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세무조사를 받다.
그 통보를 받던 날의 공기를 아직도 기억한다.
초여름의 회사는 평소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중부청에서 특별조사 나옵니다.”
짧은 한 문장의 공문이었지만,
평온했던 회사는 온통 긴장감에 휩싸였다.
세무조사는 정기조사와 특별조사로 나뉜다.
정기조사는 통상 45일, 조사 대상은 5년 치.
원론적으로는 5년에 한 번씩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대부분 회사들은
10년 동안 한 번도 정기세무조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특별'조사는 다르다.
세무당국에서 탈루 혐의를 특정해 놓고,
세무조사만 전문으로 하는 세무전문가들이
집요하고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더군다나, 관할 세무서가 아닌 경기권을
총괄하는 중부지방국세청이 아닌가.
우리 팀 모두는 두렵고 불안했다.
재경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단어 중의 하나인 '세무조사'
그것도 가장 강도가 가장 세다는
'특별'세무조사가, 대리 1년 차였던
나의 첫 세무조사였다.
팀장님이 총무팀 직원에게 지시를 해서
조사장소에 중고 냉장고를 사다 놓게 했다.
각종 음료수와 간식거리를 냉장고에
가득가득 채워서 넣어 놓았다.
냉장고 옆 작은 선반에 담배를
보루채로 종류별로 사다가 비치했다.
실내화도 기존에 방문객용으로 쓰던 것이 아닌
새 것으로 조사공간에 미리 준비해 놓았다.
(20여 년 전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렇게 하면 큰일 난다)
며칠 뒤 중부지방국세청 세무전문가
9명이 회사에 들이닥쳤다.
45일 동안 회사에 상주하는 세무조사.
우리 팀 인원은 고작 3명.
모회사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는지
본사 부장님이 직접 ‘특별 지원’을 위해
직접 내려오셨다.
그 순간 알았다.
이건 단순한 조사가 아니라
회사 전체를 건 전투라는 것을.
피가 튀기는 긴장감이 온 회사에
가득했고, 모두들 신경이 곤두섰다.
나는 막내였다.
서류 수발, 자료 정리, 숫자 맞추기.
조사관이 부르면 언제든 뛰어가야 했다.
요청 자료는 기본이 과거 5개년.
그런데 첫 해를 검증하겠다며
그 이전 5개년까지 다시 요구가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멈췄다.
우리는 10년 치 증빙을 당장 꺼내야 했다.
문제는 서류가 있는 곳이었다.
회사 건물 옥탑방에 있던 서고는
인적이 드물고 빛이 들지 않는,
1년에 한두 번 문서보관을 위해
서류를 갖다 놓는 외진 곳이었다.
보관에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던 서고는,
깨진 창문으로 비가 새서 습기와
먼지와 새똥이 가득 쌓여 있었다.
서류철은 풀어져 나뒹굴고 있었고
증빙은 곰팡이가 피어 훼손된 것이 많았다.
증빙 한 장을 찾는 데 두세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겨우 찾았는데
찢어지거나 훼손된 경우도 많았다.
매일아침마다 조사관들은 재촉했다.
“아직도 안 나왔어요?”
“오늘 안 되면 불리합니다.”
9명의 조사관들 앞에서 나는
마치 죄인처럼 두 손을 모으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서있곤 했다.
조사관들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손전등을 들고 서고로 가서
서류더미 속을 다시 뒤졌다.
찾을수록 더 안 나오는 기분.
꺼낼수록 더 깊어지는 늪.
증빙이 없는 게
마치 내 책임인 것 같은
우울감과 무력감이 밀려왔다.
자료 대응은 늦어졌고,
윗선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끄는 전략을 택했다.
약 2주가량 이런 행태를 반복하자
조사관들은 역정을 내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러다, 조사에 비협조적이라며
세무조사 기간이 기본 45일에
추가로 45일이 연장됐다.
그렇게 우리는 총 90일간의
'특별'세무조사를 버텼다.
그 기간 동안 우리 팀은 일상 업무를
거의 하지 못한 채 자료 대응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나는 너무나 고되고 힘들었다.
서고 문서정리와 관리를 아무도
안 해와서 과거 문서와 기록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요구하는 문서가 어디에 어떻게
편철되어 있는지, 어떤 중요성과
긴급성이 있는지 모르면서 막연히
서류를 찾는 일을 하다 보니 마치
어두운 공간에서 장님처럼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가는 느낌이었다.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거 같은
고통이 수시로 엄습해 왔다.
