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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Sep 23. 2022

핀란드인 동료들과의 식사를 꺼리는 이유

동료들(선, 후배, 동기, 상사 포함)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비행이 끝나고 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가깝게는 공항에서 5분 거리에 사는 사람들부터, 멀게는 2-3시간을 운전하거나 기차를 타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헬싱키에 살고 있는데, 버스의 빈도수가 줄어드는 주말이면 버스를 놓칠세라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을 뛰어 가로지르며 빠져나가는 일도 있다.


비행을 늘 함께 하는 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매 비행마다 동료들이 랜덤으로 바뀌기 때문에 함께 식사를 할 만큼 친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회사 동료들과의 식사,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회식'이라는 것이 핀란드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사람들과 모임을 갖는 일은 기껏해야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회사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는 열려야 생길까 말까 한 정도.


그나마 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 때문에, 핀란드의 다른 직장에서는 흔치 않은 '동료들과의 식사'자리가 생기는데, 바로 해외에서 레이오버(layover)를 할 때다.


(*레이오버 - 비행 후 목적지에서 일정기간 체류하는 것.)


예전에 일하던 항공사에서는 비행 후에, 옷을 갈아입고 우르르 몰려나가서 식사를 하는 것이 꽤나 자연스러웠다. 그 수도 많아서 누구 한 명이 안 나와도 '우르르'는 변함이 없었다. 머릿수만큼 말도 많아 끊임없는 이야깃거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국적은 서로 달랐지만 나잇대가 20-30대로 비슷비슷했고 동료들은 대체적으로 수다스러운 성향들이 강했다. 얄팍하게 생긴 친밀감은 식사자리, 그 이후까지도 쭉 이어져 두터워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일하는 항공사는 여러모로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


북유럽의 은 인건비, 혹은 세금 때문인지 같은 사이즈의 비행기에 승무원의 수는 그 전 회사의 반 밖에 되질 않는다. 동료들의 연령대는 20대에서 정년을 앞둔 60대까지. 대화 거리는 다양한데, 핀란드인들의 성향이 수다스럽지는 못하다. 얄팍한 친밀함의 밀도는 비행을 마칠 때까지 편안하게 식사를 함께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하는 일이 거의 없다.


또한, 동료들의 90% 이상이 핀란드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들의 성향과 식사문화가 두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데, 그중 나를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식사 시간'이다.


이는,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과 '식사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모두 해당된다.



"5시 45분, 로비에서 봅시다"


마이애미에 3박 4일 레이오버로 비행을 갔을 때다. 긴 비행이었음에도 여전히 식사를 할 만큼의 친밀도를 못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긴 레이오버인 만큼 한 번쯤은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우리는 단톡방을 만드는 예외적인 일을 벌였다.

둘째 날쯤, 단톡방 알람이 울렸다, 한 파일럿이 대망의 저녁식사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평생을 저녁형 인간, 즉 올빼미족으로 살아온 나는 평소 잠에 드는 시간이 자정 이후. 그러다 보니 저녁을 늦게 먹는 편이고, 살면서 프랑스인들과의 저녁식사가 가장 편안했다.

저녁 7시에서 7시 30분에 식당들이 일제히 저녁식사의 종을 울리고, 그 시간도 너무 이른 프랑스인들은 아페리티프 음료를 마시는 여유를 부린다. 그리고 정작 식사는 여덟 시에서 아홉 시는 되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하여 쉴 새 없는 수다와 점원의 느릿느릿한 서비스로 아홉 시, 열 시까지 이어지는 '파리의 저녁'이 내 에 수락한 저녁시간.


그런 내게 5시 45분은 한 낮과도 같은데, 저녁이라니.

