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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o Nov 28. 2021

핀란드인 동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핀란드에서 나는 외국인, 그것도, 금발 중에서도 금발들이 모여사는 나라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그러나 튀는 외모나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시선이나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들은 그 이전의 나라들에 살 때 보다 되려  받는 편이다. 길거리에서는 눈동자만의 움짐임으로 나를 잠시 쳐다볼지언정 부담스럽게 고개까지 돌리는 사람들은 없다. 초면에 외국인이라서 받았던 신상에 관한 질문들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더욱이나 스몰토크에 약한 핀란드인들이라, 자주 마주치는 이웃, 거의 매일 보는 헬스장 직원, 단골 카페에 가더라도 나에 대해 물어오는 일은 아예 없다고 해도 될 판이다.


이는 핀란드인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해서라기 보다는 반대로 배려심이 넘치기 때문이. 불편한 시선을 주지 않는 것, 사적인 질문은 피하는 것,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하지 않는 것 등은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에게 마치 생활습관처럼 배어 있는 듯하다.  

이런 들의 성격을 두고, 타인과 불필요한 거리감을 두려 한다고  안 좋게 해석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오랫동안 외국인으로 살아온 내게는 젠틀하다는 느낌이 오히려 더 강하다. 그들의 젠틀함은 어색해도 함께 일해야 하는 회사 동료이거나 가끔 만나 커피 한 잔 하는 친구사이가 되어도 그 빛이 크게 바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핀란드인인 회사에서 나는  외국인 승무원, 동료다.

매 비행마다 팀원들이 랜덤으로 바뀌는데,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는 이미 본 사이보다는 처음 만나는 동료들이 더 많다. 비행 전 브리핑룸에서 만나기 전까지 서로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이름, 그리고 사원번호로 추측할 수 있는 입사 연차뿐이다. 물론 이름으로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만, 딱 그 정도다. 


비행 중에 기내 서비스를 마치고 승무원들끼리 식사를 하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적인 이야기들도 간혹 오고 가곤 한다. 지금까지 그래도 꽤  많은 동료들을 만나봤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내게 처음 던지는 질문들은 몇 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Where do you live in Finland? (핀란드 어디에 살아?)

이미 내 이름은 알고 있고, 그다음으로 하는 질문 중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참으로 사소하다.


Do you like living in Finland? (핀란드에 사는 거 좋아?)

마치 어딘가에 짜여진 레퍼토리처럼 두 번째 질문 또한 잘 바뀌지 않는다.


외국인들을 접하는 경험이 보통 핀란드인들보다 많은 동료들에게 아마도 이 두 질문이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무례하지 않으면서 가장 친근하게 다가가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인 듯하다.


Do you like Finnish people? (핀란드 사람들 좋아해?)

대부분의 질문들은 자신들보다는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개방형 질문들인데, 조금 더 나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들고 싶어 할 때 물어오는 질문이다.

핀란드인들은 서로 간에 신뢰가 강하고, 자신들이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정의하는 편이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내성적이면서 타인과 물리적,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두는 특성을 전형적인 핀란드인으로 규정짓기도 한다. 아마도 이러한 양면성을 지닌 핀란드인들을 좋아하냐고 묻는 것으로 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주로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은 남유럽인 들이었다. 프랑스에 살았던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우리 알고 있는 유럽인들과 달리 의외로 조용하고 내향적인, 유머는 생략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핀란드인들이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지내다 보니 그들의 이런 특성들에서 좋은 점들을 꽤 많이 발견했다. 그렇기에 두 번째 질문에도, 세 번째 질문에나는 긍정적인 답변을 줄기차게 늘어놓는다 (그들 방식의 스몰 토크였을 뿐 분명 이런 긴 답변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닐 테지만).

그러면 그들은 의외라는 표정에 이어 (핀란드와 자신들을 좋게 본 다는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땡큐" 하고 대답한다.

아마도 겨울이면 추위를 동반한 어둠이 거의 하루 전체를 차지하는 핀란드와, 따뜻하고 밝음과는 거리가 먼 핀란드인들을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물었기 때문인 듯하다.


"일본인 아니었어?"

