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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Dec 20. 2021

이번주도 결혼합니다.


실은 지금도, 저는 플로리스트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이 질문을 받으면 괜히 머뭇 머뭇 하게 된다. 처음엔 워낙 이 직업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었기에 설명하는 점이 어려워서 그랬고 한동안은 남자가? 라는 반응이 싫어서 그랬다. 무엇보다는, 이 이름 자체가 주는 일종의 오글거림 때문이다. 플로리스트가 주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왠지 우아한 여성이 그녀 만큼 아름다운 공간에서 예쁜 꽃들을 다루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음, 키든 외모든 크게 불만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니 혹여나 나는 플로리스트입니다 라고 했을 때 ‘진짜? 네가?’ 라는 반응이 나올까봐 차마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플로리스트인 나는, 플로리스트라는 말이 오글거린다.

이것 말고도 닭살 돋게 하는 말은 또 있다. 바로 ‘일한다’가 그것이다. 이십대의 시작에서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그 때의 나이라면 쉽게 ‘일 해’라는 말을 할 때는 아니다. 놀아, 친구 만나, 공부 해, 술 마셔, 아님 고작 해야 알바 뛴다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일한다라는 말이 아직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어른들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일한다 라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이건 헛말이 아닌 진심이다.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꽃과 식물에도 관심이 많았고, 그런 만큼 자연스레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일’이라고 하면 무언가 치열한 노력이나 헌신 같은 것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은 그닥 없다. 꽃을 사고 다듬고, 꽂는 일련의 과정이야 오랜시간 반복해 오며 내 몸 켜켜이 체득된 일상 같은 것이고 홍보나 마케팅이라 할 만한 것도 SNS에 글과 광고를 적당히 섞어 쓰는, 이 역시 고된 노동이라기 보다는 작업실 한 켠에서 몸을 쓰기 싫을 때 잠깐, 꽃시장에 주문한 꽃들이 오기 전 작업실 앞 카페에서 잠깐 등 역시나 일상처럼 이루어지기 때문에 크게 힘든 줄은 모르겠다.

언젠가 아내가 가장으로서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당신을 만나기 훨씬 이전 부터 해 왔고 만일 당신을 아내로 맞지 않았더라도 하고 있을 일이며 좋아하는 일이라 결코 일 처럼 느껴지지 않아 그러니 미안해 하거나 고마워할 이유는 없어 라고 말해 주었다. 틀림이 없는 나의 진심이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십년 쯤 하면 같은 말이라도 아내가 듣기 좋은 말로 바꿔 하는 재주 쯤은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공황장애를 겪을 만큼 나락에 빠졌던 적은 있지만 그것은 일이 주는 문제였다기 보다는 목표의 불확실성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그러니 직접적으로 내게 해를 가한건 꽃이나 일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엔 일이 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행복했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테다. 그것이 행복이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애써 부정할 생각은 없다. 솔직히 지금도 일이 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간혹 나의 작업실을 들른 적이 있는 이들은 구석까지 그득이 쌓은 꽃들을 보며 부러움 섞인 눈길을 보내곤 한다. 그때마다 그렇게 보지 마세요. 이 꽃들은 내게 회사원의 책상 위에 쌓은 서류와 다를 것이 없는 거예요 라며 푸념 섞인 투정을 할 때가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푸념 일 뿐 실제로 꽃을 서류와 동일시 하지는 않는다. 아무렴. 그래서 일까 바쁘게 꽃을 꽂고 있는 중에 전화라도 오면 ‘나 바빠’라고 말한 적은 있어도 ‘나 일해’ 라고 말한 적은 없다. 왜 없는지를 확신하냐면, 오글거려서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까. ‘이-ㄹ’ 이라는 미세한 진동만 입술 주변에 일어나도 이미 나의 목덜미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닭살들이 솟아 오른다.

그래서 만약 작업 중에 전화라도 온다치면 자연스레 지금 하고 있는 것으로 상황을 설명하게 된다. 꽃 꽂는 중입니다, 꽃 다듬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건 약속을 잡을 일이 있어 미래의 일정에 대해 말 해 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주 금요일에 만날까 라는 약속을 정할 때면 그날 꽃 꽂아야 해 아니면 무슨 무슨 작업이 있어서요 등으로 일정의 어려움을 전한다. 그런데 웨딩 플라워를 하면서 부터는 그 설명이 조금은 우습게 되었다.

오랜만에 지인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 뭐해,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

“미안, 이번주 결혼식이 있어서.”

“아, 친척 중에 결혼하는 분이 계신가 보네. 아니면 친구? 나도 아는 사람이야?”

“아니 내 결혼, 아니 내가 맡은 결혼 그러니까…”

서로 간에는 잠시 정적이 흐른다. 나의 마음 속엔 그냥 일을 해야 한다고 해, 그게 싫으면 플로리스트인데 웨딩 플라워를 한다고 해 왜 그걸 말 못해 라며 한 숨 섞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물론 이는 찰나 처럼 짧고 결국 실토 아닌 실토를 하며 설명을 늘어 놓게 되지만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언제쯤 이러한 마음이 사라질까. 그저 맘 편히 나 일해요. 내일도 일하고요 모레도 일해요.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하게 될 날이 올까.

그런데 솔직한 마음은, 그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는 것은 어쩌면, 일을 일로써 느끼게 된다는 것일 테니까. 그저 조금 불편하고 어색해도 꽃 다듬어요, 꽃 꽂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웨딩 플로리스트인 지금은 주말이 내것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이번주도 결혼합니다.’라고 꽤 오랜 동안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번주도, 그리고 다음주도, 그 후에도 영원히 ‘결혼합니다.’ 라고 말 할 수 없다면 얼마나 서글퍼 질까. 벌써 부터 가슴 한 켠이 따끔따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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