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슬픔 보다 더 슬픈 감정이 있을까요? 물론 슬픔의 질량을 잴 수는 없지만 언어적인 표현으로는 가능 할지도 모릅니다.
비통, 비탄, 비애. 이 단어들이 주는 무게는 형용사 '슬프다'가 가진 것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옵니다. 앞서 말한 것에는 공통적으로 '마음 심'과 '아닐 비'가 합쳐진 '슬플 비悲' 자가 들어갑니다. 마음이 온전치 못한 상태를 일컬어요.
저는 슬픔을 표현한 단어 중에 '애절哀切' 이라는 말이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애'는 사람의 장기, 그 중에서도 창자를 말합니다. 이는 너무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느낀다는 뜻이예요.
하지만 아무리 슬픔을 글로 표현하려 해도 그것을 겪는 이에게는 미치지 못할 거예요.
타인의 고통과 상실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슬픔을 겪는 이에게 섣불리 '이해해' 라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영국의 사실주의 화가 프랭크 브램리(Frank Bramley, 1857-1915)는 사람의 감정, 특히 그 중에서 슬픔에 집중합니다. 월터 랭글리와 더불어 뉴린파(Newlyn School)로 활동한 그는 영국의 작은 어촌마을 뉴린에서 슬픔을 캔버스에 담습니다.
그림 속, 노파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여인은 흐느낍니다. 식탁 위에는 언제라도 그가 돌아오면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지 오래입니다. 밤새 켜둔 초는 이미 절반이 넘게 타버렸고, 새벽이 되자 모든 희망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브램리의 '희망을 잃은 새벽(1888년)'은 조난된 가족을 기다리는 이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 속 여인들에게 감히 '너의 슬픔을 이해해' 라고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슬픔은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이의 몫일지 모릅니다. 지금의 순간에서는 어떠한 위로 조차 상처가 될거예요.
침잠하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브램리의 작품을 하나 더 보도록 할까요?
바싹 마른 채 생기를 잃은 잎사귀는 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바닥에 나뒹구는 낙엽들은 금새라도 바스라질 것 같습니다. 상복(喪服)인듯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말 없이 홀로 흩뿌려진 흰 꽃들 중 하나를 집어 듭니다.
그림의 제목은 'Weaving a Chain of Grief, 슬픔의 사슬을 엮다' 입니다.
Grief는 단순히 슬픔의 감정을 넘어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와 같은 같은 비통한 아픔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것은 한 번의 일로 끝맺음 되는 것이 아니라 사슬처럼 엮이며 삶과 함께 이어집니다. 누군가를 상실한 마음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해마다 그가 떠난 무렵이 되면 그때의 기억이 온전히 살아나지요. 이 기억은 올해에도, 다음 해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슬처럼 이어질 거예요.
아마도 그림 속 여인은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을 떠나 보낸 것 같아요. 검은 옷과 대비되는 새하얀 흰 꽃이 그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꽃은 국화, 죽은 이를 그리워 하는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슬픔이 추모가 되기까지
국화(학명 Chrysanthemum)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추모의 의미로 쓰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발간된 꽃말 사전에서도 국화가 슬픔이나 죽은이를 기억하는 아픔 등의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미 이때부터 장례식에서 두루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원산지로, 원래는 노란색이었지만 송나라 때 부터 개량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흰색을 비롯하여 다양한 색이 생산되기에 이르렀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중 하나이며 일본에서는 황실의 문양으로도 쓰입니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고귀하게 까지 여겨지는 꽃이지만 장례에 쓰이게 된 이유는 아마도 제국주의 시기 서양의 장례 문화가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로 전해지면서 꽃의 의미 또한 그대로 전해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화는 언제부터 장례의 용도로 사용하게 된 것일까요? 그 전에, 언제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장례문화가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장례 문화는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기 시작한 때부터 있었어요. 함께 했던 이를 잃는 고통은 시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추모 의례가 정착된 것은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여왕은 재위 기간 중인 1861년 12월, 남편인 알버트 공을 장티푸스로 떠나 보냅니다. 