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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Nov 14. 2018

기초반 수영일기, 열

공포와 허세 사이

강습 한 달이 지났다. 이러다 고개를 돌려 숨을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강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걸 하라고 했다. 무릎 아래까지 수영장 데크 위에 올리고 허벅지를 데크 벽면에 붙이고 물 위로 누우라고! 발을 올리고 물 위로 누우라니! 강습 5분만에 집에 가야 하나 심각히 고민하는 사이 앞에서부터 한 명씩 발을 데크위에 걸치고 뒤로 눕기 시작했다. 눕기 시작한 게 아니라 강사가 눕히기 시작한 것이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에 한 인상 하는 얼굴로 단호한 표정까지 지으며 누우라고 하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불안한 표정의 내게 강사는 절대로 빠지지 않으니 괜찮다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차렷 자세에서 엉덩이를 감싸고 뒤로 누워 귀까지만 물에 들어가게 해 보라고 했다. 강사가 들을 잡고 있었지만 분명 손을 뗄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온 몸에 힘이 들어갔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어딨다고... 강사는 내게 숨을 뱉어 보라 했다. 몸이 가라 앉았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키고 참으라고 했다. 몸이 떠 올랐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 했다. 숨 들이키고, 내 쉬고... 뒤에서 들리던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그러다 큰 소리로 들이키고, 내 쉬고가 들려왔다. 한 열 번쯤 그렇게 반복 했을 때 알았다. 나 혼자 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방학이면 시골 외갓집에서 일주일씩 놀다 왔다. 외갓집 앞에는 큰 개울이 있었고, 그 동네 아이들과 개울에서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한 아이가 조금 깊은 곳에서 다이빙을 하더니 나에게도 해 보라고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물 속에 뛰어든 나는 순간 깊은 물속으로 몸이 가라 앉으며 갑자기 몰려든 공포에 물속에서 허우적 거렸다. 그 순간이 5초쯤 이었을까? 하지만 그때의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함께 간 형이 허우적 거리던 나를 들어 올렸지만 그때의 충격은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물 공포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런 내가 물 위로 눕는 다는 것은 꽤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스무명의 회원들 사이에서 다 같이 뭔가 해야 하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휩싸여 물 위에 드러눕게 된 것이다. 그렇게 누워서 열 번쯤 숨을 쉬고 나니 순간 내가 수영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으니, 수영은 공포와 허세가 교차하는 벌거벗은 나를 보는 순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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