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수가 적으며...'
'수동적이나, '
'내성적임'
한국에서의 초등학교 시절 한 학년이 끝나면 나눠주는 생활기록 통지서에는 주로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어릴 적이라 그 본질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런 말들 뒤에는 '그러나' 하며 칭찬 비슷한 표현들이 이어졌기에 나의 단점으로 나열된 말들임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수줍음이 많거나 기를 못 펴는 아이는 아니었다.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있건 없건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며 만족감을 얻는 아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경주에는 반 대표로 나가고 싶어 악을 썼지만, 할 줄 모르는 고무줄놀이나 족구 경기는 끼지 못해도 홀로 앉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짝꿍을 괴롭히거나 반 아이들과 싸우기도 했고, 손을 들고 하는 발표는 물론 칠판 앞에 나가 발표하는 것도 꽤나 좋아했다. 그렇다고 수다스럽거나 무리를 선동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 안달 나서, 혹은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애교를 떠는 성격 또한 절대 아니었다.
요즘에서야 그 의미가 더 명확해지고 친숙해진 '내향인' 그 자체였다.
"정말 가지가지하는구나"
십수 년 전 처음으로 항공사의 승무원이 되었을 때, 당시 '전 남친' 신분이었던 그는 박장대소를 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어떤 것이든 전적으로 지지해 주던 사람이었다. 반면 나는 그 상대가 애인이건 부모님이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방전되는 듯했고, 연애를 빼면 내가 하고 싶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욕망에, 결국 그에게 안녕을 고하고 오랫동안 '나는 솔로'로 신나게 살았다.
그런 내가 안면도 없는 200-300명의 승객들과 좁은 비행기 안에서 장시간을 함께 한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앞 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나의 이러한 비논리적인 삶을 보여주는 재미난 포스팅 하나를 발견했다.
밖에서 외향인인척 일을 하고 돌아온 아내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쓰러지고, 그런 아내를 남편이 재빨리 두 손으로 받쳐 올려 안아 집 안으로 들어가는 짧은 영상이었다.
나의 일은 매 비행마다 새로 만나는 동료들과 비행 전 스몰토크를 하며 친해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신난 얼굴로 기차놀이 하듯 줄지어 들어오는 승객과 눈 맞춰 인사하고, 비행하는 동안 그중 적어도 50명과는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승객이 아니어도 일하면서 또는 쉬는 시간에 비행기 안의 주방역할을 하는 '갤리'라 부르는 협소한 공간에서 동료들과 계속해서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 것이 곧 업무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내 안에 잠시 들어와 있던 외향인의 영혼이 풍선 바람처럼 빠져나가고 곧 속이 허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과정에서 굳이 지난 시간들을 곱씹으며 평소의 나답지 못한 행동과 말을 한 것에 대한 후회와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그것이 고통처럼 느껴질 땐, 나 스스로에 대한 동정과 안타까움에 한동안 멍해져 있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이 내향인이라는 것이다.
조용한 숲을 거니는 것이 일상이고, 뜨거운 연기가 올라오는 사우나를 즐기며 차가운 호수에서 수영을 함으로써 활력을 찾는 사람들이다. 여름이면 바비큐 재료를 차 트렁크에 가득 담아 숲 속 오두막으로 한 달 휴가를 떠나기도 한다. 숲에서는 계절에 따라 딸기와 블루베리, 버섯을 캐고 추운 겨울이면 꽁꽁 얼려두었던 그것들을 꺼내 집에서 파이와 수프를 만들어 먹는다.
이 모든 일들은 주로 혼자이거나 가까운 가족, 몇몇의 친구들끼리만 하는 소소하지만 그들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들이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만 봐도 핀란드의 주류는 내향인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나, 핀란드 면적의 1/3을 차지하는 북부지방인 라플란드 지역은 거주하는 사람의 수보다 순록의 수가 더 많다고 하니 그런 곳에서는 아무리 외향인으로 태어나도 그 성격을 발휘하며 살기란 어려워 보인다.
다수의 내향인들로 구성된 핀란드인 동료들 사이에서 반드시 외향인 행세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탈을 자처해서 쓰는 이유는 아마도 오랜 기간에 걸쳐 생활환경에 의해 철저하게 학습된 외향인의 성격 또한 어느새 나의 모습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불합리함과 불평등한 상황에서 받은 상처들이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도 한다.
외국인으로, 이민자로, 서양 사회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기란 워낙 익숙해져 그때그때 느끼지는 못했지만, 나중이 되어 되돌아보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제일 구석진 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에서 안정감을 찾는 성격임에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언어가 어눌하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조별과제나 방과 후 활동에 끼워주지 않을까 봐 이미 친구들로 구성된 무리에 끼기 위해 짬짬이 애지 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성인이 된 상태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이웃들에게, 동료들에게 속내를 예상할 수 없는 이방인의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서양인의 수가 압도적인 일터에서 동양인은 얌전하고 소극적이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 무례함의 타깃이 되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나아 보이기 위함이 아닌, 동등한 대우를 받기 위한 노력이었기에 칭찬은 커녕 그 결과가 플러스나 마이너스가 아닌 '제로'인 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겉은 외향인, 속은 내향인으로 근근이 살아왔다.
유재석 씨는 여러 방송에서 자신이 내향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본인의 결혼식에서 속으로 '아유, 빨리 끝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인과 약속이 잡히면 그때부터 마음이 불편해 지다가 약속이 취소되면 행복해진다는 한 게스트의 말에도 진심으로 공감했다. 그는 심지어 연락에 대한 피로감에 '카톡'조차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TV안에 들어가 코미디언으로서 대중을 웃기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셀럽들을 만나는 국민 MC까지 된 마당에, 내향인들이 못 할 직업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정작 내향인들에게 문제는 직업이 무엇이냐가 아니다.
단,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 사이를 얼마나 유연하게 오고 갈 것이며, 다소 상반되지만 그 안의 모습 모두가 '진짜 나'임을 받아들이고 '완전하지 않은 나의 모습'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힘을 어떻게 키울 것이며, 무너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 것이 내향인들의 삶에 있어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방송에서 깐족거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유재석 씨는 자신의 평소 모습은 굉장히 과묵하다고 했다. 30년이 넘는 방송 생활에 '국민'타이틀 까진 단, 그야말로 '프로'인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방송을 가족들과 함께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는 '반전'이자 '의외'인 그의 이런 모습이 내향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일으키고 위로가 된다.
이 자리를 빌어,
내향인의 성격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보태주시고,
여전히 내향인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반박의 사례가 되어주신,
한 번도 뵌 적 없는 유느님,
감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