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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Sep 30. 2022

동티모르의 땅 끝 마을, 꼭 가야만 했나

배낭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세계일주를 했다고 하면 꼭 물어오는 질문 중 하나는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것이다. 그러면 ‘가장’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해진다. 보통은 질문을 한 상대가 누구인지, 이 질문 전에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따라 대답이 달라지곤 한다. 그중, 여행 좀 해봤다고 우쭐대는 사람의 기를 조금 눌러 주고 싶을 때 쓰는 나의 비장의 카드는 바로 동티모르의 자코 섬(Jaco)이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여행 정보도 흔치 않은, 게다가 와서 보니 UN 주둔지였던 동티모르에 온 내 행보가 처음에는 조금 무모했나 싶기도 했다. 그때, 나의 호기심을 계속해서 자극한 건,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의 숙소 안 주인인 리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녀는 결국, 어릴 적 ‘엄마 찾아 삼만리’ 같은 만화를 보며 싹튼 모험심까지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 내고야 말았다.


그녀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이 숙소를 거쳐간 다른 여행자들의 생생한 경험에서 나온 정보들이었다.


" 동티모르에서는 정해진 시간 없이 ‘기다리면 언젠가 오는 것’이 버스이고,

'아직 있을 수도, 아니면 사라졌을 수도 있는 것’은 길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가게 이름들이죠.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만이 누릴 수 있는 곳’이 동티모르를 찾는 여행자들이 말하는 '찐 명소'에요"


리타가 하는 아리송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보물지도를 손에 쥔 것 같은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리타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힌트들을 종합해 뚜뚜알라(Tutuala)에 가기로 결심했다.


수년간 준비한 나의 세계일주 리스트에 단 한 번도 이름을 올려 본 적 없는 이 작은 나라가 내 인생 최고의 여행지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가득 안고서.



1.

뚜뚜알라는 동티모르의 동쪽 끝, 즉 땅끝 마을에 해당한다. 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중간에 큰 도시인 로스팔로스(Los Palos)를 거쳐가야 했다. 모든 시외버스는 오전 일곱 시에서 여덟 시에 사이에 떠난다는 리타의 말에 일곱 시부터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다행히 30분이 지나 버스가 왔고, 내가 유일한 승객인 듯했다. 빈 수레처럼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동네를 빙빙 돌더니 골목 하나를 지날 때마다 승객이 한 명씩 늘어났다. 정류장이 아닌 집 앞에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우는 이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무게보다 더 나가 보이는 짐 더미를 갖고 나타나 버스 지붕 위로 짐을 올리느라 끙끙대며 적잖은 시간을 보냈다.

정확한 출발시간이 없는 버스는 같은 길을 여러 차례 돌았다. 내가 버스를 탄 정류장도 세 번은 넘게 지나쳤던 것 같다.


마지막 승객이 타고 온 오토바이까지 밧줄로 매달고, 승객은 문짝에 매달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자, 드디어 딜리를 벗어났다.




로스 팔로스까지는 일곱 시간이 넘게 걸렸다. 중간에 몇 번 도로에 서서 화장실을 가는 시간이 있었다. 나무 뒤, 수풀 안, 바지를 내리는 곳이 화장실이었다. 점심시간엔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 바나나 잎으로 싼 밥과 튀긴 생선이 나왔다.


로스팔로스에 도착해서는 승객들이 한 명씩 주소를 외쳤고 버스가 차례대로 섰다.


‘어디 가슈?’ 하는 표정으로 혼자 남은 나를 돌아보는 기사에게, ‘에스페란사’라는 게스트하우스 이름을 댔다.

리타가 알려 준 정보는 거의 맞아떨어졌다. 버스가 내려 준 곳은 슈퍼와 식당을 겸하는 숙소였는데 로스팔로스를 거쳐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 인 듯했다.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 버스를 타야 하는 나처럼 말이다


동티모르를 여행하는 매 순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내가 어쩌다, 이름도 낯 선 동티모르에, 그곳도 로스 팔로스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이건 꼭 봐야 해’ 할 만한 건 딱히 없었다.


판자촌에 가까운 마을을 거니는데, 왠지 모르게 그 풍경이 익숙하다. 흙먼지가 날리는 땅바닥에 앉아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 동생 여럿을 돌보는 누나. 그늘에 앉아 서로의 머리카락 속을 훑어가며 이를 잡는 여인들, 문이 없는 식료품점에는 비누와 낱개 포장된 빨래 가루와 설거지용 세제만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 다음으로 지나게 된 학교에는 활짝 열린 교실 문 안으로 어린아이들이 두 명씩 짝지어 책상을 나눠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낯선 땅, 동티모르가 아닌 우리 부모님 어린 시절의 한국에 간 것 같았다.


낯선 마을, 첫날밤.

로스 팔로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은 저녁 6시에서 자정 사이라고 했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으니 숙소의 전구가 갑자기 밝아졌다. 전기가 아예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다 하여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불빛이 들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슈퍼와 식당 또한 겸하는 곳이었는데, 현지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며 테이블에 둘러앉았고, UN 종사자들은 미지근한 맥주를 사가지고서는 돌아갔다.