한 번은 독일 프랑크 푸르트에서 5시 30분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고 함께 나갔는데, 가는 식당마다 굳게 닫힌 문에 <저녁  6시부터 오픈>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동료들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기다림이 습관이 아닌 핀란드인 동료들과 이곳저곳을 더 기웃거리다 결국 시간만 버리고 저녁 6시에 문 연 아무 식당에나 갔다. 그날 나는 속으로 '저녁 7시 이전에 문을 여는 곳은 베트남 쌀 국숫집과 크레페 집뿐인 파리에 오면 기가 차 고꾸라지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를 공감해주는 이는 저녁을 아홉 시, 열 시에 먹는다는 스페인 동료들 뿐이다.)


배가 고프지 않은 이른 시간에 먹는 저녁이 맛있을 리는 없지만, 동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의미를 두고 가끔 참여하는 편이다.

그러나, 오후 4시에도 시작하는 핀란드의 저녁식사 시간은 내가 아직 용납을 못하고 있다.



"빨리, 빨리"


핀란드에 살면 살수록 핀란드인들과 한국인들의 공통점을 많이 발견한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는 음주문화와 노래방, 사우나(찜질방), 기타 등등. (언제 이런 것들을 날 잡아 한꺼번에 써 보려 한다.)


한국 사람들처럼 밥을 빨리 먹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그것도 보글보글 끓는 찌게 국물, 불판에서 막 집은 뜨거운 고기들을 곁들여가면서 말이다. 거기에 매운 음식까지 포함시킨다면 한국 사람들을 능가할 사람들이 있을까. 나도 같은 한국인인데 나의 혀와 소화기능은 애초부터 불량이 아니었나 싶다.

나의 식사 속도는 보통의 한국인들보다 약 2.5배 정도 느린 것 같다. 어릴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의 식탁 위에서의 수다가 그렇게 반가웠는지 모른다. 음식은 뒷 전에 두고 서로 말하려고 틈새를 노리는 그 사이에서 나는 그 경쟁에 끼지 않고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핀란드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에서 같은 유럽인인 프랑스인이 아닌 한국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접시가 나오자마자 라면도 아닌데, '후루룩, 후루룩' 몇 번이면 음식이 사라진다.

햄버거가 나오면, 한 입, 두 입 베자 마자 '꿀걸, 꿀꺽'.

그렇게 식사 시간이 15분을 넘기는 일이 없다.


현재 회사의 입사 교육을 받을 때, 우리 팀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이 절반이었다.

오전 8시에서 저녁 4-5시까지 이어지는 교육이었는데, 핀란드 문화가 낯 선 우리에게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점심시간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10시 45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 날도 많았다.

그나마도 나름 인심 쓰듯 주었던 점심시간이 고작 45분. 점심이라 하면 1시간은 기본인 우리들에겐 야박했지만, 핀란드인들로 구성된 무리는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남아도는 시간을 못 참는 듯했다.

(식사시간엔 공교롭게 외국인들과 핀란드인들로 그룹이 나뉘었는데, 우리들은 도시락을 싸왔고, 핀란드인들은 구내식당에서 먹었기 때문. 이것도 역시나 문화 차이)


핀란드인 동료들과의 식사시간은 대략 이렇다.

주문 후, 음식이 늦어지면 조바심을 내다가, '후루룩, 후루룩', '꿀꺽, 꿀꺽' 그렇게 식사를 마친 동료들은 엉덩이를 못 떼 안달 난 표정을 숨기지 못하, 그런 어색함 속에서 나는 나름대로 속도를 내 꼭꼭 씹으며 식사를 해낸다. 하지만 결국 음식의 반을 남기고 포기. 그리고 내가 포크를 내려놓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흔들어 계산서를 외치는 동료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의자에 앉기도 전에 반찬이 척척 나오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마치 도망가는 사람처럼 계산하고 커피 마시러 이동하는 한국인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먹기가 타고 난 핀란드인 동료들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내향인인 내가, 

내 마지막 한 입을 기다리는,

친밀하지 않은 시선들을 견디며 얼마나 괴롭겠는가.


내가 그들과의 식사를 꺼리는 이유는,


... 봐서다.



동료들과 푸켓에서 모히또. * 주의-핀란드인들과는 술도 체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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