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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Mar 27. 2023

저는 비행 공포증이 있어요

승무원들은 승객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승객들이 탑승하기도 전, 승무원들은 승객의 성함과 성별 등의 기본 정보는 물론, 유아와 아동, 휠체어 이용자, 단체 여행객들의 가이드, 국가 간에 양도되는 범죄인 등의 좌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비행 시 증상이 발생할 수 있는 병력이 있는 승객들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승객 본인이 좌석을 예매할 때나 공항에서 체크인을 할 때 항공사에 미리 알려준 정보다. 이러한 것들은 승무원들이 비행 전 브리핑을 할 때 다시 한번 공유하고, 만약의 상황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된다.


뇌질환이나 심장마비를 앓은 경험이 있다던가 당뇨, 특히 발작이나 쇼크에 이를 수 있는 저혈당의 경우 더욱 그렇다. 미리 알려주면, 비행 중 승무원들의 보호뿐 아니라, 증상 발생 시 즉각적인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다.


간혹 너무 사소해서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말하기 꺼려지는 증상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비행 공포증 (Aerophobia)이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헬싱키로 돌아오는 비행이었다.

키가 훤칠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탑승 중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저는 비행 공포증이 있어요"


하얀 파카에 검정 헤드폰을 끼고 있던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청년들과 자리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 중 한 명은 그의 좌석 번호를 재빠르게 어딘가에 적었다.


핀란드 국내 비행이나, 가까운 유럽을 왕복하는 비행을 하다 보면 이와 같은 승객들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어린 소녀부터 덩치가 산만한 남성, 노인까지 다양하다.


땅 덩어리가 크고, 러시아와 스웨덴 빼고는 다른 국가들과 육로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아 핀란드에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비행기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다 (러시아 국경은 전쟁으로 인해 현재 막힘). 비행 공포증을 극복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비행 공포증'이라는 것이 아주 가볍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 누군가가 이런 증상이 있다고 한다면 당신을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예라이~ 촌놈아'

뭐 대략 이런 반응 아닐까.


보통 시골의 노인들이 흔한 말로 '차멀미' 때문에 차를 못 탄다고 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자동차 공포증(Amaxophobia)' 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 두 가지 모두 영어로는 포비아(Phobia)라는 말이 붙는데, 일종의 병에 해당하는 '공포증'이라는 뜻이다. 물론 나는 의사가 아니니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다.


비행 공포증을 호소한 승객들은 기내에서 다양한 증상들을 보인다.


특히 이륙이나 착륙을 할 때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이는데,

손을 떨기도 하고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울기도 한다.


비행 공포증을 알려 온 한 승객을 이륙 전, 승무원과 마주 보고 앉는 비상구 옆 좌석으로 옮겨 준 적이 있다. (승무원과 함께, 그리고 비상구 옆이라는 사실이 불안감을 덜어 주기도 한다.)


비행기가 강한 엔진 소리를 내며 이륙을 시도하자 책을 꽉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이 굳어지는 듯했고, 급기야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바로 옆에 일행이 있었는데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었고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본인이 '비행 공포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박동 수가 빨리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니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고 호소하는 승객들 중 일부가 이에 속한다.


증상의 원인은 어려가지가 있다.

비행기라서가 아니라 단순히 '폐쇄 공포증' 일 수도 있고, 높은 고도에 대한 두려움, 비행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과거 안 좋았던 비행 경험에 대한 트라우마 등 이유는 다양하다.


이러한 승객들에게 우리 승무원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단순하지만,

의사가 처방해 주는 자낙스(Xanax)와 같은 신경 안전제보다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


바로 그 불안함을 진정시켜주는 일인데, 그 공포증을 당신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곁에 있으니 '함께'싸워 극복해 보자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


나는 이전에도 승무원 경험이 있지만, 현재 항공사에서 일하기 전 까지는 비행 공포증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런 증상을 잘 인지하여 솔직하고 용감하게 알려주는 승객들과 이를 대처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핀란드 북부의 한 도시 끼띨라(Kittilä))에서 탑승한 키가 작고 볼이 빠알간 30대 중반의 여자 승객이 '비행 공포증'을 알려왔을 때는 그녀가 막 탑승 했을 때였다.