비행을 꽤 오래 한 동료들은 내 이름만 보고도 한국인임을 단 번에 알아채지만, 그렇지 않은 동료들은 비행이 끝날 때쯤 야 이렇게 되묻기도 한다. 회사에는 주로 일본 노선을 도맡아 하는 일본인 승무원들이 있기에, 긴가민가 하면서도 일본인이려니 되짚고 있다가 나와의 대화를 통해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핀란드에서 몇 번 은 "실례가 안 된다면, 국적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을 들어본 것 같다. 그들에게는 국적들 묻는 것조차도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핀란드에 오기 전 까지는 나에게 이름보다 국적을 먼저 묻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냥  인사말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이 또한 지극히 사적인 질문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이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꽤나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에는 각양 각국에서 온 난민들이 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국적은 자신의 또 다른 신분을 드러내는 것과도 같아 낯선 이에게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동양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동양 어느 나라에서 왔거니 하고 단정 짓는 것 또한 일종의 선입견이다. 동양계 미국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외국인인 줄 알았더니 생김새만 다를 뿐 자신과 같은 현지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후자일 경우, 같은 나라 사람에게조차 '이방인'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기이한 일일까.


파리에 살 때 친한 베트남계 프랑스인 친구가 있었다. 부모님 두 분은 베트남인이었지만, 친구는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국적도 프랑스 하나다. 부모님이 어렸을 적부터 바빴던 탓에 베트남어도 잘 배우지 못했다. 그런 친구를 두고,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말을 아주 잘하네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친구는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도대체 이런 칭찬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야 할까.


나이를 묻는 것은, 한국에서야 호칭을 정해야 하니 묻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지사일 수 있다. 한국 외에도 아시아인들은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이름 묻듯 서슴없이 물어오지만 유럽에서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조금 친해지면 그렇게 실례가 될 만한 질문도 아니고, 본인이 먼저 오픈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 하지만 핀란드에서는 이 또한 조금 조심스럽다.


"네 나이가 몇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동료는 나를 이미 몇 번 봤음에도 나이를 물은 적이 없었고, 일정 나이에 누릴 수 있는 핀란드의 어떤 사회적 혜택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식으로 말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자, 나이 질문은 빼고 합시다"

핀란드어 수업시간에, 서로에게 국적을 묻고, 언제 핀란드에 왔는지를 묻고, 나이를 묻는 기본적인 대화를 연습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이'가 다른 것에 비해 훨씬 그 '사적인 수위'가 높다고 생각했는지, 이 질문은 아예 서로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 이 문장은 혼자 말하며 연습해야 하나요? 학생들은 좀 갸우뚱했다.)


결혼 유무와, 이성친구 유무에 관한 것 또한 타인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지극히 배려하는 핀란드인들에게 조심해야 할 질문들이다. 상대방이 결혼을 했더라도 그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사별, 이별을 했을 수도 있고, 이제 막 이성관계를 정리했거나, 아니면 이성을 한 번도 사귀어 본 적이 없거나 결혼에 실패했을 수도 있기에  상대방이 대답하기 꺼려할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좀 덜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그 '어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불분명하지만)에게는 그 조심성의 강도가 더 높아진다.



비행 전, 공항에서 동료들과 브리핑하는 모습.


<어느 날, 한 직원이 상사에게 기쁘게 임신소식을 알렸다. 상사는 축하해주었고, 다른 직원들에게 이를 알리며 이 직원 몰래 함께 깜짝 축하파티를 열자며 제안했다. 이 상사는 과연 옳은 일을 한 것인가?>

입사했을 때, GDPR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 유럽의회에서 정한 개인 정보를 법으로 보호하는 규정)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며 한 예로 들었던 내용이다.

'경사'는 널리 알리고 함께 즐거워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동의하지 않겠지만, GDPR에 의하면 대답은 '옳지 않다'이다. 직원은 임신소식을 상사에게만 알렸고, 상사가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은 이 규정을 어기는 행동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코로나로 인한 휴직 중  출산을 한 핀란드인 동기가 내게 메시지로 슬쩍 귀띔해 준 그 좋은 소식을 또 다른 동료에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배려심이 많고, 타지에서 온 내게는 '남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핀란드인들과 도대체 어떤 말은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할지는 여전히 어렵다.

핀란드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친구는 평생 간다는 말이 있다. 당최 사적인 이야기를 잘 터놓지 않으니 가까워지기가 힘든 것일 테고, 그만큼 사적인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사이라는 것은 엄청나게, 이루 말할 수 없이 가깝다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핀란드에 오기 전 까지는, 내가 외국인이라, 혹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한국인이라 특히 사적인 질문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받아 일들이 빈번했다. 매 번 무한 반복되는 물음에 주저리주저리 대답해주다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내 인생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 버리는 일도 종종 생겼다. 그리고 나중에 돌이켜 보며, '아, 내가 그 얘기를 그 사람에게 왜 했지'하며 혼자 이불 킥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핀란드인들과는 대화가 얼마나 길어지건 간에, 최소한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오히려, '(그들이 차마 묻지 않은) 그 얘기를 더 해줄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 때 도 있었다.


한마디로, 핀란드인들은 만나면 어렵지만, 헤어지고 나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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