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내가 절대 시작하지 않는 연애의 조건들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나이'었다.
가을에 있는 내 생일을 기준으로 단 하루만 늦어도 엄연한 '동생'이라 여겼기 때문에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면 1차 호구 조사는 '생년월일'이었을 정도로.
보통 여자에게 이성을 소개해주겠다고 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질문이 '키커?'이고 남자의 경우에는 '예뻐?' 라는데 나의 경우는 '나이가?' 그다음이 키였다.
하지만 아주 오랜, 너무 오래돼서 처음의 색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바스러져질 대로 바스러진 녹슨 인연의 고리를 내가 거두어 낸 후, 우연을 거듭하여 만난 사람은 내가 태어난 해의 앞자리 숫자가 다른 사람이었다.
하루만 차이나도 안된다던 내 단단한 마음을 처음부터 부수고 들어오더니 뻔뻔할 정도로 떠나지 않았다.
나이, 살아온 환경, 주어진 문제들을 이유 들어 수없이 밀어냈고 내 안에서 욕망과 가치관의 전투가 하루에도 수십 번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작했고, 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작을 겁내며 내가 이런 이유로 안된다 말하던 것들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그것을 이유로 우리가 만나야 한다던 그것들을, 시간이 지나 그가 그대로 다시 이유 들며.
뜨거워 녹아버릴 것 같은 도시의 여름 온도처럼 그렇게 내 시간의 한편으로 사라졌다.
나이.
살아온 환경.
주어진 문제들.
더위를 뚫고, 그럼에도 불어오는 다음 계절의 바람을 느끼며 어제부터 지금까지 이승환의 애원, 그 한 곡만을 들으며 생각해 볼 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그의 사랑이었다.
내가 넘기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이번 사랑의 페이지가 넘어가려 한다.
사실 이미 넘어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혼자만 난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지도.
사람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의 힘이든 아주 약간의 압력만 가해져도 당장 여럿 페이지가 넘어가려는 이 순간.
다음을 시작하기에 난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나의 인생의 여러 순간의 짜릿함과 환희를 주었던 '나를 사랑했던 사람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에 다행이라며 감사하는 나이듦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런 이별도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아마도 그 이유는, 사랑이 사라져 버려서겠지.
고치거나 개선하여 협의할 수 있는 안건이 아니라, 그냥 애정의 문제.
그럼에도 나의 문제로 지적하며 사라진 그의 비겁함에 슬프고 미성숙함에 애처롭다.
분명 연애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극단의 달콤함과 짜릿함. 하지만 그것이 사그라들었을 때의 잔혹한 통증, 그리고 통증이 오기 전의 가슴 아픈 징후들.
그것을 견딜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남자의 사랑이란, 비겁하다. 너무 의리가 없다.
비로소 사랑이라는 중독에서 탈출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6iH3K86B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