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물 속에 넣고
물속에서 동작을 마치고 물밖에서 돌아가는 팔의 동작을 리커버리(recovery) 라고 부른다. 원래는 힘을 빼고 물속 동작을 위해 회복한다는 의미인데 초급반 회원들은 힘을 주어 팔이 구부러지지 않게 돌려야 나중에 팔꺽기를 할 때 제대로 물을 타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물 밖의 팔이 180도 회전할 수 있도록 어깨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깨를 돌린다고 고개가 같이 움직이면 안 되고 고개는 앞을 보고 가야 한다. 그런데 강사는 내게 고개도 흔들리고 어깨도 안 돌아가니 팔이 구부러진다며 고개를 너무 아래를 보지 말고 45도 각도로 앞을 보라고 했다. 45도 앞을 보며 오른 팔을 돌릴 때 왼팔을 귀에 딱 붙는다 생각하고, 오른 팔을 끝까지 밀어 주어 몸이 앞으로 나가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면 이해가 되었지만, 동작은 여전히 제 멋대로 였다. 앞에 7~8명을 제외 하고는 킥판이라 부르기도 하는 킥보드를 잡고 팔돌리기를 연습했다. 킥보드를 사용하니 훨씬 여유가 생겼다.
킥보드에 팔을 올리고 여유가 생기니 고개를 살짝 들어 앞을 보는게 편안해 졌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새로 사준 물안경 덕에 눈에 물도 안 들어가고 습기도 차지 않아 물속이 잘 보였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옆 레인에서 접영을 하며 일으키는 물속의 기포도 생생하게 보였고, 수영장 바닦에 그어진 선도 분명하게 보였다. 물속에 고개를 넣으면 물 밖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마치 음소거가 된 듯한 공간을 바라보는 느낌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파란색 물 속에서 팔동작과 발동작을 따라가는 기포들. 그러다 숨이 차 고개를 들면 들리는 첨벙 거리는 소리, 숨을 몰아쉬는 소리, 강사들의 힘찬 구령소리... 고개를 숙였다 들었을 뿐인데 마치 두 세계를 오고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게 이걸 알려 주시고 싶었던 걸까? 고개만 숙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물과 기포만 보이는 세상. 규칙적인 동작만으로도 앞으로 나가게 되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앞으로 나가기 위해 물을 가르다 보면 느끼는 자유로움. 부모님이 그 어려운 시절에 정신 못 차리고 어려운 상황에 폼 잡으려고 수영장을 다닌다고만 확신 했었다. 그런데 어쩌면 버티기 힘든 버거운 현실을 잠시 잊고 그 시절을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유일한 시간 아니었을까... 자식들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고 어쨌든 버텨내야 하는 현실 이지만 고개를 들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현실 앞에 무너지는 자신을 추스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물 속에 고개를 넣고 수영을 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고, 처음 부터 다시 차근차근 해 보면 무언가 길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
아버지 부도가 나고 얼마 후 이른 새벽에 고모가 집으로 찾아왔다. 빌려간 돈을 내 놓으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화를 못 이기고 현관에서 쓰려져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그런 아침에도 어머니는 수영 가방을 들고 수영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묻고 싶었다. 왜 그렇게 수영장을 다니냐고. 그렇게 폼 잡는게 좋냐고. 사람이 쓰러져 나갔는데도 수영장을 가고 싶냐고. 수영장 아줌마들하고 놀러 다니는게 그렇게 좋냐고. 그런데 나는 물을 수 없었다. 고모가 쓰러지고 한 달이 채 되지 못해 어머니의 얼굴이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구완와사. 말로만 듣던 일이 어머니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때 나는 속으로 추운 겨울에 수영장을 그렇게 다니니 얼굴이 돌아간 것 아니냐며 어머니를 원망했었다. 병원에서도 수영장을 그만 다니라고 했다. 한의원에서도 수영이 어머니 체질과 맞지 않다고 했다. 알았다고 대답하는 어머니는 그 이후로도 수영장 가방을 거실 한 편에 그대로 두었다.
어머니는 언제 수영 가방을 버리셨을까?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그때 였을까? 아니면 아직도 시골 집 어딘가에 수영가방이 그대로 있을까? 삶에 지쳐 보이는 아들에게 언제부터 수영을 하라고 하고 싶으셨을까?
고개를 물속에 넣고 발차기를 하고, 팔을 돌린다. 숨이 차오른다. 일어나야 하는데 참아 본다. 팔을 한 번 더 돌려보고 발을 한 번 더 차 본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 쉰다. 크게 숨을 쉬며 고르고 다시 고개를 물속에 넣고 발을 차고 팔을 돌린다. 어느새 25미터를 다 돌아 왔다. 강사가 내게 많이 늘었다며 칭찬한다. 몸통을 조금 만 더 돌려 보라며 격려한다. 수영장 천장이 원래 노란 색이었나 싶다. 물속에서 이렇게 온 몸을 불사르게 될 줄이야.
**자유형 호흡법
수영을 처음 배우며 자유형으로 시작 하다 보니 호흡법도 자유형에 맞춰 배우게 된다. 그런데 발차기와 팔 동작을 함께 하며 호흡을 하는 콤비네이션이 시작되면 머리가 멍 해지고 제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다. 일단 물 속에 고개를 넣기 전에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코에 가져다 대고 음~~~ 하며 코로 숨을 내 뱉어 본다. 거품이 생기며 물이 튀는 걸 느껴본다. 이걸 몇번 반복하며 조금 익숙해 지면 그때 물속에 고개를 넣어서 음~~~하고 코로만 숨을 내 뱉으며 물 밖으로 올라와 본다. 숨을 참고 살짝 무릎을 구부려 물속에 들어가 음~~~하며 올라오는데 얼굴이 물 밖으로 다 나올때 까지 코로 숨을 끝까지 내 뱉어야 한다. 이게 이숙해 지면 코로 숨을 내 뱉으면서 올라오면 입으로 파! 하고 남은 숨을 다 뱉고는 '흡' 소리와 함께 재빠르게 숨을 들이 마시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음~~ 파흡, 음~~~파흡. 이걸 여러번 반복 한다. 이때 중요한건 코로 기포가 뽀글뽀글 올라올 정도로 너무 강하지 않게 일정한 힘으로 내 뱉으며 물 위로 올라오는 동시에 입으로 남은 숨을 모두 내 뱉는 것이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는 것은 아주 짭께 흡~~ 하며 쉬고는 빨리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게 익숙해 지면 똑 바로 서서 다리를 약간 벌려 중심을 잡고 허리를 숙여 손을 수면 위로 쭉 뻗고 고개도 물 속에 담근 후 오른손 잡이는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왼손 잡이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음~~~파흡, 음~~~~파흡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