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면 나쁜 사람 하나 없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하나 없다고 한다. 한 민주투사가 엄혹하던 시절 남산으로 끌려가 한참 고문을 받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희미하게 자신을 고문하던 ‘고문관’ 들의 대화가 들렸다고 한다.
‘우리 딸이 이번에 시험을 보는데.. 대학은 어디를 갈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대화를 서로 나누는 고문관들은 짧은 휴식이 끝나고, ‘자 일하자!’ 하는 포부의 기지개를 키며 그 민주투사를 다시 한번 가장 비인간적인,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방법들로 고문했고, 그 민주투사는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따뜻한 가장이라는 것을.’
세상에 알고 보면 나쁜 사람 하나도 없다고 했다. 범죄자도 알고 보면 착하다고.
그런 마음으로 참아냈던 것 같다. 나를 괴롭혀도, 나를 모함해도, 나를 멸시해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고, 내가 무언가 부족했겠지. 더 나아지면 인정해주겠지.’ 하는 자기 채찍질을 하며.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래저래 백수로 시간을 보내다 겨우 들어간 첫 직장.
사장님과 이사님은 모녀지간이었고, 내가 보기엔 저게 뭔소리가 싶은 예술영화로 이름난 영화감독 집안의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상류층이었다.
작은 회사였기에 식사를 사무실 안에 있는 작은 식탁에서 약 5명 정도 되는 전 직원이 모여 식사를 했다. 쌀과 김치는 회사에서 지원해주었고, 그외 반찬은 직원들이 매달 일정액을 걷어 직접 조리해 먹는 방식이었다.
나의 젓가락질에서 못사는 티가 난다고 했다. 점심시간, 소화가 잘 안되어 따뜻한 녹차를 함께 마시는 내게 아랫 사람이면 윗 분부터 타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워딩이 그랬다. 이미 대학시절 내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상처되는 말에는 이력이 나서인지, ' 아, 네. 한잔 타드릴까요?' 하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묵묵히 밥을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 평상시처럼 출근을 했고, 갑자기 근처 커피빈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만 나오라는 통보였다. 자아가 강해서 넌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그 날 오후에 바로 내 자리를 채울 사람이 들어왔다.
알고 보면 나의 젓가락질을 있는 도곡동 막내딸처럼 바로잡아 주시기 위한 어른의 깊은 마음이 담긴 지적이었을 수 있다. 무엇을 먹고 마시더라도 어른께 공손히 먼저 여쭙고 입에 가져다 대는 미래의 청담동 며느리로 신입직원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가르침이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는 ‘정신승리’로 이력서에 그 수모를 미화시켜왔다.
두어달의 경력이라도 그럴싸하게 적어 넣어 인사담당자의 눈에 들고 싶어 안달하던 시절을 건너왔다. 긴 강 물줄기의 지류에서 튜브타고 손으로 노저어 가며, 그렇게 왔다.
이미 지나간 시간 속에서 무던히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별로였을까?
그 질문에 소리내어 말할 수 있기까지 마음에 여러 화석이 쌓일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에게 못사는 주제에 자아는 강하다 말하던 당시의 나의 윗분들.
나쁘다. 상처받을지 몰랐다고 해도 나쁘고, 상처를 주기 위해 했다고 해도 나쁘다.
그리고 그 윗분들과의 시간에서 배운 것은 없다. 정말 쥐어짜서 하나 생각해낸다면 ‘난 부자가 되도, 아니 그냥 늙어서도, 저렇게 상처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지.’ 였다.
지금 직장 생활을 하며 누군가로 인해, 내가 그리 부족한가. 내가 그리 못하고 있을까. 하며 가슴에 피흘리며 자책하는 분들이 있다면 기억하시라.
나쁜 사람 참 많다.
자책말고 마음의 피 닦고, 다독여주시라. 그리고 못견디겠으면 떠나자. 이직은 그러라고 있는 것이니까.
나쁜 사람을 나 편하자고 어거지로 착한 사람 만들지말자. 그런다고 편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쁜 사람은 그냥 나쁜 거다. 내가 정말 못나서,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안다. 이것이 진짜 내가 싫어서인지, 아니면 그 순간의 폭풍같은 질책인지.
때리는 사람은 몰라도 맞는 사람은 정확히 안다. 왜 때리는지.
이유없는 매맞음이라 생각되면 물어봐도 된다. '왜 그러시는거죠?'
그때의 난 몰랐다. '왜 그러시는거죠?' 라는 말이 있다는 것 조차.
시간이 흘러보니, 몰라서 못했던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
지금 상처받은 분들. 괜찮습니다. 물어보세요. '왜 그러시는거죠?' 라고.
덧붙여, 그 윗분들 집안에는 톱스타들이 무보수로 출연하는 예술영화로 유명한 감독님이 계셨고 한때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그 분의 로맨스 소식이 지금도 종종 보도되면 그 윗분들과의 악추억을 떠올리며 잠시 시선을 멈춰 기사를 읽게된다. 대부분이 비판인 그 분의 연애기사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젓가락질이 그리 중요한 가문의 분이 어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