우리 승무원들은 아직 문이 활짝 열려있는 조종석으로 그녀를 안내했고 두 명의 파일럿을 소개해주었다. 그러자 두 파일럿은 그녀에게 이날 헬싱키까지의 비행은 어떤 고도로 어느 지점을 지나서 비행할 것인지, 날씨로 인해 기내의 흔들림은 어느 정도 예상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물론 이 내용은 우리 승무원들도 이미 브리핑 때 전달받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더 안심할 수 있도록 파일럿과 대화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녀가 자리로 돌아간 후, 이륙 전에 한 승무원은 그녀에게 농담을 건내며 긴장을 풀어 주었고, 비행 중에는  또 다른 승무원들이 돌아가며 그녀 옆 빈 좌석에 앉아 사소한 잡담을 나누며 그녀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했다.



코펜하겐에서 탑승한 하얀 파카를 입은 훤칠한 청년은 앞 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박다시피 하고 앉아, 비행 내내 귀에서 헤드폰을 떼지 않았다.

마치 그의 병을 아주 잘 이해하는 듯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행들은 그에게만은 말을 걸지 않는 듯했다. 승무원들 또한 이륙 전에는 돌아가며 그와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가 헤드폰을 다시 낀 이후로는 그를 예의주시하기만 하고 방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평소보다 심한 터뷸런스(turbulence; 난기류로 인한 기내 흔들림)가 발생했다.


터뷸런스는 웬만한 비행에는 한 번쯤은 발생할 만큼 흔한데, 보통은 물이 가득한 물컵에서 한 모금만 마시면 물이 넘쳐흐르지 않을 정도로 가볍지만, 심할 경우에는 기내식이 담긴 무거운 카트가 날아가고 부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안전벨트 등이 켜졌고, 터뷸런스에 관한 안내방송이 기내에 울려 퍼졌다. 그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승무원들은 재빠르게 앉고 승객들 또한 천천히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내가 평소와 달리 아주 무섭게 흔들렸다. 여기저기서 뒤늦게서야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터뷸런스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정도는 승객들 마다 다른데, 그 전의 비행경험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경우는 안전벨트 등이 켜진다고 해도 그 정도가 미약하기 때문에 비행 경험이 많은 승객들도 아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행기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아래위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맨 뒤에 앉아 기내를 바라보는데 거구의 북유럽인들의 몸이 들썩거릴 정도.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소리가 들렸고, 몇 명의 승객은 정말 롤러코스터라도 탄 양 양팔을 위로 올리며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승무원들은 하얀 파카를 입은 훤칠한 청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의 불안감을 없애주기 위해 건넸던 따뜻한 말 들, 공든 탑이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비행기 맨뒤편에 앉은 승무원들은 급하게 세워놓은 음료 카트가 고꾸라지지 않도록 앉은 채로 붙들고 있어야 했고,

극심한 터뷸런스는 몇 분간 계속되었다.


안전벨트 등이 꺼지자 마자, 우리는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그는 여전히 헤드폰을 낀 채로 바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이봐요'


그의 엄마뻘쯤 될 만한 우리 승무원 한 명이 그가 귀에서 헤드폰을 잠시 벗도록 했다.


"내가 거의 20년을 넘게 비행했지만, 이런 심한 터뷸런스는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당신도 우리 모두도 무사하네요. 이걸 견뎌내다니,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그는 다시 헤드폰을 끼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의 비행 공포증은 더 심해졌을까,

아니면 놀랍게도 사라졌을까.



극심한 터뷸런스로 고꾸라진 음료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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