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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ul 14. 2022

동티모르의 섬, 어쩌다 아따우로

벨로이 vs 빌라


동티모르 대통령을 이렇게 금방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를 찾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가 내가 탄 배에 나타났다. 대통령의 얼굴도 몰랐고, 거의 공짜에 가까운 배 안에 반팔 셔츠의 남자가 대통령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정체가 들통난 건 온몸이 딱풀처럼 끈적거리는 날씨에 새카만 선글라스, 그리고 검은 정장 바지를 오버스럽게 빼입은 백인 남자가 허리춤에 총까지 차고 그의 옆에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경호원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부실한 실내를 못 견디고 갑판대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더위를 식혔고, 대통령도 은근 이를 즐기는 눈치였다. 그 모습은 마치 성격 좋은 연예인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라가 없어 이 친근한 반팔 셔츠의 남자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 또한 보물 찾기에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흐뭇했다.




1.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Dili)에서 오전 9시에 탄 배는 아따우로(Atauro) 섬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UN 종사자들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이 배를 타려고 항구에 도착했을 때, 제프 할아버지는 며칠 전에 알게 된 현지인 친구라며 내게 아구스를 소개해 주었다. 집이 아따우로에 있다는 스물두 살의 아구스는 딜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를 간호하던 중, 형의 긴급한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 참에 제프 할아버지를 초대했고, 제프 할아버지는 날 초대했다. 아구스가 2주 만에 간다는 집에 챙겨가는 물품은 1리터짜리 생수 한 박스가 전부였다.


점점 가까워 오는 아따우로 섬의 모습은 조금 전 멀어져 가던 딜리의 모습과 데칼코마니같았다. 바닷가에 드문드문 세워진 자그마한 집들 뒤로 언덕보다 조금 높은 산들이 울룩불룩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으면, 아따우로 섬 쪽의 물이 조금 더 깨끗해 보였다. 물결도 더 섬세했고, 그 색은 너무 투명해서 마치 염분도 없을 것 같았다.

배가 섬에 닿자, 배 안팎으로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내리는 사람들과 타는 사람들, 부둣가에 쳐진 천막 밑으로는 다 먹은 접시를 치우는 재빠른 손놀림. 접시를 치운 후, 장사꾼들이 새로 내놓은 음식은 모두 같았다. 튀긴 생선과 잎에 싸서 쪄낸 밥.

굶주렸던 우리는 아구스를 따라 그의 형수가 일한다는 천막으로 곧장 갔다. 붉은 비늘이 바삭하게 튀겨진 생선을 보자 제프 할아버지는 허겁지겁 먹더니 금세 몇 마리를 해치웠고, 생선을 못 먹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맨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아따우로 섬의 주식은 생선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제프 할아버지와 함께 아구스네 집으로 향하는 내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배 안에서 아구스가 나 또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것을 고집스럽게 사양했는데, 섬에 도착하니 딱 두 개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모두 UN직원들로 꽉 차게 된 걸 알고 마치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내 나름의 생각으로는 폐가 될까 봐 그런 거였는데, 게스트 하우스를 두 곳이나 함께 가는 헛수고를 시켰으니 폐는 이미 끼친샘이 되었다 . 아구스가 앞 장서 갈 때 제프 할아버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편하게 지내고, 떠날 때 감사의 표시로 돈을 조금 주면 돼”


이 말이 처음엔 고약하게 들렸다.

'이게 미국인들이 개발도상국을 여행할 때의 마인드인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한 때 혼자 고민하다 풀지 못했던 문제의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들에게 초대를 받은 적이 손가락으로는 다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 의도가 불순해 보이는 것들은 제외하더라도 말이다. 그중엔 내가 숟가락을 얹기가 미안할 정도로 살림이 넉넉지 않아 보였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시각과 생각이 틀렸을지언정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은 돈을 내민 적이 있었는데, 그 손이 어찌나 민망했던지. 성의로 받아들여질지, 아니면 반대로 전달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70세가 넘고 여행 경험이 풍부한 제프 할아버지가 이렇게 시원하게 말해 주시니, 이젠 그 께름칙했던 기분을 내려놔도 될 것 같았다. 호의를 무조건 거절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흔쾌히 응하고, 마음껏 즐기고,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니 당장 베풀 수 있는 방법으로 보답하는 것.


