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편 글쓰기 프로젝트 No.6]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초코파이 없다던가.
그래서 달달한 것을 건네며 ‘나는 네게 情을 주었네’를 표현하라고 초코파이 봉지에 情이 쓰여 있었나 보다.
세상에 수많은 정이 있다.
친구 사이의 우정.
:: 운이 좋으면 평생을 함께 가기도 하고, 결혼, 사업 권유 또는 채무관계 등으로 인해 손절하기도 하는 그것.
연인 사이의 애정.
:: 할 때는 세상 가장 깊은 줄 알지만 끝나면 세상 가장 얄팍한 그것. 한 때는 숟가락 하나로도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끝나고 나면 10대 시절 잠깐 좋아했던 연예인 사진 보는 감정보다도 못한 정말 무색무취의 무엇이라도 남으면 그나마 다행인 그것. 지금은 기억도 잘 안나는 좋았던 시절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명치끝에서부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하며 한탄이나 안 하면 ‘좋은 인연 또는 좋은 이별’인 그것.
세상 많은 정 중에서, 가장 끈끈한 정의 으뜸은 신성한 노동의 현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쌓인 ‘욕’ 정이라 생각한다. 이성 따위는 욕실에 방치된 머리카락 뭉치 마냥 어디에 싸 갖다 버리고, 순도 100%의 천박한 충동만으로 휩싸여 배설만이 목적이 되는 그런 의미의 ‘욕정’이 아니라, 비조리와 부당, 비상식이 파도처럼 몰려올 때, 부르르 떨며 분연히 일어나 거세게 맞서지는 못하고 숨죽여 ‘을’의 눈물을 삼키며 혼신의 분노를 담아 내지르는 욕의 담화를 함께 나눈 그것, 진득한 땀과 찌든 눈물의 말라붙은 냄새가 화의 공감대로 단단히 엉켜 아교화 된, 상처 받은 분노를 박제한 화석으로 견고하게 남겨내는
‘욕(辱)’정(情).
지난 14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난 참으로 많은 욕정 동지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또 이어왔다. 지금도 카톡을 열면 이제는 모두 서로 다른 곳에서 여전히 비일비재 일상으로 벌어지는 비인간적 처사, 심리학적 분석조차 아까운 인간 군상들로 인해 상처 받고 화나고 힘들어하는 나의 동지들이 있고, 그들의 소리 없는 분노는 직장을 떠나 돈은 없지만 마음만은 안빈낙도하며 작은 아파트 안에서 수도승처럼 살고 있는 내게 치열한 야전군 시절의 전투본능을 일깨워 준다.
나 역시 그 야전군 중 하나일 때는 그저 부둥켜안고 행동하지 못하는 숨은 양심처럼, 복도나 탕비실에서, 또는 카카오톡을 통해 일갈하는 일명 구강액션만으로 분풀이를 함께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그저 들어주는 방청객 역할만을 하고 있어 미안할 때도 많다. 그곳에서 버티며 그들의 무게를 함께 지고, 유리천장 근처도 못 가는 철저한 마이너리티, 직장이라는 사회 속 엄연히 존재하는 마이너리그 2군 선수의 애타는 서러움을 함께 지는 것을 내려놓은 자로서 느끼는 가책을 그저 그들의 속상함을 묵묵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덜어 내려니 미안하다.
일요일 밤이 더 이상 힘들지 않은, 가난하지만 편안한 기쁨. 새벽 1시의 커피가 가장 맛있음을 알게 된 지금도 내 동지들은 새빨간 몸뚱이에 자존심이라는 군복 한 벌 돌려 빨아 입으며 그곳에서 견뎌내고 있음을 정말 잘 알기 때문에 마음 한쪽에는 버티지 못한 자로서의 부채감이 있다.
그들의 눈물은 곧 나의 것이었고 나의 분노와 탄식 역시 그들이 함께 나누어지어 주며 시간의 무게를 견디게 해 주었던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0년 넘게 남의 돈을 벌어 밥 먹고 살았던 우리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고, 일 잘하는 게 능력이라 믿으며 곧 불혹이 다가오는 나이이지만 아직도 억울하고 화가 나는 순도 100%의 어이없음과 분노를 느낄 줄 아는 순수를 가지고 있다. 낙엽만 굴러도 눈물이 나던 그 순수는 아니지만, 우리는 아직도 누군가의 고통에 슬퍼할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알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표현할 줄을 안다. 그래서 우리가 직장의 마이너리티다. 아니 왜 저러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에 대한 물음을 아직도 직장에서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직 순수하다. 도시 속 아마존이요, 까마귀 속 백로와 같은, 그린벨트 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뉴타운도 되지 못하고, GTX조차 버리고 간 강제적 청정지대가 우리다.
고층 빌딩을 정자 삼아 휴식하는 노숙자들 틈에서도 열매를 맺는 을지로의 사과나무처럼, 어찌 이곳에 이런 사람들이 있나 싶은 순수들을 만나 지난 14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분노, 서러움, 억울함을 견뎌낼 수 있던 것은 자존감, 자존심 따위는 인천 앞바다에 내던지고 맨 손으로 흙 퍼먹듯 생존해온 직장생활에서 남은 것은 알량한 재산 몇 푼이 아니리라.
