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반지 May 05. 2024

그토록 많았던 라일락은 어디로 간 걸까?

김주무관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

서울에 살았을 때 내가 살던 동네 주변에는 라일락 꽃나무들이 정말 많았다. 흔하게 널려있었다.

라일락 향기들이 코 끝을 간지럽히면 '아 봄이 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결혼을 하고 지방의 도시로 내려와 보니 동네 주변은 온통 벚꽃이었다. 벚꽃 외에는 어떤 것도 봄의 꽃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강력한 신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 같았다. 꽃나무를 심어야 하는 곳이라면 모두 벚꽃나무를 심었다. 번쩍번쩍한 새 아파트만 흉물처럼 몰려있는 어느 지방도시의 외곽에서 나는 라일락을 그리워했다.  


남편과 함께 핸드폰을 사러 갔었다. 직원의 강한 억양의 사투리를 5분 이상 듣고 있자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이상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고 점점 두통까지 왔다.


라디오를 켜도, tv를 켜도, 식당을 가도 내가 이전에 서울에서 보고 듣고 하던 세상은 없었다.

내가 서울을 딱히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 딱 10년을 살았을 뿐인데,

지방으로 내려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서울에 쉽게 작별을 고했던 나를 후회했다.


10년 동안 내가 다니던 대학교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 내 청춘의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잊히지 않는 그림과 지워지지 않는 향기는 모두 그곳에 남아 있었다.  서울의 곳곳을 함께 다니며 웃고 떠들었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나와 함께 있는데, 그를 제외한 다른 것들은 서울에서 가지고 올 수 없었다.


지방에 내려온 지 얼마 안돼 닭갈비가 너무 먹고 싶어서 남편과 나는 3시간을 헤맸었다. 하지만 우리가 서울 어느 골목에서 먹었던 그러한 닭갈비 가게 같은 곳은 없었다. 남편도 본인의 고향이지만 10년 만에 내려와서 그런 지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못한 거 같았다. 몹시도 미안해했던 남편의 표정만 허탈하게 남은 하루였다.


시댁모임을 가면 대화의 80퍼센트 정도는 들리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시어머니가 특히 부엌에서 뭔가를 지시하는 상황은 더 난감했다. 문장의 주요 단어의 뜻을 모르니 가져다 드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다행히 상황을 파악하고 "00 이는 무슨 말인지 모른다. 엄마 나한테 말해라"라고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1년에 몇 번씩 제사를 위해 숙모님들이 모여 음식을 할 때였다. 숙모님들은 최상위 난이도의 사투리들을 쏟아냈다.


여긴 주요 단어뿐만 아니라 문장의 어미조차도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숙모님들은 그냥 나가 있으라고 했다. 결혼 7년 차 정도 됐을 때 처음으로 '두부 부침'을 내게 맡기셨다. 숙모님들도 서울에서 내려온 종손 며느리가 불편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결혼 15년 차,  가족 안에서 사투리를 쓰냐 안 쓰냐로 선이 그어지는 분위기는 없어졌다. 하지만 이제 그 선은 회사로 옮겨졌다. 콜센터를 다닐 땐 전화선 너머 질문을 하는 자에게 답을 쉽게 설명해 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은 미덕이었다.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옆 동료의 경우는 민원인이 외국 사람하고 통화하기 싫다고 한국사람 바꿔달라는 웃픈 상황도 있었다. ㅎㅎ



공무원 3년 차, 현재 하는 업무는 특성상 주변 지역 담당 주무관들이나, 민간 기관의 담당자들과 이런저런 업무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대화를 몇 마디 나눈 후 항상 "이쪽 지역분이 아니신가 봐요" 라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처음엔 담당자라서 선입견 없는 눈빛으로 자리에 앉았다가도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나의 말투에 신경 쓰는 게 온 감각으로 느껴졌다.


최근 들어 자주 이런 경험을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쌓여가고 있다.


같은 업무로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서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나만 새로운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가족처럼 평생 보는 사이도 아니다. 고작 길어야 3년 이내 헤어질 사람들인데, 동그라미들이 달라져 있는 그 시간이 아깝다.  자꾸만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나의 말투가 이제는 나도 거슬리는 거 같기도 하다.


공무원 16년 차이고 친구로 23년 차인 남편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결국엔 말투가 아니라 사람의 일에 대한 진심을 볼 거예요.

 처음엔 말투가 우리 동네라서 조금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도 거기까지예요.

 일하다 보면 일에 대해 순도 100프로 진심인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당신은 일을 진심으로 대하니까, 지금처럼 해도 돼요.

그리고 당신 사투리 해봤자 원어민처럼 안 돼, 이상한 사투리 하는 게 더 웃기니깐. "


그래 라일락 꽃나무도 예쁘고 벚꽃나무도 예쁘다.

우리는 라일락 꽃향기도 좋아하고 벚꽃향기도 좋아한다.

추운 겨울, 꽃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같았고, 그 노력은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인정된다.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바다>

작가의 이전글 '감사'가 처음이었던 공무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