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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쫓지 않는, 해바라기

by 모즈

해바라기 그림 하면 단연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를 거예요. 그의 해바리기에선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크고 싱싱한 꽃잎은 마치 정원에서 갖 따온 듯 생기가 있고 큰 꽃을 받치고 있는 줄기는 물을 가득 머금은 듯 꼿꼿하게 뻗어 있습니다. 물감을 덕지덕지 몇 겹으로 발라 표현한 씨앗들은 금새라도 땅으로 떨어져 새로운 싹을 틔울 것만 같아요.

평생을 가난과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았던 고흐의 삶과는 대조적이지요. 어쩌면 고흐는 해바라기를 통해 그의 삶이 분명 나아지기를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해바라기는 분명 고흐의 투영일 거예요.


여기, 고흐 처럼 해바라기를 통해 자신을 투영한 또 한 명의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 - 1918) 입니다.


해바라기, 1908 / 1909


우울한 해바라기

그림에서 보듯 그의 해바라기는 무겁고 어둡습니다. 고흐의 것과는 정반대이지요. 고흐의 해바라기가 희망의 과잉상태라면 실레의 해바라기는 희망이 결여된 것만 같습니다.

잎사귀는 햇볕에 그을려 바스라질듯한 갈색을 띄고 꽃은 태양이 있는 하늘이 아닌 바닥을 향해 있습니다. 배경 또한 단색으로 단조롭기 그지 없어서 최소한의 입체감 만이 느껴질 뿐이예요.

스크린샷 2025-08-17 오후 5.12.07.png 해바라기, 1911


실레는 수년에 걸쳐 해바라기 연작을 그렸고, 1914년 '시든 해바라기(Wilted Sunflowers)'라는 작품으로 해바라기 연작의 정점을 찍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한층 무르익고, 표현주의 화가로서 그의 작품 세계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실레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멘토로 삼아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림 하단을 비롯해 클림트 적인 표현이 살짝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시든 해바라기, 1914


그러나 이 모든 그림 속 해바라기들은 하나 같이 생기가 없음은 마찬가지예요.

꽃에도 감정이 있다면 이 해바라기들은 지금 무척이나 우울한 상태인 것만 같습니다.


존재의 연약함

에곤 실레는 1890년, '툴른'이라는, 오스트리아 빈 근처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납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불렸고, 유럽 전체는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을 때 였어요.

실레가 15세 되던 해, 그의 아버지 아돌프 실레가 사망하게 됩니다. 아돌프는 생의 오랜기간 정신분열증을 겪었어요. 때문에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실레가 어렸을 적 부터 끊임없이 보이게 됩니다. 정신분열의 원인으로 매독균에 대한 감염을 추정하고 있어요. 당시 매독은 무척 흔한 질병이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병으로 고통받았어요. 매독균은 몸 속에서도 여러 장기로 옮겨가는데 특이하게도 뇌를 침범하기도 해요. 이 경우 극심한 두통을 비롯해 우울, 착란, 감정조절장애 그리고 치매 등의 증상을 보여요. 아버지의 이런 불안정한 모습들이 분명 어린 실레에게는 고통으로 전이 되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실레의 어머니 역시 실레에게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지 못했어요. 실레는 메모와 편지 등에서 어머니 '마리'에 대해 교감이 없음에 대해 토로하거나 고독감을 준 것에 대해 원망하는 감정을 남기기도 했어요.

실레의 그림에는 여성이 자주 등장하지만 대게는 성적으로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아마도 어머니와의 교감에 대한 부재가 영향을 준것으로 보여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에게 마저 안정을 얻지 못하고 친척집을 전전할 수 밖에 없게 된 실레에게는 분명 우울과 불안 그리고 결핍의 감정들이 교차했을 것 같아요.

실레는 이러한 감정을 해바라기에 투영합니다. 단순히 그의 성장기 뿐만 아니라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리 없는 당시의 시대상 까지도 포함이 되었겠지요.