사전에는 실릴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그 의미를 아는 창의적인 욕설뿐 아니라 고상한 어휘들로 학구적 서술화된 문장형 욕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참 많은 화를 승화했고 토로했다. 우리가 토해냈던 그것들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녹조라테의 채도를 한껏 낮춘 정도가 될까? 속 안에서 부글대던 화를 입으로, 손가락으로 토해내어 속을 게워내면 또다시 나가 처절히 전투하며 입은 총상, 때때로 마주하는 전우의 장렬한 퇴사 또는 인사보복 등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공감하며 함께 분노를 이고 지었던 수많은 나의 욕정 동료들.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는 어느 곳에서 또 속을 게워내고 있을까.
스물몇 살 시절, 아무것도 없이 사회에 나와 최저임금 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몰라 그저 속으로 분노만 해야 했던 시간에 만난 대구에서 온 S양, 근로계약서조차 쓰면 뺏어 가고 대부분의 행정처리가 불법으로 점철되었던 대행사 사원 시절, 내게 팀장이 되면 팀원이 ‘밥 먹는 것, 집에 가는 시간’ 이 두 개만 챙겨주면 너는 리더 대접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시고는 치킨집 사장님으로 홀연히 변신하신 Shim팀장님, 유학 경험 없고 SKY 졸업하지 않아 나의 채용을 반대하셨다는 분께 매일 좌절하고 상처 받던 시절, 내게 다가와 맥주를 먹자고 했던,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알짜 회사 지식을 과외해주던 W양, 2년여간 이어지던 가스 라이팅에 뇌를 양파망에 넣어 쪄낸 상태가 되어 정서가 바스락 소리 내며 분말화될 때쯤 도망가듯 떠나던 직장에서의 마지막 날, 생전 처음 받아본 화려한 꽃다발을 전해주며 그간 고생만 하다가 간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N차장님 등.
직장을 퇴사하면 남남 중에서도 상 남남이 되는 것인데, 그들은 14년간의 내 지난 청춘이 그냥 남의 돈 벌어다주다 내 안의 많은 것들이 빠져나간 골다공증으로만 남지 않게 해 주었다. 사방에 바늘만 꽂혀있고 글에도, 말에도 독이 묻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학습한 지난 직장 생활. 퇴사가 아닌 졸社를 한 지금 시점, 누더기 된 마음을 부여잡고 직장이라는 성을 벗어났지만 누더기만 입고 덮고 살 수는 없어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서 한 땀 한 땀 누더기를 꿰매어 이제 퀼트 방석 하나 정도는 만들 여유가 생겨나는 지금.
정신과 약으로도 요원해 보였던 평범한 일상이 조금씩 찾아지는 오늘, 나의 치유와 회복, 그리고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을 소재삼아 글쓰기라는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며 한 편을 완성할 때마다 느끼는 작은 성공의 습관들.
멘탈 갑 소리를 들으며 누구보다 강한 척했지만, 결국에는 먼저 도망간 나의 나약한 비겁함을 감싸주고 대신 묵묵히 싸워주는 그들에게 고맙다. 그들이 버틸 때,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다음의 '우리'가 나아가 비빌 언덕이 되어줄 것이니까.
‘여성인권’,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보장’ 등의 거창한 말까지 들추지 않아도 여성은 직장에서 약자임을 나는, 그리고 우리는 매일 느끼고 경험했다. 직장 생활하며 크고 작은 성추행, 성희롱 한번 경험하지 않은 여성 과연 있는가? 하다 못해 운 좋게 내가 당하지 않아도 자신의 성적 매력을 내세워 새치기하는 사람들의 믿을 수 없는 성공들을 목도하며 간접 성적 수치심을 경험한 적 과연 없는가?
영업 미소 띠며 거침없이 상사와 팔짱을 끼고 술을 따르며 (나는 노래방에서 부르스 추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교태로 업무 성과를 드높이던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한 길을 갈 때, 내가 하지 않았음에도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에 대한 자책감을 그저 일 잘하는 것이 착한 줄 알고 영혼을 갈아 최선을 다하다 최전선에서 제일 먼저 손절당하는 것을 악순환처럼 겪으면서도 직장 내 한 자리 차지하며 버텨왔다.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14년간의 직장생활이 그저 폐기하고만 싶은, 썩어 문드러진 기억 덩어리가 아니라 앞으로 내가 글밥으로 살아나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진전시킬 발효 자원이자 밥줄이 될 수 있도록 해 준 그녀들의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거룩하고 거창한 외침까지는 필요 없다. 우리 그냥 지금처럼 속상하면 욕하고, 슬프면 나누면서 그렇게 버텨나갑시다.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겠다는 처절한 다짐까지는 못가도, 최소한 남이 다 창피할 정도의 천박한 권모술수나 자기개발서스러운 삶은 살지 않으며 그렇게 버텨나갑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습니까?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 가사 발췌 (Artist: 양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