서류를 찾다가 내려와 자료를 정리하고
자료를 정리하다 다시 서류를 찾고
그렇게 두어 달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솟구쳐 올랐고
과로에 가까운 피곤함이 가득했다.
일상업무가 마비되다 보니 현업부서의
긴급요청이 오면 조사를 받다가
양해를 구하고 긴급하게 업무를
처리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호출이 오면 다시 조사를 받고,
조사가 끝나면 밀린 일을 새벽까지
야근하며 처리하고, 가기 싫은
옥탑방 서고를 뒤지고,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들이 반복해 흘러갔다.
우리가 지쳐 쓰러져 갈 때쯤
다행히도, 본사에서 내려오신 부장님이
막판에 정면 대응을 해주셨다.
쟁점 하나하나를 치밀하게 정리했고,
세법논리로 설득과 논쟁을 벌이며
추징 세액은 다소 줄어들었고
상호 조율 속에 마무리되어 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증빙 한 장이 없어 약 7천만 원의
세금이 추가로 추징되었다고 한다.
그때 처음 실감했다.
종이 한 장이 회사의 돈을 지킨다는 것을.
증빙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 사건 이후로,
내 일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 팀의 문서를 관리문서와
보관문서로 나누고, 문서관리자를
자청해서 편철에 네임택 표지를
만들어 회사로고와 함께 부착했다.
표지는 습기가 닿아도 번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투명 박스테이프로
일일이 하나씩 붙여나갔다.
부서 캐비넷의 서류도 순서를 정하고
선반의 위치별 번호를 부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보관박스로
이관해서 서고로 보내는 절차를
만들어 관리와 보관을 나누었다.
서고관리도 총무팀에서 서고키를
받아 편철마다 일련번호를 매기고
캐비닛에 부서별, 연도별 표식을
부착해서 한눈에 띄게 붙였다.
그리고 들어온 문서와 반출된 문서,
폐기된 문서목록철을 만들어 서고의
입구앞에 상시 비치했다.
세무조사 때 반복적으로 요구되는
항목들을 회계장부에 아예 ‘세목’과
‘관리코드’로 구조화해서 평소
입력시 규칙대로 입력하게 했다.
회계프로그램에 세무 포인트를 연동했고,
접대비 한도 같은 항목도 내부통제 절차로
자체 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첫 번째
‘세무 관리 시스템’의 시작이었다.
'특별'세무조사의 고된 경험을 바탕으로
혼자 고안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품질관리시스템'에
이미 문서관리 절차서라는 게 있었다.
아무도 그 절차대로 실행을 안해왔던 것이다.
세무조사를 겪기 전에는 세무업무는
‘윗분들이 하는 높은 일’ 같았고,
‘세무사 사무실에서 알아서 해주는’
다소 멀게만 느끼던 업무였다.
하지만 그 90여 일의 어둡고 긴 터널같은
'특별'세무조사의 시간을 통과하고 나서
세무라는 업무가 되려 내게 명확해졌고,
내게 큰 업무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요즘, 세무조사 통지는 우편발송이 아닌,
직접 세무서 담당자께서 들고 오셔서
조사개요를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민원안내와 청렴서약을 안내해주시고
음료나 다과, 슬리퍼등을 일절 준비하지
말라는 설명과 함께 안내공문을 주신다.
조사기간에도 2~3일정도 상주해 회사의
업무에 피해가 없도록 하고, 대부분은
메일과 전화를 통해 자료요청을 하고,
메일로 파일을 제출하게 한다.
그 사이 회계/세무 프로그램도 많이
발전하였고, 웬만한 문서들은 전자화되어
과거처럼 서고의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형태가 아닌 전자적 형태로 증빙보관이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다.
세상이 바뀌어서 예전의 내 경험은
이제 나만의 기억속에만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도 변함 없는 것은 세무업무는
단순 지식이 아니라 회사를 지키기 위한
가장 큰 생존기술이라는 점이다.
중요 회사서류와 중요 세무증빙은 잘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과, 리스크에 대한 대비의 중요성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세무 대비는 조사에 임박해서 하는 게 아니라,
'증빙관리'의 일상적 프로세스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