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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Jan 07. 2022

승무원 유튜브 스타

승무원 유튜브 스타,

내 이야기는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쉬면서 앱으로 영상 만드는 것에 재미가 들려 유튜브 영상을 몇 개 만들어 올리다가 핸드폰 용량이 너무 금방 차서 관뒀다. 취미로 잔뜩 찍어놓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도 일인데, 동영상까지 관리하려니 핸드폰과 함께 내 뇌의 용량도 초과하는 것 같아서. 유튜브의 내용은 승무원에 관련된 것은 전혀 아니었고, 겨울왕국에서 사는 내  일상 이야기였다.

결론은 승무원 유튜브도 아니었고, 조회수도 얼마 안돼서 스타도 아니었다.




유튜브를 보면 승무원의 브이로그가 넘쳐난다. 요즘 들어 갑자기가 아니라 예전부터 쭉 그랬던 것 같다. 다양한 직업인들의 전문적인 영상부터 수준급으로 만든 여행 영상들, 세상에 이렇게 똑똑하고 인물도 훤칠한 사람들이 많나 싶을 정도로 소위 잘난 사람들이 수시로 등장하는 그곳에 승무원들의 유튜브는 꾸준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다.

비행기를 지방 버스 이용하듯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전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군들이 매력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시대에 '승무원'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이 내겐 참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해쉬태그, #cabincrew(승무원) #crewlife(승무원 일상) 이 인기 보증수표처럼 달려 각종 SNS에 세련된 외모, 세계를 누비는 모습, 화려한 일상을 담은 사진과 영상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중에는 콜라보를 제안하며 모델처럼 활동하는 슈퍼스타 급 승무원들도 보았다.

주로 올리는 내용들은 메이크업, 승무원이 된 과정이나 합격 비결, 패션, 비행하는 모습이나 쉬는 날의 일상 등 다양하다. 특히, 유니폼을 입은 셀피 사진이나 관련 영상은 별 내용이 없어도 '좋아요'가 폭발하고 '댓글'이 우수수 쏟아진다. 회사의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항공사에서 이런 승무원들의 활동을 마다할 리가 없다. 엉뚱하고 불건전한 소재로 회사의 명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한, 승무원들의 SNS 활동을 오히려 좋아하는 눈치다.


내 주변에도 유튜브를 하는 승무원들이 좀 있다. 몇 년 전부터 다시 비행을 시작하며 눈에 띄는, 예전과 달라진 점 이기도 하다. 솔직히 같은 승무원의 입장에서 승무원들이 올리는 유튜브의 내용들은 별로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그 유튜브에서만 보던 영상들을 찍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건 마치 남들은 보지 못하는 '비하인드 씬'을 보는 듯하다.


그들은 부지런하다. 비행이 있는 날 공항에 일찍 와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다. 비행이 없는 날에도 공항을 가거나, 유니폼을 입고 어디 좋은 데 가서 화보나 광고에나 나올 법한 '작품'을 찍고 오기도 한다. 비행을 가서도 메이컵과 헤어 영상을 찍기 위해 더 일찍 일어나기도 한다. 늘 잠에 쫓기는 일반 승무원들과는 다르다. 비행할 때 온갖 장비들을 챙겨 와 놀면서 동시에 그 장면을 찍고, 다시 찍고, 편집하는 부지런함이 존경스럽다.


그들은 끼가 많다. 팀들과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들어서는 길이었는데 한 유튜버 동료가 무리에서 천천히 벗어나더니 자신의 얼굴을 향해 핸드폰을 켰다. 환한 미소와 밝은 목소리로 현재 상황을 리포터처럼 조목조목 말하는 것이, 주변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비행기에 타서도, 일하는 시간,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리포터로 변했다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영상에 내 목소리만 넣는 것도 민망해서 관뒀는데, 유튜브는 저런 사람들이 하는 거구나 싶었다.


간혹 오버쟁이들도 있다. 동료들에게 카메라를 넘겨주고 이렇게 찍어달라 저렇게 찍어달라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상당히 정중하게, 어쨌든 철면피 근성이 필요하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포즈를 잡거나 연기를 한다. 일에 지장을 주는 것도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기꺼이 해준다. 나도 승무원이지만, 일하면서 어떻게 찍었나 궁금했던 장면들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결국 오버가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허락 없이 영상에 동료들을 담는 경우다. 유튜브는 그들의 취미이기도 하기에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편이다. 하지만 그 카메라가 나를 향한다면, 내 취미도 아닌데 참 당혹스럽다. 한 번은 비행을 가서 다 같이 해변에서 편안한 옷을 입고 식사 중인데, 유튜버 승무원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기 시작했다. 불편했지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길래 나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분위기를 깨면서까지 불편한 의사를 표시해야 하는 것은 결국 주변 사람들의 몫이다.


여하튼 열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승무원들을 보면 일에 대한 열정도 강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부끄러웠다면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간혹 팔로워를 늘리려는 욕심인지 직업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서슴없이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영상에서마저도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승무원 유튜버 중에는 이 직업이 오랜 꿈이었고, 눈물 나는 노력 끝에 그 꿈을 실현시킨 사람들도 있다. 단순히 여행이 좋아서, 혹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이 직업을 택한 사람들과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분명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이유다. 세상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직업을 갖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주변의 승무원 유튜버들이 실제로 일을 하고 그 영상을 찍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영상에서 보이는 그들의 행복이 거짓이 아님을 말해줄 수 있다. 영상이 실제의 삶보다 더 화려해 보일 때도 있지만, 반대로 덜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승무원'의 콘텐츠들이 인기몰이를 하는 것은, 그들의 외모나 해외여행을 실컷 하는 특별한 삶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빼어난 미모의 사람들은 어느 직업군에나 있고, 제작비를 지원받으며 여행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여행 크리에이터'라는 환상적인 직업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승무원 유튜브가 꾸준히 인기인 이유는 기존의 직업군이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이유와 어쩌면 같은 맥락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열정과 자부심,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자신감. 우리에게는 없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내 이야기가 아니다.





<Daum> 에 소개되어 4만회 이상 조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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