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엄마이고 아빠인지는 나이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20대 중반에 아이가 둘인 동료, 정년을 앞뒀지만 싱글인 동료들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둘 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아이를 양육하기도 하고, 동성애자 부부는 결혼 연차가 오래됐음에도 아이가 없기도 하다. 따라서 본인이 먼저 아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그들이 엄마인지, 아빠인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사적인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 핀란드인들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아이가 있다고 하더래도 일과 개인의 삶에 비중을 크게 두는 동료들의 특성 때문인지,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는 여간해서는 잘 하지 않는다. 물론, 일 할 때 잡담할 시간이 나지 않을 만큼 바빠서이기도 할거다.
그래서인지 잠깐 짬이 난 틈에, 자식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료들이 왠지 좀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이 투정이건 자랑이건 상관없이.
"오 마이 갓"
아들, 딸 셋이 모두 현재 10대 나이라는 아빠 동료의 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크게 나와버렸다. 자식도 없는 나는 상상만 해도 어깨가 무겁고 머리가 아플 것 같아서. 내 말에 내가 당황하며 남의 삶을 내 멋대로 판단한 것 같아 미안해 지려는데, 동료가 슬기롭게 대답했다.
- 그렇지, 오 마이 갓이지. 근데 애들이 다 순해.
그래도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회사에 짧은 비행, 그것도 아침비행으로만 신청해서 오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고 있어.
그런데 방학 기간에는 힘들지. 계속 같이 있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애들 셋 데리고 여름휴가 가는 것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마치 싱글대디인 듯 말했지만, 그에게는 워킹맘인 아내가 있다. 그의 말에서 육아에 관해핀란드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지 않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 내 딸이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되어서 이번 여름에 친구들이랑 베를린으로 기차여행을 떠날 거야. 다 컸으니 기차 예약이며 여행 준비 모두 스스로 하게 했어. 처음으로.
비행 전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며 딸과 채팅 중이던 엄마 동료의 얼굴엔 근심이 비쳤는데, 비행 중 딸 이야기를 할 땐 오히려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 이제 이 엄마 없이도 이런 큰 일을 스스로 하는 나이가 되었다니.
어젠 나한테 뭐라는 줄 알아? 자기가 여행 준비를 하면서 기차표며 호텔이며 얼마나 비싼지 이제야 알았대. 그동안 엄마, 아빠가 자기 여행 데리고 다니며 이렇게 많은 돈을 쓰는지 몰랐다며 고맙다고.
아유 우리 딸, 내 눈엔 아직 애기인데.
그러는 그녀의 눈이 촉촉해졌다.다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감추고 아이에게 모든 걸 맡긴 그녀가 진정한 슈퍼맘처럼 보였다.
동료들과 핀란드의 세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내 경우는 프랑스에서보다 월급은 올랐고, 세금은 줄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일을 쉬는 동안 생활보조금도 받았다. 그래서인지 앞으로 낼 세금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의견을 내던지며, 비행 25년 차인 사무장의 생각을 물었다.
- 월급이 조금만 올라도 세금이 얼마나 많이 오르는지 알지? 내 급여는 네 것보다 더 높지만 세금은 훨씬 더 높겠지. 음...그래도 그게 아깝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아들이 둘인데 여러 가지 교육 혜택을 받으며 키웠고, 큰 아이는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학생대출> 또한 받을 예정이니 내가 낸 세금으로 아이들이 혜택을 받은 샘이니까.
* 핀란드 국공립 대학의 학비는 무료이며, 생활비와 학업 재료비 차원에서 <학생대출>을 받을 수 있는데 학업 과정 년수와 학위 등급에 따라 일부 금액이 환급되어 실제로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줄어듦.
그녀의 월급은 내 것 보다 훨씬 더 괜찮고 사업가인 남편은 현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두 아이 모두 독립하여 큰집이 필요 없어 곧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도 했으니 부부의 경제적 사정은 넉넉해 보였다. 그럼에도 아이가 <학생 대출>로 생활을 할 예정이라는 말은 대학생인 아이가 몸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독립했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내 많은 동료들은 그렇게 만18세에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났다.
남편 또한 승무원이고, 부모님 찬스도 없이, 열 살 아래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료는 얼마 전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 비행 마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갔더니 애 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낮시간 동안엔 남편이 봐줬으니 이젠 내 차례인데 어떡해. 공원에 데리고 나가 놀아주는데, 너무 힘들어서 막 울고 싶었어.
하루는 아이들 자랑을 했다가, 또 다른 날엔 힘든 소리만 늘어놓는, 내 동기이기도 한 엄마 동료는 늘 말끝에 자책하곤 한다.
- 난 나쁜 엄마야. 더 많이 놀아줘야 하는데.
나에게는 아이가 없다.
비행을 마치고 나면, 머리가 띵해서 소파에 누워있거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일상을 크게 자치한다. 출퇴근 시간이 밤낮으로 들쭉날쭉하고, 해외 체류를 하고 오면 시차적응이 쉽지 않아 이 직업을 갖고는 여가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가 힘들다는 생각이 점점 더 지배적이 되어간다.
하지만 엄마 동료와 아빠 동료는 나의 이런 생각을 뒤집어 엎는다. 그들은 해외에 비행을 가서도 채팅앱과 화상통화를 이용해 원격으로 아이를 돌본다. 매비행마다 팀이 바뀌는 회사에서는 동료들과, 그리고 매달 바뀌는 비행 스케줄 때문에 집에서는 배우자와의 팀워크까지 발휘하면서 말이다.
아이를 키우는 내 동료들, 엄마 스튜어디스와 아빠 스튜어드는 위대하다.
* 제목 사진: 엄마 스튜어디스의 손
Daume <직장IN> 과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어 3만 뷰 이상 조회되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