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의 주 목적은 온천이었다. 보통은 유후인을 많이 가던데, 꼭 가보고 싶은 온천마을이 있어서 유후인은 애초에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사가현에 있는 마을의 이름은 후루유(古湯)였다. 한국어로 말하면 예뻤고, 한자로 보면 설렜다. 얼마나 오래 된 온천마을이면 이름조차도 저럴까. 친구를 설득해 이박 삼일동안 후루유마을에서 머물기로 했다.
(게으른 탓에 포스팅을 늦게 해 기억은 안나지만...)
후쿠오카역에서 JR선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사가현이 나온다. 이미 사가현에 내리는 순간부터 도시의 복잡함은 사라진다.
사가현 중앙역에 내려 둘러보니 료칸에 부탁했던 봉고차 한 대가 와있었다.
4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가현 중앙역 근처 도시는 작아 금세 국도가 나왔다.
풍경을 보며 덜컹덜컹 산길을 올랐다. 산을 둘러싼 강줄기가 점점 얇아지더니, 산 한가운데 파묻혀있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 보였다.
카세강을 따라 숨어있는 후루유마을이었다.
내가 선택한 료칸은 야마아카리(山あかり)였다. 산기슭의 별이란 이름을 가진 오래되고 정갈한 곳이다.
후루유마을에서 제일 유명한 숙박시설은 전통과 현대시설을 결합한 온크리호텔이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리조트 느낌이 나는 곳이다만, 내가 원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온크리에서 눈을 돌리면 진시황때부터 이어진 온천마을 역사답게 전통 가옥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하는 여러 료칸들이 보인다. 료칸 예약 사이트를 통해서 둘러볼 수 있는데, 30만원대 가격대였던 온크리가 눈에 꽂혔다.
봉고차에서 내렸다. 나이대가 있는 직원들은 일본 특유의 온 정성을 다해 우리를 맞아줬다. 영어를 잘 못해서 직원의 짧은 영어와 나의 짧은 일본어를 섞어가며 설명을 들었다.
방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아름다웠다. 온천 바로 뒤에 있는 카세강줄기의 물소리가 시원했다.
야마아카리의 6개 방에는 각각 개인 온천과 고타츠가 있었다. 고타츠는 난생 처음 써봤는데, 평생 고타츠에만 있어도 잘먹고 잘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불을 깔고 자는 방은 다 차서 침대 혼용인 방에 묵었다.
질 좋은 이불은 충분히 푹신푹신했다.
전통 가옥대로 지어진 숙소의 침대에 누우면 이런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목조 특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데, 지리산 근처에 있는 우리식 통나무집과는 또 다른 향이다.
빛을 최소화하고 채광이 비출 수 있는 여유를 줬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지붕 근처에 뚫린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줄기가 정말 따듯했다.
사실 야마아카리를 선택한 이유가 개인 온천탕때문은 아니었다. 분위기에 온전히 녹아들고 싶었을 뿐인데, 숙소 베란다를 나서자마자 있는 이 히뇨끼 온천탕이 생각보다 엄청난 힐링이었다.
숙소에 들어갔을 때부터 이미 욕조에는 따듯한 온천수가 받아져 있었다. 입소 시간을 물어본 이유도 아마 이거 때문일거다. 소소한 배려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덕분에 숙소에 짐을 놓고 가이세키 저녁을 먹기 전 한차례 온천을 했다.
1박 2일동안 온천에 네다섯 번은 들어갔다. 온천에 기대누워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가져온 책을 읽었다. 눈을 조금만 올리면 바로 푸른 나무가 보였다.
1월 겨울의 찬 바람과 40도쯤의 따스한 온천물, 물소리와 산기슭에 캔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것.
내가 정말 원하던 휴가였다.
7시쯤 가이세키를 먹으러 가니 에피타이저가 세팅되어 있었다.
솔직히 한자를 못 읽고 일본어도 못해 내가 먹은 메뉴 하나하나가 뭔지를 알 수는 없었지만...
비주얼만 봐도 알다시피 멋과 맛과 분위기에 취해 먹는 음식이 맛 없을리가 없다.
이 지역에서만 난다는 사케 도쿠리를 한 병씩 시켰다. 거의 유일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술이 사케였다.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하나씩 나오는 요리를 실컷 즐겼다.
야마아카리에는 가이세키 말고도 주방 한구석에 이런 뷔폐를 차려놓는다. 전부 다 일본식 요리인데, 생선 조림이나 오뎅, 우메보시같은 반찬류 음식이 많았다.
한창 배고플 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이 음식들을 보고 한접시 가득 받아왔는데...
먹다 보니 깨달았다. 가이세키는 정말 엄청나게 배부른 코스였고, 반찬을 배에 욱여넣을 정도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야마아카리의 주방.
전통 시설을 최대한 유지한 작디 작은 주방에서 모든 반찬을 일일히 만든다.
사가현에는 소고기가 유명하다 했다. 그중에서도 최상급 소고기로 만든 등심은 최고였다.
단순히 마블링 잘 된 소고기의 느낌이라기에는 풍미가 훨씬 짙었다. 기름의 고소함과 소고기 특유의 풍미가 잘 어우러졌다.
소고기 요리가 끝나면 메인디시 격인 샤브샤브가 나온다.
직원이 직접 눈 앞에서 만들어지는 샤브샤브 역시 최소한의 재료만 넣었다.
유자를 갈아넣은 소르베와 젤리를 먹을 때쯤엔 진짜 너무 배가 불러서 죽을 뻔 했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온갖 대화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숙소에 미리 녹차와 다구를 세팅해두는데, 품질이 꽤 좋았다.
새소리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뜬다는게 거짓말인 줄 알았다.
물소리와 새소리로 아침 7시쯤 자동으로 일어났고, 비척비척 욕조로 들어가 온천수를 받았다.
콸콸 떨어지는 온천수의 열기가 겨울 아침 산공기를 만나 푸슬푸슬 올라왔다.
저녁을 먹었던 같은 곳에 아침상이 차려져있었다.
저녁에 비해 깔끔한 아침. 하지만 정성은 그대로 녹아있었다.
개인적으로 날달걀비빔밥을 무척 좋아하는데 한국 마켓에서 사는 달걀은 신선도가 떨어져 그 정도의 맛을 못 낸다.
후루유마을에서 당일 아침 생산된 계란을 까서 먹는 날달걀비빔밥은 비린내 하나 없이 고소한 맛만 퍼졌다.
조식을 끝내고 두시간 정도 여유가 남았다.
마지막까지 진한 커피를 내려 친구와 함께 마시며 온천을 했다.
4개월동안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니던 시절의 여행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삶에 도움이 된 여행이었다고 자부한다.
유후인을 가보진 않았지만 후루유 마을은 그 어디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자신하는데, 다음 포스팅은 온전히 후루유마을에만 집중한 사진들을 올려볼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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