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1
페브리즈를 처음 접했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미군부대가 많은 도농복합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같은 반에 미군부대 인근에서 큰 햄버거집을 하는 지역 유지 딸이 있었다. 그 아이의 집에서는 모든 생필품을 미군부대에서 사다 쓴다고 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교복에 베인 냄새는 물론, 감지 않은 머리에까지 뿌리면 순식간에 악취 제거, 향긋하고 산뜻함만을 남겨준다는 마법의 액체가 담긴 미제 물건을 들고 왔다. 꽤 큰 크기의 분무기는 케이스 디자인과 세련 그 자체였던 라벨의 폰트와 이미지, 그리고 오직 영어로만 적혀 있는 성분표시까지 모두 ‘있는 집’에서 쓰는 물건이라는 신기함과 부러움 섞인 이질감,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낯설지만 향기롭던 그것은 내가 처음 맡은 미국의 냄새였다.
20년 전이라 한들 그때도 21세기었건만 미제 물건이 왠 말이냐 하겠지만, 그 지역은 그랬다. 시내 중심에 있는 시장 안쪽으로 가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물건을 좌판에 빨대 하나 꽂을 틈 없이 빽빽하지만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제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 신의 경지 VMD를 시전하시는 시장 어머님들의 '블랙마켓 (암시장)'이 즐비했고, 도시의 중심지이자 번화가 역할을 했던 역 인근의 상업 지구에서는 목에 수건을 두르시고 새마을 모자를 쓰신 진정한 스웨그의 영농인들께서 리드미컬하게 몰고 가는 경운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그 마법의 액체를 직접 며칠 동안 감지 않은 본인의 머리에 뿌려가며 놀라운 탈취 효과를 설명하고 사용법을 시범 보였던 그녀는 그 마법의 액체를 흔쾌히 반에 기증했고 체육시간이나 급식 시간 후에 마치 하나의 절차처럼 모두들 돌려가며 미지의 세계에서 온 그 귀한 액체를 조금씩 뿌렸다. 그뿐만 아니라 고3 수험생임에도 불구하고 쉬는 시간 10분 사이에도 뛰어나가 공을 차던 같은 반 남학생들의 토스테스테론 뒤섞인 땀 냄새 제거에도 그 마법의 액체는 쓰였다. 마치 하나의 공공재처럼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씩 뿌렸지만, 모두가 써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았기에 한 번씩 쓸 때는 낭비 없이, 꼭 필요한 부분에만 향수 뿌리듯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쾌적한 생활 환경, 삶의 질, 높은 진학률 등과는 거리가 먼 그곳에서 하나의 인격체가 완성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보냈고, 난 이 시기를 암흑기라 부른다. 무채색뿐이던 그 시간의 나열 속에서도 종종 채도가 번쩍하고 지나간 순간들이 있다면 8할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학창 시절, 찬란한 시기인 줄 꿈에도 몰랐던 그 시절 처음으로 접한 신문물과 그 신물물들에 대한 무지와 미숙함을 유머로 승화시켜 준 추억 속 수많은 출연진, 친구들 덕분인 것이다.
미국을 후각으로 첫 경험시켜 주었던 그 마법의 액체는 지금 내 집의 냉장고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일부러 미국 내수용 페브리즈를 직구로 구매한 이유는 그 성분이나 향이 한국 시판용과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먼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취 제거’의 놀라운 그것을 열심히 시범 보이며 설명하던 그 친구의 진지한 모습이 페브리즈만 보면 자동반사처럼 입꼬리를 자연스레 올려주며 생생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내게 첫 미국 냄새를 맡게 해주었던 그녀, 그녀의 소식을 건너 건너 들으니 현재 미국으로 이주하여 쌍둥이 엄마로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 냄새 맡게 해주더니 정말 미국에서 살고 있는 그녀.
요새도 옷에 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종종 쓰는 페브리즈의 효과에 20년 전 그때처럼 탄성이 나오지는 않지만, 한 번씩 뿌릴 때마다 기억은 소환된다. 며칠간 감지 않은 본인의 머리에 직접 뿌리며 페브리즈의 놀라움을 알려주던 그녀가 정말 알려준 것은 미국 어딘가에서부터 담겨 온 문명, 내가 첫 경험한 미국의 냄새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