는 세월을 구비구비 흘러 넘어 숨만 쉬며 사람 구실 못하고 누워있던 나의 귓가에서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를 위해 떠나 주겠다는 절절한 자기 고백의 찬가로 후비고 들어와 눈물을 멈추게 했다.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처의 틈으로 파고 들어온 임재범의 절규 같은 자기 고백이 그 멈추지 않을 것 같은 추락에도 쉼을 주며 생각의 필름을 휘감았다. 대체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 눈에 별을 박고 감춰지지 않는 기쁨으로 입꼬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일 수 있나 하고 신기해했던, 사랑의 기쁨이란 게 과연 저러한 것인지 궁금하기만 했던 10대 시절 본 야밤의 토크쇼 무대 위 그 세기의 커플이 떠올랐고 늘 한 번도 순탄한 적 없던 소녀의 삶이 찬찬히 흘러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니 더 그 이전 친구들과 흙장난을 치던 시기에도 꼭 나쁜 놀이의 운은 내 차례, 따돌려도 악 소리 내는 법을 몰랐고, 집에서도 나는 귀한 존재가 아님을 수시로 환기했던 어린 시절.
한 번에 도달할 수 있는 성취는 아무리 작은 곳에서도 한 번이 없고, 친구들은 냉큼냉큼 잘만 넘는 뜀틀도 내 차례에서는 어그러져 몸은 날아가고 뜀틀은 무너져 내리던 기억.
청춘의 한가운데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 겪고 싶지 않은 일만을 누가 정교하고 꼼꼼하게 모은 듯한 불행과 불운 그 자체의 짐 바구니를 등에 지고 늘 얻어맞으면서도 다시 기어 올라 버텨내던 20대.
참 지난했다. 고단했다.
한 때는 얻어맞으면 벌떡 일어나 악을 쓰기도 했지만 그저 빈 공간에 내지르는 것에 불과함을 깨닫고 내 인생은 원래 이런 것이라 내려놓으며 포기하게 되고 가능한 쉽게, 가능한 지적받지 않고 미움 사지 않으며 가능한 상처 받지 않으려 자기 방어의 삶으로 인생 운용 태세를 전환하며 살았지만 운명은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를 묶어놓고 때렸다.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정신 들면 다시 때려 정신 잃기 직전,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는 삶의 연속. 지겨웠다. 끝내고 싶지만 끝나지 않았고 끝난 후의 막막함이 두려웠다. 결국엔 하도 맞아 늘어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자 묶여 있던 끈이 풀어졌다.
이제 가치가 없다는 듯, 너 하나쯤 너덜거리게 두들겨 패는 게 이제 지겨워졌다는 별 것 아닌 내 인생의 혼잣말이 귀에 들렸다. 이제 괴롭히는 게 재미없어졌다며 멀어지는 지난한 삶이 저 멀리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게 보일 때쯤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다시 글을 읽고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눈물을 멈추고 나니 엎어져 숨을 할딱이는 내 얼굴 위에 던져진 지난 했던 삶이 던지고 간 흰 수건이 매만져졌다.
이 모든 것은 눈물이 멈추었을 때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끝이 나자 시작된 그 순간은 신경정신과에서 받아온 약봉지, 마지막 회사에서 쥐어준 알량한 위로금에서 열린 게 아니라 진절머리 나게 들러붙는 악운의 삶이 쳐 놓은 벽에 부딪혀 꽂힌 그가 절규에 가깝게 불러내던 '너를 위해'였다.
이제 내 삶에서 다시 그 노래를 마주하는 순간의 장면은 행복에 겨운 한 시절, 세기의 연인이 아니라 이토록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거미줄 같은 삶에게 상처 입고 포효하는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멈추었던 반듯이 누운 내 모습으로 교체되었다.
임재범의 목소리에 상처입은 호랑이가 부르는 처절한 희망의 찬가라 평한 누군가의 말처럼 너무나도 절절하다 못해 한서린 절박함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일어나고 싶어졌다. 세상이 궁금해졌다.
내 인생의 ‘너를 위해’ 3장은 무엇이 될까. 이제 추락의 여름이 가고 감히 다음 장이 감히 궁금해지는 시기가 왔다.
이제 진짜 가을이 왔다. 그 계절이 갔다.
* 덧붙임: 임재범은 가수가 아니었다. 치유자였다.
BGM: 나가수 무대에서의 임재범, 너를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cDS3vu_Ep6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