이에 영국은 2년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갖지만 그녀는 훨씬 긴 기간 동안 두문불출하며 공식적인 행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요. 아주 가끔 모습을 보인다 해도 언제나 수수한 검은 드레스를 입은 채로였지요. 이후 마음도 추스르고 영국을 대영제국으로 이끄는 등 국정에도 힘을 쏟았지만 그녀는 평생을 오직 검은 드레스만 입은 채로 지냈습니다. 그 기간이 무려 40년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1861년 알버트 공의 사망 하고 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사망하기 까지의 시간이 국가적으로 상당히 엄숙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시기, 떠난 이를 추모하고 남은 이를 위로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형성되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그러했듯 장례에서는 검은 옷을 입는 것이 관례가 되고 관 위에 놓여지는 꽃들도 무채색인 흰 장미나 백합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꽃들은 대부분 봄에 피어 가을이 되기 전에 지고 맙니다. 하지만 국화는 가을에 피어 겨울까지 이어지고 흰 색 역시도 흔하기 때문에 계절적으로 장미나 백합을 대체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향이 약하고 모습 또한 수수해서 장례에 널리 쓰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이유들로 국화가 자연스레 장례식에 많이 쓰이게 되고, 장례를 위한 꽃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죽음, 그 이후에 관하여
애절한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확신 뿐일 거예요. 그 만남의 장소는 바로 천국입니다.
'이러한 자가 천국에 속한다 (1891년)' 는 브램리의 대표작 중 하나로 지역의 장례식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실주의 화가답게 국화꽃 송이 송이, 그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모습들이 모두 자세히 묘사되어 있어요. 그런데 관이 유난히 작아 보입니다. 관을 들고 있는 사람들 역시 건장한 남자가 아니라 여인 네명이서 나누어 들고 있어요. 이 관은 어린 아이의 것입니다. 어쩌면 행렬의 앞에 선 소녀들의 친구일지도 모를 일이예요.
제목은 성경의 마태복음 19장 14절,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게 하고 막지 말아라.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다' 에서 따왔습니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가 천국으로 이르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거예요.
그림 속 사람들의 먹먹함이 제게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친구를 떠나 보낸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요. 성경을 펼쳐 하늘 나라로 떠난 친구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는 것으로 아픔을 대신하는 것이겠지요? 그림을 보며, 슬픔은 비록 그것을 감내해야 하는 자의 몫이겠지만 이렇듯 여렇이 함께 한다면 그 무게도 잘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이 불러주는 찬송가, 모인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되뇌이는 기도 그리고 작은 관 위에 놓인 국화들이 하늘 나라로 이어주는 고리가 되어 주는 것 같아요. 슬픔은 이를 통해 하늘에 닿을 수 있겠지요.
브램리는 1900년경 뉴린을 떠나 런던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때 부터는 그의 화풍이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하는데요, 1915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더 이상 죽음이나 슬픔에 관련된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에 가까울 수록 죽음에 대해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역설적이게 느껴집니다.
1909년작 '달콤한 고독'을 보면 사실주의를 넘어 인상주의에 가까운 화풍이 느껴집니다.
브램리는 1879년 부터 82년 까지 약 3년간 벨기에 앤트워프와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프랑스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를 뒤늦게 완성시키려 한 노력이 보입니다. 브램리를 사실주의 화가가 아닌 인상주의 화가로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거예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숲에서 한 여인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평온해 보입니다. 그림의 모델은 브램리의 아내 캐서린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이 그림에는 국화도, 죽음도, 슬픔도 없지만 여전히 흰 꽃들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브램리가 더 이상 슬픔과 죽음에 대해 그리지 않은 것은, 우리의 삶 속에는 슬픔을 압도하는 기쁨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아서이지 않을까요? 그 기쁨은 살아있는 꽃의 향기를 맡는 것, 따듯한 햇살을 쬐는 것,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할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이 그림은, 브램리가 꿈 꾸는 천국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