아구스를 따라가는 동안 나와 제프 할아버지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바나나 나무와 망고나무가 무질서하게 배열된 길을 걸으며 나는 주로 바닥에 굴러 다니는 코코넛을 찍었고, 제프 할아버지는 집집마다 손수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찍는 것 같았다.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이 주 피사체였던 딜리에서 보다는 확실히 나았다. 그리고 이내 도착한 곳은 마치 아프리카 부족의 마을 같았다. 언뜻 보면 초가집,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나나 나뭇잎을 엮어 만든 여려 채의 집들이 마당을 중심으로 빙 둘러 있었다. 각각이 주방이었고, 거실이었고, 방이었고, 화장실이었다. 아구스는 자신 대신 딜리에 엄마를 돌보러 간 사촌 누나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유일하게 벽의 허리 높이까지는 벽돌로 지어진 초가집이었다. 창문은 없어도 바나나 잎 사이로 빛이 들어와 반듯하게 정돈된 침대의 시트에서 광채가 났다. 이렇게 손님이 들이닥칠지 몰랐을 텐데도, 말끔하게 정돈해 놓고 간 방을 보니 더 결레가 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은 아구스의 삼촌네 집이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아구스 형제와 엄마가 삼촌네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이라 했다.



2.

우리가 아따우로 섬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오후 네시에 아구스가 사는 벨로이(Beloi) 마을과 아따우로 섬의 또 다른 편에 있는 빌라(Villa) 마을 사이에 축구 경기가 열릴 예정이라 가족 모두가 조금씩 부산스러워 보였다. 이게 아구스가 ‘긴급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였다.

아구스는 벨로이 팀의 선수였고, 형은 팀 리더이자 감독이었다. 아구스의 집안은 5대째 아따우로 섬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구스를 따라 걷다 보면 형 네 집, 고모네 집, 할머니 동생의 손주 집, 할머니의 사촌 집까지 다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벨로이 마을 사람이라면 적어도 아구스와 피 한 방울은 나눠 가진 사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은 빌라 마을이었다. 제프 할아버지와 나는 아구스를 친구로 둔 덕에 축구팀원들과 함께 UN글씨가 새겨진 지프차를 타고 갔고, 경기가 시작된 후 에야 30여 명 정도의 마을 사람을 실은 작은 트럭이 도착했다. 하늘색 유니폼의 벨로이 팀과 빨간색 유니폼의 빌라 팀, 푸른 잔디밭 대신 펼쳐진 모래밭 뒤로는 햇빛이 반사되어 스트라이프 무늬가 생긴 바다가 펼쳐졌다.

벨로이팀과 빌라팀은 아따우로섬에서 오랜 숙적 같은 사이라고 했다. 어쨌든, 뒤늦게 도착한 벨로이 마을 사람들의 합세로 경기 분위기가 제대로 달아올랐다. 제프 할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아구스의 이름을 외쳤다. 마을 사람들 중에도 아구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아 보였다. 안 그래도 얼굴이 아프리카 사람처럼 까맣다며 햇볕에 그을리는 것이 싫어 배에서도 실내에만 있던 아구스는 그늘 한 점 없는 경기장에서 다른 선수들처럼 땀범벅이 되어 버렸다.


경기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빌라 팀에서 선 골을 넣었다. 그리고 전반전이 끝나갈 때쯤, 드디어 벨로이팀에서도 한 골을 넣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환호성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벨로이 팀 선수들이 심판에게 가서 뭔가를 항의하나 싶더니, 빌라 팀 선수들이 몰려와 다툼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거기에 마을 사람들까지 몰려가니 더 큰소리가 오고 갔다.

잠시 후, 아구스가 무리에서 빠져나와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있는 제프 할아버지와 내게로 달려왔다. 심판이 악의적으로 벨로이팀의 골을 무효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언쟁은 반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급기야 경찰들이 나타나 긴 막대기를 휘저으며 인파를 갈라놓았고 심판은 최종 결정을 외쳤다.

<벨로이팀의 골 무효>.

잔뜩 뿔이 난 벨로이팀 마을 사람들은 판정단 쪽으로 달려가더니 테이블을 모두 뒤집어엎어 버렸다. 다툼도 끝이 났고, 축구경기도 끝이 났다.




3.

삼촌네로 돌아오니 마당 부뚜막에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두 손님 때문인지 알아서 떠먹을 수 있는 뷔페식이었다. 식사의 메뉴는 조촐해 보였지만, 낮에 먹었던 생선을 빼고 쌀밥과 인스턴트 라면은 분명 바다를 건너 딜리에서 가져왔을 귀한 음식이었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미고랭이라고 불리는 이 라면은 생선을 못 먹는 나를 위해 신경 써서 준비한 것 같았다. 수도공급은 오후 네 시부터, 전기는 오후 여섯 시부터 들어오는 이 섬에서 바나나와 망고, 생선 빼고는 전부 다 귀해 보였다.


심지어 바람도 귀했다. 인도의 사막에서도 밤이 되면 슬그머니 찾아와 살갗 위로 신경을 자극하던 바람이, 바다로 둘러 쌓인 이곳에는 뜬 눈으로 밤을 꼴딱 지새우고 동이 틀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바나나 잎이 교차하는 부분마다 구멍이 송송 뚫린 벽으로도, 활짝 열어젖힌 문으로도 바람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이런 열대야를 선풍기도 없이 견디기 위해서는 이 섬에서 태어나 갓난 시절부터 이 극한의 날씨에 순응해 가는 것 외에 다른 적응 방법은 없어 보였다. 잠 못 이루는 밤은 지독하게 길었다.

