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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an 25. 2019

여자로서의 유통기한

│여성성의 유통기한│


엄마는 내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될 수 있는 한 많은 연애를 해보라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여자에게 젊음의 상실이란 곧 섹슈얼리티의 소멸 즉, 강제 타성화(desexualization)의 진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래? 유통기한이 있는 식품이랑 똑같네? 뭐, 우유 같은 그런 개념인가."


사실 현대 사회, 특히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나이가 가지는 ‘대중적 의미’를 더 적절하게 비유한 음식은 케이크일 것이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잖아. 이브 전에(24일=여자의 나이 24살) 가장 많이 팔리고 당일(25일=여자 나이 25살)부터 점점 안 팔리기 시작한다고. 나도 이제 꺾였어."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같이 하던 25살 선배가 크리스마스 파티 준비를 위해 함께 장을 보러 갔다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던 케이크들을 보며 푸념하듯 내뱉던 대사였다. 본인을 향해 ‘꺾였다’고 놀리던 같은 과 남자 동기들의 표현을 그대로 곱씹던 그녀에게 얼핏 느껴졌던 감정은 자신의 타성화 되는 육체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었다.





│나는 아줌마라서 안전해│


물론 성별 및 국적을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화 현상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매스미디어가 찍어내는 콘텐츠마다 '젊은이만의 서사'만 가득한 곳에서 늙는다는 것은 곧 주변인이 되는 것, 비주류가 되는 것을 의미함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젊음은 남성의 그것보다 몇 곱절은 더한 무게와 가치를 지니는 자원으로 통용되고 있기에 노화의 의미는 여성에게 조금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  


내가 재수생이던 시절. 매일 집에서 독서실까지 오가던 길목은 침침한 가로등 불빛 때문에 유독 어둡고 음산했다. 엄마는 매일 밤 그 길을 홀로 걸어 나를 데리러 오곤 했다. 어둠이 유달리 짙게 느껴지는 밤이면 엄마에게, 


"그 시간에 여자 혼자 걸어오는 데 위험하지 않아?"라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에이, 나는 아줌마라서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늦은 밤길을 홀로 걸어도 딸보다 비교적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그녀가 나보다 몸집이 커서도, 힘이 세서도 아니었다. 남성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진짜 여성’의 범주에서 40대 후반 여성은 열외였기 때문에, 그 인적 드문 공장 지대의 밤 길을 홀로 걸어도 교복을 입은 딸보다는 비교적 안전할 것이라고 느꼈던 것이다. 


진짜 여성의 정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고? 그렇다면 한번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여성을 그려보세요’라고 물었을 때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지 잘 살펴보라. 머리에 희끗희끗하게 새치가 몇 가닥씩 있고, 얼굴에는 자연스럽게 주름이 지기 시작한 40~50대의 중년 여성을 떠올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구글 검색창에 서양식 LADIES AND GENTRELMAN 문구를 가시화시킨 픽토그램이나 일러스트를 검색해 보라. 콧수염과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중년의 남성과 칵테일 드레스를 차려 입은 20~30대 여성이 ‘함께’ 등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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