어두운 불빛에 의존해 할 수 없는 것이 거의 없었기 차라리 일찍 자기로 했다. 각기 다르게 생긴 침대가 여러 개 놓인 방에 투숙객은 나 하나. 유일하게 모기장이 쳐진 침대를 골랐다. 딜리에서 했던 대로,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온 몸에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리고 숙소 주인이 준 모기향 두 개를 침대 양쪽에 놓고 잠이 들었다.


창 밖 동네 아저씨들의 목소리에 겁이 나서 여러 번 깨고,

모기향이 너무 독해 기침을 하며 여러 번 깨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못 일어날까 하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2.

동티모르에서는 늘 이동이 곤욕이었다.

정확한 버스시간도 승차장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번엔 또 몇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려야 뚜뚜알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전 날 마을에 도착하고서부터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뚜뚜알라로 가는 버스에 관해 물었고, 그 결과 아침 6시부터 10시 사이에 올 것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아침 여섯 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장소에서 나는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도 사람도 없는 텅 빈 그곳에서.


일곱 시가 되니 내가 앉은자리 옆으로 장사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 날 타고 왔던 버스가 마을을 돌며 딜리로 가는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던 버스는 더 이상 안보였다.


버스를 기다린 지 두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불안해졌다. 어느새 나는 마늘장사와 망고 장사꾼 사이에 껴 앉아 있었다. 장사꾼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뚜뚜 알라, 뚜뚜알라’ 거리며 버스에 관해 물었고, 곧 올 거라는 대답이 간간이 들려왔다.


"한국 사람이세요?"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이 나타났다. 반가울 법도 한데, 너무 지쳐 그럴 힘이 없었다.

이 더운 날 목도리를 두른 청년은 내 옆에 앉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어설픈 한국어로 읊어댔다.

1년간 서울 어디, 전라도 어디에서 일했다며 주머니에서 <LG석유화학>이라고 적힌 한국인의 명함을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한국 여자가 이곳에 쪼그려 앉아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치 준비해온 것처럼. 목도리 또한 한국 사장님이 준 것이라고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장님’이라는 말에, ‘사장님 나빠요~’ 하던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가 떠올라 순간 움칫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는 한국 음식과 한국 사람들이 좋았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 한국에 다녀온 유일한 사람이었다며 자부심 또한 갖고 있었다.


그와 대화를 하는 사이 동네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며 모여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그냥 동네 청년 정도로만 알았던 사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과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하고 있는 그의 한국말은 사실 알아듣기 어려웠다. 게다가 시제가 모두 과거형이라 내게 아주 큰 혼동을 일으켰다.

뚜뚜알라로 가는 버스가 언제 오냐고 물으면,

“왔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왔어요”


아홉 시가 훨씬 넘어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맞은편 파인애플을 팔던 장사꾼의 자리엔 여덟 살이 채 안되어 보이는 딸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장사를 이어갔다. 허름한 자전거를 탄 사내가 등장하여 팔에 두른 흰 뱀을 들어 보이자 주변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시장의 잔잔한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조바심과 근심으로 가득이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3.

열 시가 넘어갔다.

다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곳에 이렇게 계속 머물 것인가,

다시 딜리로 돌아갈까.

뚜뚜알라 왜 가겠다고 마음먹어가지고 이 고생인가.


옆에서 망고를 팔던 아주머니가 망고의 껍질을 벗겨 조용히 내게 건넸다.

됐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손을 절레절레.


"뚜뚜알라?"

한 남성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른 아침부터 이곳에 앉아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나를 뚜뚜알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대꾸조차 안 하는 내게 남성은 다시 물었다.

"뚜뚜알라에 간다고요?"

그냥 갈 줄 알았던 남성은 말을 이어갔다


"점심 먹고 뚜뚜알라에 갈 예정인데, 자리가 하나 남는데, 태 워 드릴게요. 11시쯤 다시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세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알겠다고, 기다리겠다고, 어디 안 가고 딱 이 자리에 있겠다고,

그의 인상이 갑자기 한 없이 인자해 보였고, 그런 그에게 단단히 확답을 건넸다.


그렇게 남성은 어디론가 갔고, 나는 그의 뒤통수를 보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뚜뚜알라로 가는 버스가 나타났다.

버스기사는 <뚜뚜알라, 뚜뚜알라>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분명 안이 터질 듯이 찰 것이 뻔한 버스를 이제는 거들떠볼 이유조차 없었다. 승객을 모으느라 마을을 몇 번 돌던 버스는 이내 사라졌다.



열한 시가 넘었다.

돌아온다던 남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시간 개념이 없는 곳이니 대략 11시에 온다는 소리였겠지.

그 남성이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나? 시계조차 없어 11시가 넘은 줄  모르는 걸지도.


열 두시가 넘었다, 남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날 속인 건가,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였나.

아까 그 버스를 탔어야 했는데, 지금쯤이면 버스 안에 꽉 껴서 뚜뚜알라로 가고 있을 텐데.

