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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Jul 12. 2024

눈부신 성장을 끝낸 이는 무엇을 동력 삼아야 하나요?

눈부신 성장을 끝낸 이는 무엇을 동력 삼아야 하나요?

 

나는 요새 수영이 좀 심드렁하다. 작년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수영을 좋아했다. 지금 한 발자국 떨어져 보니 뭐 저렇게까지 좋아했을 일인가 싶기도 하다. 아아- 좋아하는 마음엔 총량이 정해져 있던 걸까? 그렇다면 난 그 마음의 85% 정도는 이미 써버린 것 같다. 나는, 요새 수영이 좀 심드렁하다.

 

 초급반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지금이 제일 수영이 재밌을 때”라셨다. 나는 선생님이 단어 선택을 살짝 잘 못하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때 당시의 우리 반 모습-어쩌면 나만의 모습이었을까-은 재미라기보단 투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유형을 해내리라 다짐하는 투지!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투지! 자배평접 네 가지 영법을 모조리 배워보겠다는 투지!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운 웨이브를 만들어내리란 투지! 당시의 나에겐 이렇게 어떤 영법을 ‘어떻게든 해내고픈 마음’이 컸다. 그래서 글쎄, 이걸 재미라는 단어에 욱여넣기엔 다소 가벼웠다. 나의 수영은 조금 더 붉은 악마의 썸띵..., 국가대표 같은 그런... 썸띵이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때 그건 재미인 게 맞았다. 투지 또한 재미였다. 수영을 시작했던 딱 그 1년 동안은 (작년이다) 내가 봐도 나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수영장에서 눈물을 흘릴지언정 며칠 뒤에서 몇 주 후엔 훌쩍 자라 있던 내 실력을 발견했다. 이게 내가 수영을 지속하는 동력이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4가지 영법을 모두 배우고 나니 머리 한편에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자세교정은 어떤 면에선 끝이 없지만, 또 어떤 면에선 끝이 난 것 같다. 오리발도 스노클도 새로운 재미를 주긴 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플러스알파의 느낌이었다.

 이건 그저 수태기라고, 새로운 수영복을 들이면 해결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솔깃했다. 가벼운 슬럼프나 권태기는 새로운 장비만으로도 해소되니까. 하지만 이번엔 겨우 새 수영복 갖곤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다. 새 수영복이 한 벌이 아니라 여러 벌이면 해결되려나 생각도 해봤지만 한 트럭을 갖다 준대도 해결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근본이 될 동력을 찾고 싶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영에 가던 내가 동력을 잃고 띄엄띄엄 수영을 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자유수영 날이었기 때문에 내가 전담으로 모신 선생님 두 분도 계셨다. (아시다시피 진짜 선생님은 아니다. 내가 그냥 혼자 속으로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는 아저씨들이다) 가벼이 인사를 하고, 뺑뺑이를 돌다가, 약간의 자세교정 조언을 받고, 또 뺑뺑이를 돌다가, 방금 들어온 다른 멤버에게 또 인사를 하다가, 또 뺑뺑이를 돌다가 조심스레 나의 두 번째 동력을 찾았다.

 

 이번 나의 수영 동력은 “사람”이었다. 뺑뺑이를 돌다 잠시 쉬고 있는데, 빨간 수모아저씨가 “이젠 진짜 상급반 가도 되겠네.” 말씀하셨다. (평소에 칭찬이 인색한 분이셔서 이런 칭찬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여전히 수영이 심드렁한 상태였다. 이 칭찬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지금 이 문장을 치면서야 깨닫고 있다.) 이 말씀을 듣자 나의 왕초급 시절부터 나를 지켜봐 오셨던 수영장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빨간 수모 아저씨의 “이젠 진짜”라는 단어는 이제까지 나를 관찰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말이니까. 유아풀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던 나, 성인풀에 조심스럽게 입수해서 팔 돌리기를 연습하던 나, 유아풀에서 다시 평영 발차기를 연습하는 나, 나살려라 자세로 접영을 연습하는 나. 이 모든 걸 여기 새벽수영 6시 타임 멤버들이 지켜보셨다. 나는 혼자 운동하는 게 좋아서 수영이 좋았다. 그런데 결국은 사람을 원동력 삼아 수영을 다니게 되다니. 아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가?

 

 

 최근엔 거북목 이슈로 수영을 일주일 넘게 쉬고 있다. 우리 동네 돌고래가 꿈 이랬는데 왜 거북이가 되고 있었을까? 몸이 좀 괜찮아진 것 같아서 어제는 오래간만에 살짝 수영을 하고 왔다. 그런데 아뿔싸. 그날 하루종일 온몸이 아팠다. 그래서 앞으로 며칠은 더 쉬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어제 수영장에 간 덕분에 오래간만에 멤버들과 얘기를 나눈 것이다. 그동안 내가 출석하지 않아 걱정하셨을 텐데, 그 의문을 해결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다. 여러분~! 저는 몸이 다 회복되면 다시 수영장으로 컴백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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