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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Aug 27. 2019

기초반 수영일기, 열 다섯

노력보다 중요한 것

수영을 시작한지 세 달째 되는 첫날 이었다. 기존 회원 중 10여명이 그만두고 10여명이 새롭게 들어왔다. 강사님은 새로 온 회원들의 수준에 맞춰 강습을 해야 한다며 자유형 왕복 3바퀴를 돌라고 했다. 당연히 25미터씩 잘라서 수영을 하지만 가슴이 터질 것 같이 힘든 시간이다. 그렇게 150미터를 마치고 강사님이 몇 명을 지목해 앞으로 오라며 순서를 정해 주었다. 기초반 이지만 같은 반 에서도 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눠서 강습이 진행된다. 첫 번째 달에는 뭐가 뭔지 모르고 허우적대다 지나갔지만,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두 번 째 달부터는 살짝 신경이 쓰이게 되는 순간 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회원이 들어오는 것과 함께 순서가 정해지니 나만 아니라 모두들 살짝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첫 달에는 제일 끝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두 번째 달 언제부터인가 중간 정도에서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세 번째 달이 되는 첫 날 첫 번째 그룹의 마지막인 다섯 번째 자리를 하사받은 것이었다. 


우리 레인에서 다섯 번째로 출발 한다는 것은, 내가 출발할 때 20명이 내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다리는 회원들은 앞에 출발하는 첫 번째 그룹이 어떻게 수영을 하는지 지켜보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 반의 수준은 앞에 선 다섯 명의 수준으로 결정되는 대단히 막중한 자리인 것이다. 

하! 하! 하! 

그러다 보니 강사님은 앞에 선 첫 번째 그룹인 다섯 명에게 가장 신경 써서 강습을 하게 되고, 새로운 영법이나 기술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기도 한다. 

하! 하! 하! 


만 두 달 만에 수영의 고수가 된 것 아닐까 싶었다. 우리 반의 실력 향상이 내게 달렸다는 큰 부담감과 함께 20명이 내 수영을 보고 배우고 있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배영을 출발 했다. 자, 이게 상위 클래스의 실력이다~~ 뭐 이런 느낌으로! 

그런데 방금 출발 한 것 같은데, 누가 내 발을 쭉 잡아당기는 것 아닌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허우적대며 물을 꼴깍 꼴깍 마시며 일어났다. 그런 나를 세워 두고 강사님은 뒤에 서 있는 20명에게 내 자세가 뭐가 문제인지 대략 이만 가지 정도 지적하시고는 나에게 뒤로 가서 앞에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는지 보며 내 자세를 고쳐 보라고 했다. 

5분 천하였던가... 정말 익숙한 뒷자리로 돌아왔다. 자존심이 상할 데로 상했지만 2달 넘게 뒤에 서서 앞에 가는 회원들을 보던 게 습관이 돼서인지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고 강사님은 힘을 빼고 출발 하라고 했다. 도대체 평소에는 그렇게 힘이 없는데 왜 수영장에만 오면 힘이 들어가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자, 어차피 뒤에 아무도 없으니 급할 거 하나 없습니다. 천천히 살랑살랑 가 보세요!”


내 뒤에 아무도 없다는 팩폭을 맞으니 그나마 있던 모든 자존심을 비롯한 오장육부의 에너지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드러누워 천천히 발차기를 하며 팔을 돌렸다. 힘을 빼니 힘이 덜 들긴 한 것인지 평소보다 좀 편안하게 25미터를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데 앞에 가는 분의 발이 내 손에 걸렸다. 앞에 가신 분과 거리를 좀 두고 출발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그리고 도착하니 강사님은 내게 앞으로 오라고 하더니 지금 느낌을 그대로 살려 배영을 해 5미터 깃발까지 가 보라고 했다. 그렇게 팔을 몇 번이나 돌렸을까? 5미터 깃발을 지나 일어나니 모든 회원들이 나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고 강사님은 나에게 다시 앞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원님은 힘만 빼면 된다며 엄지척을 날려 주셨다.  


그렇게 세 번째 달의 첫 주가 지난 주말 입원해 계시는 어머님게 다녀왔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배가 쏙 들어갔다며 좋아 하셨다. 그러면서 한참을 수영 이야기를 하시며 수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물을 이겨 먹으려 하지 말고 물을 타고 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줄 때만 주고 나머지는 편안하게 힘을 뺄 줄 알아야 한다고도 하셨다. 그러고 생각해 보니 지난 두 달 동안 단 하루도 레슨을 빠지지 않고, 주말이면 혼자 자유수영을 가서 한 주간 배운 것을 열심히 연습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도 하며 나름 자신감이 붙어가고 있었더랬다. 그래서 세 번째 달 상위 그룹으로 지목 되었을 때 올 것이 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온 몸에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노력 보다 중요한 것은 힘을 빼는 것 이었는데 노력 좀 했다고 힘이 더 들어갔으니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왜 나에게 물을 이겨 먹으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까? 어머니는 왜 나에게 수영을 하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강사는 왜 나에게 힘만 빼면 된다고 틈만 나면 말하는 것일까? 나는 왜 그토록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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