자연은 끊임없이 생명을 탄생해 내지만 결국 그 생명은 유한하며 언젠가 쇠락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해를 쫒지 않는 해바라기

해바라기를 모르는 분들은 아마 없을 거예요. 국화과 한해살이풀로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이지만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흔히 해바라기를 하나의 큰 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여러 개의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있는 형태입니다. 이를 '머리모양꽃차례', 한자로는 '두상화서' 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머리모양으로 꽃들이 차례를 지어 핀다는 뜻입니다. 해바라기는 테두리를 이루고 있는 길쭉한 모양의 꽃잎은 물론 내부의 하나 하나의 꽃들까지 모두 별개의 독립된 꽃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가지는 것으로 민들레, 코스모스, 엉겅퀴를 비롯해 여러 국화과 꽃들이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모두가 아시다시피 해를 따라 꽃의 방향을 바꿉니다. '해 바라기' 라는 우리 말의 뜻도 그러하고 해바라기를 일컫는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에서 해를 쫓는 혹은 해를 닮은 이라는 뜻으로 불리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굽는 것은 성장기에 해당하는 3월에서 8월까지 입니다. 해바라기가 성장을 멈추는 9월 경이면 더 이상 해를 따라가지 않아요.

이유는 '옥신' 때문입니다. 성장 호르몬인 옥신은 햇볕을 싫어해서 줄기 속에서 해의 반대 방향으로만 주로 분비됩니다. 사람들은 해바라기가 해를 좋아해서 해 방향대로 따라가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은 줄기 속 옥신은 해가 없는 쪽에서만 분비가 왕성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해바라기의 줄기속에서는 오히려 해를 피하려는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역설적이게도 이런 옥신으로 인해 해바라기는 해를 향해 굽어지게 됩니다. 결국 성장이 멈추고 더 이상 옥신이 분비되지 않으면 해바라기의 이런 움직임도 멈추게 되는 것이죠.



실레와 해바라기는 닮았다?

실레는 1906년 빈 미술 학교(Kunstgewerbeschule)에 입학하니다. 이 곳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공부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그러나 보수적인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일년 후, 보다 더 전통적인 미술학교(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로 보내지게 됩니다. 실레는 이곳에서도 학교 생활에는 소흘한 채 구스타프 클림트를 지속적으로 만나며 그를 스승으로 삼습니다. 당시 클림트는 '빈 분리파(Wiener Sezession)'를 이끌고 있었는데요, 이 단체는 “시대에 맞는 예술, 예술에 맞는 자유”(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를 모토로 그간의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미술 형태를 탈피하고자 하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클림트의 지지 아래 실레는 완전히 미술학교를 떠나게 되고 이후 그 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 갑니다. 클림트와의 긍정적인 관계는 지속되지만 그의 작품은 클림트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클림트와 마찬가지로 자화상, 나체 등은 물론 도시와 자연 풍경도 자주 그렸어요. 하지만 서로의 표현 기법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클림트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로 표현을 하였다면 실레는 얇고 날카로운 선과 대담한 색상 대비를 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실레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이나 고독 불안, 그리고 결국 소멸할 것에 대한 허무에 무게를 두었어요. 이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서 실레의 그림에는 다소 왜곡된 성 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이로인해 실레의 그림은 보는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유발하기도 해요. 이 또한 사람의 감정을 여과없이 표현하려는 그 만의 방식이겠지요.

자화상 1911년 / 1912년

성장하는 시기에는 분명 신념을 가지고 추종을 하지만 다 자란 이후에는 오직 한 곳만 바라보며 나아가는 실레는 결국 해바라기를 닮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의 죽음 역시 해바라기를 닮았습니다.

실레는 1918년 10월 31일, 28살의 나이로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합니다. 3일 전에는 그의 아내가 실레의 아이를 임신한 채 같은 질병으로 사망해요. 실레는 병석에서 아내의 죽음을 맞은 것이죠. 이에 앞서 같은 해 2월 6일에는 구스타프 클림트가 역시 같은 병으로 사망합니다. 스페인 독감이 과연 얼마나 무서운 질병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28세로 요절하기 까지 그는 약 3천여 점의 작품을 남깁니다. 실레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빨라야 10대 후반 부터이니 십년 동안 남긴 작품의 수라면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실레는 표현주의를 완성하고 이후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렸어요. 해를 쫓기를 멈춘 해바라기가 수 많은 씨앗을 뿌리고 말라 죽는 것 처럼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미술적 유산은 오늘날 까지도 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유효히 남아 있습니다.


에곤 실레가 그린 빈 분리주의 포스터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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