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주말에는 둥이들이 나름대로 대단한 도전을 하러 청주에 있는 외가댁까지 내려갔습니다. 그것도 원래 예정되어 있던 오케스트라 주말 연습까지 땡땡이를 치고 말이죠.
원래 지난 몇 년 동안 김장은 저 혼자 평일에 내려가서 도와드리고 점심을 먹은 뒤에 김치를 싣고 처외조부님 댁, 처제네를 포함해 가끔은 동생 네까지 여기저기 배달하고 나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교롭게 이번 김장은 처음으로 주말인 토요일로 잡히게 되었죠.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려가도 되겠다 싶어서 함께 같이 가지 않겠냐고 권했습니다. 중학생인 녀석들은 처음에는 바쁘기도 하고 귀찮다며 가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나오리라 충분히 짐작은 했습니다.
발리 여행 이후로 휴식기를 가지고 있던 협상의 달인이 다시 등장합니다.
"아, 그렇구나. 그러면 할머니한테 직접 전화를 드려서 말씀을 드릴래? 김장은 할머니가 원래 하시는 일인데 왜 우리가 가야 되냐고. 혹시 그렇게 말하기가 좀 불편하면 할머니는 원래 김치 당연히 손자들에게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씀드려도 괜찮고. 아니면 저희가 보고 싶어서 오라고 하시는 거라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시면 되잖아요.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웃으면서 제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은 질렸다는 듯 군말 없이 외가댁에 함께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새로운 방식의 질척거림으로 거둔 승리였죠. 미리 김치통도 트렁크에 차곡차곡 쌓아서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한편에는 아이들이 쓸 고무장갑까지 챙겨놨죠.
처가 어른들께는 아이들이 간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했습니다. 놀라게 해드리고 싶어서였죠. 전화 통화를 할 때 아이들은 바빠서 못 데리고 갈 듯하다고 말씀드리니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들도 재미있어하는 눈치였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채비를 하고 아침해가 뜨는 모습을 보면서 출발합니다. 문제는 차가 엄청 막혔다는 점인데요. 원래 2시간이면 가던 거리를 3시간 20분 걸려서 도착했으니 꽤 긴 여정이었습니다.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뒤 살금살금 가서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의외로 두 분은 담담하시더라고요. 못 보리라 생각했던 손자들이 와서 내심 기뻐하셨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되려 함께 김장을 도와주시고 계시던 어른들이 더 놀라시며 반가워해주시더라고요.
도착하자마자 둥이들은 고무장갑을 끼고 김치 속 넣는 작업에 투입됩니다. 장모님이 작업하시던 자리를 꿰차고 말이죠. 원래 처갓집 김장은 품앗이처럼 네 집이 함께 사이좋게 날짜를 돌아가면서 김치를 담그는 방식이었는데 장모님 댁이 첫 번째 김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듯해서 걱정스러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어른들의 칭찬이 많아졌습니다. 제법 손놀림이 빠르다고 말이죠. 오랜만에 하는 김장이라 재미도 있는데 칭찬까지 들으니 아이들도 제법 신이 나서 열심히 합니다. 옷에 고춧가루 양념을 열심히 묻히면서 말이죠.
한 시간 반 정도를 하고 나니 끝이 보였습니다. 저는 속을 넣는 작업 대신 통을 옮기고 양념을 퍼 나르고 통을 닦아서 싣고 마지막으로는 설거지까지 하는 등 심부름꾼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이 녀석들이 지네들이 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 착각하고 저는 논다고 생각하길래 더 열심히 했습니다. 허리를 쭈그리고 해야 하는 설거지가 꽤 힘들더군요. 저보다 연세가 훨씬 많으신 어른들도 묵묵히 하시는데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건강이가 그 모습을 사진을 찍을 때 표정으로 들키고 말았죠.
장인어른이 수육과 밥을 준비해 놓으셔서 방금 만들어진 김치와 함께 맛있는 점심이 금세 차려졌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앉을 자리가 넉넉지 않았지만 명절처럼 북적북적한 느낌이 들어서 저도 아이들도 평소 먹는 양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인간은 일을 해야 밥맛이 좋아지는 모양입니다.
갑자기 장인께서 땅을 파서 토란을 수확하는데 아이들을 투입하면서 시간이 지체되기는 했습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심어놓은 토란이 이렇게 많이 자라다니 농사의 세계는 신비롭습니다.
마지막으로 처갓집까지 가서 미리 담가두신 총각김치까지 싣고 행복이가 가장 좋아하는 반건시까지 한 무더기 얻은 뒤에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도 꽤 막혀서 애를 먹었습니다. 이날 운전을 한 시간만 합산해 보니 7시간이나 되는 중노동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처음에는 가기 싫어하더니 막상 다녀오니까 재미있었다, 가길 잘했다고 말은 해주더군요. 이번 일을 통해 배운 점도 많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새로 해온 김치통으로 꽉 찬 김치냉장고보다 더 흐뭇했던 올해 김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