바람 대신 강렬한 햇살이 방안을 가득 채운 이튿날 아침, 마당으로 나가니 제프 할아버지가 망고나무 아래에 앉아 계셨다. 마당의 해먹에 누워서도 잠을 시도해 봤지만 헛수고였다며 말 끝에 더위 먹은 개처럼 턱에 힘을 빼고 혀를 입 밖으로 반쯤 내미는 시늉을 하셨다.


이런 사정을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우리에게 아구스는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다. 국민 대부분이 가톨릭을 믿는 동티모르의 다른 도시와 달리 아따우로 섬의 종교는 마틴 루터 교였다. 종교가 없던 시절, 외국에서 선교단체들이 섬사람들에게 강요를 했다고. 초기에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형벌을 가하는 잔인한 방법을 썼지만, 지금은 섬 거의 전체가 믿을 정도로 정착된 상태라고 했다.

교회에 가려면 격식을 차려입어야 한다며, 아구스는 사촌 누나가 교회 갈 때 입는 시폰 드레스를 내게 건네주었다. 소매가 째이고 지퍼가 가까스로 닫힐 정도로 작아, 숨을 내쉴 때 마다 조심하지 않으면 옷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제프 할아버지에게는 긴 면바지와 셔츠를 빌려주었고, 교회의 부 목사님인 아구스의 삼촌과 아구스는 흰 셔츠로 단장했다. 동티모르에서 이렇게 근사한 매무새를 갖출 일이 생기다니,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여간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었다.


교회에 도착하니 예상과 달리, 우리만큼 차려입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드레스를 입은 사람은 나 말고는 성가대 여자 아이들뿐이었다. 이 시폰 드레스의 주인 또한 성가대 단원이거나 아니면 이번에도 나를 무척 신경 써서 그녀가 가진 가장 예쁜 옷을 내온 것임이 분명했다. 나와 제프 할아버지아구스의 양 옆에 앉아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성경책을 함께 봤다. 다 같이 찬송가를 부를 때에 나는 이곳에 그저 놀러 온 외국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입을 크게 움직이며 비슷하게 따라 부르려 애썼다. 옆을 흘끗 보니 제프 할아버지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 날 저녁 아구스의 삼촌네 집에서 마을 잔치가 열렸다. 들은 대로 라면, 축구경기의 뒤풀이와 같은 것이었다. 선수들 외에,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30-40명은 족히 모였다. 낮에 잡은 염소는 오후 내내 부뚜막 위에서 팔팔 끓으며 마당의 온도를 5도 넘게 올려놓는가 싶어 원망스러웠는데, 이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라지 않게 접시가 돌아가는 것을 보니 짐승 한 마리의 희생이 이토록 위대해 보일 수가 없었다.

어제의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지 않고 벨로이팀의 승리로 이어졌다면 더 흥이 나는 잔치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이는 곧 부질없는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누가 더랄 것도 없이 승자 못지않은 흥과 패기가 넘쳐 보였고, 분위기는 누가 봐도 경사 난 집의 대잔치였다.

어쩌면 전 날 있었던 빌라팀과의 축구 경기는 사실 이 잔치를 벌이기 위해 짜 놓은 구실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아구스, 제프 할아버지와 함께 베개를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바닷가로 향했다. 다음 날 새벽 세시에 UN 직원들을 실은 개인 보트 한 대가 딜리로 떠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보트 주인에게 부탁해서 내 자리도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제프 할아버지는 섬에서 일주일을 더 머물기로 했다.


알람 시계가 없어 혹여나 보트를 놓칠 수 있으니 아구스는 아예 바닷가 벤치에서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지난밤을 생각하면 등이 좀 불편해도 벤치가 더 나을 것 같았다.

가로등도, 집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 빛 한 줄기도 없는 어둠 속, 달 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아구스의 새하얀 옷 깃과 흙을 밟는 소리에 감각을 곤두세우며 걸었다.


우리 셋의 발걸음 소리 말고는 정적만이 흐르던 어둠 속, 바다에 가까워 올수록 정체불명의 소리들이 양 쪽 귀로 흘러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어둠에 적응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베개를 들고 사방에서 나와 바다를 향해 걷는 모습이었다. 어둠 탓에, 그 모습은 마치 좀비 떼 같았다.

바닷가에 도착하자 벤치는 이미 먼저 나온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늦게 온 사람들은 나무 아래로, 아니면 시멘트 바닥으로, 편평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누웠다. 그나마 게 덕에 머리만 편안했지만, 전 날 밤보다는 잠이 더 잘 왔다.


아따우로 섬의 더위는 이토록 유별났. 그곳에서 태어난 자도 이겨낼 수 없는, 인간이 '적응'하기에는 불가능한 범위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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