마을도 좁은데 내가 직접 그 남성을 찾아 나서볼까,

아니야, 그 사이에 남성이 이곳에 왔는데 내가 떠난 걸 알면 날 두고 떠나버릴지도 몰라.


오후 한 시가 넘었다.

이럴 순 없다.

오전 10시에 나타나서 점심 먹고 온다는 사람이 한 시가 넘어서 까지 안 나타날 순 없다. 나보고 기다리라고 해놓고. 사람을 이렇게 골탕 먹일 수 있나.

나도 미쳤다. 새벽 여섯 시에 나와서 지금까지 이 바닥에 앉아 있다니. 나는 미친 여자다.


바닥에 널브러져 모래를 뒤집어쓰고 나만큼 녹초가 되어있는 배낭을 다시 둘러맸다.

그리고 전 날 밤에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하룻밤 잤다고 익숙해진 그 낡은 건물이 눈앞에 보였다.

그때,

'빵-빵-"

뒤에서 자동차 클렉션 소리가 들렸다.

사라졌던 그 남성이었다.

후회, 원망, 절망, 자책 이 모진 감정들이 한순간에 공중분해되었다.

그를 질책하는 대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차로 달려가 돌아올 줄 알았다고, 고맙다고.


자신은 여행 가이드인데, 뚜뚜알라에 묵고 있는 손님들이 심부름시킨 것들을 구하느라 늦어졌다고 했다. 결국 점심은 먹지 못했다며, 그가 나를 차에 태우고 가장 먼저 간 것은 형네. 기다렸다는 듯 형수가 밥을 차려주었다.

밥을 먹으며, 뚜뚜알라에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의 차에는 나 말고도 마을 남성과 여성이 각각 한 명 탔다.

타들어갔던 내 마음을 헤아린 건지, 뚜뚜알라로 가는 길 그는 두 승객은 신경 쓰지 않고 영어로 내게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

"비포장도로긴 하지만, 인도네시아 식민시절 닦아 놓은 길이에요. 저것도 그 시절에 지어진 학교이고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엔 다 부수기만 했지, 발전한 게 하나도 없어요. 사진 찍고 싶으면 차를 잠깐 세울테니 언제든지 말해요"


차는 굽이굽이 산을 올랐다. 길가에 오두막집이 보이긴 했지만,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았다. 높은 지점에 다다르자 잠시 차를 정차한 남성이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바다와 맞닿은 숲이 보였다. 집한 채 없을 법한 그곳은 한 눈에 봐도 가기  쉽지 않아 보였다. 뚜뚜알라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알폰소라고 했다.






숲인지 정글인지 알 수 없는 뚜뚜알라의 해변엔 게스트하우스가 딱 하나 있었다. 간혹 어부들이 보이긴 했는데, 주변에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방이 딱 세 개 있었다. 그리고 그 방들은 호주에서 온 교수들로 이미 다 차 있었다. 해양을 관찰하며 기후변화를 연구한다고 했다. 해변가에는 텐트가 하나 쳐 있었는데, 교수들의 보조 역할을 한다는 호주 남성 한 명이 지내고 있었다. 햇빛에 그을린 피부, 긴 곱슬머리,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왠지 텐트 생활과 어울려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교수들이 다음 날 사용할 산소통을 채우는 일을 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내게 대청마루와 해먹, 해변가의 대나무 비치체어, 아무 곳에서 자도 된다고 했다. 열대야 때문에 멀쩡히 집이 있는 사람들도 밖에 나와서 자는 마당인 동티모르에서는 호화로운 대접이었다.


교수들이 탐사를 나가고 하루 종일 비어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읽는 것이 하루의 가장 큰 일과였다. 이곳이 동티모르의 땅끝임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인지하면서.


텐트 밖에서 열일을 하는 호주 남성이 아주 드물게 말을 걸어올 때가 유일하게 내가 말을 하는 시간이었다.


"오늘 새벽에 스콜피온에 손가락을 물렸어요, 스콜피온 알아요? 독이 있는 녀석이죠"


그래서 어찌 됐냐는 물음에 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동네 무당을 불러왔는데, 무당이 글쎄,

내 손가락에 침을 확 뱉더라고요, 그러면서 곧 나을 거래요. 웃기죠?

더 웃긴 건, 지금 아무렇지 않다는 거예요"


다음날 아침, 그 호주 남성은 내게 자코 섬에 갈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여기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는데, 쉬지 않고 일만 했어요. 저기 섬 보이죠? 어부에게 태워다 줄 수 있냐 물으니 12달러만 달래요"


100미터가 채 되지 않아 보이는 거리에 섬 하나가 보였다. 무인도였다.

'로맨스', 아니면 '생존'이 유일한 미션인,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 속에나 등장하던 그 무인도엘 갔다.


백사장에 주먹만 한 조개들이 살아 움직이는 신비함 빼고는 설렘도 두려움도 긴장감도, 생존을 위한 치열함은 더더욱 없었던 내 생애 첫 무인도, 자코 섬.

약속했던 두 시간 후 어부는 우리를 그곳에서 구출해 주었다.


빈 집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오로지 바다뿐인 뚜뚜알라에서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알폰소, 로스 팔로스에는 언제 돌아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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