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장> 미중, 문화, 세대, 노사 갈등의 melting pot
일한 만큼 보상하라
-사무직 노조
2021년. 작년 코로나 상황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거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성과급 논란과 사무직 노조 설립 뉴스가 연일 뜨겁게 포털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이전 세대와 다른 이른바 MZ 세대의 특성을 언급하며 정년연장보단 금전적 이득을 더 원하는 세대라 분석한다. 근속연수에 따라 늘어나는 호봉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기여한 만큼 보상받기를 원한다며, 기존 노조와도, 사측과도 선을 긋는 이들은 어떤 부류로 해석될 수 있을까. 이들의 노동조합 설립도 이전 노동 운동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MZ세대 : 밀레니얼 세대('80년대 초~ '90년대 말 출생)와 Z세대 (2000년대 초반 출생)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런 한국의 상황을 또 다른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미국 공장>이 그것이다. 다른 문화가 섞이고 갈등이 발생하는 모습, 그리고 노조 설립에 대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닮은 모습이다. 2008년에 문 닫은 GM공장을 중국 유리 공장인 푸야오가 인수하면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건의 발생과 전개, 그리고 위기를 각 개별 주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지만 각자의 고민은 다르고, 걱정하는 부분도 다르다. 이렇게 한 사업체에 여러 문화가 섞이는 것은 예전부터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아직 발전 중인 중국의 문화와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간 지 오래인 미국의 문화가 교차되면서, 갈등의 양상과 정도도 더욱 깊어진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제조업 공장은 해당 지역에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오하이오의 외진 마을에 다시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지역 주민들은 들뜨고 설레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중국에서 건너오는 인력들도 들떠있긴 마찬가지다. 중국보다 훨씬 부강한 나라인 미국에서 중국 공장을 세운다는 사실에 뿌듯해하기도 하고, 이곳 생활을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내 그 기대는 실망으로 점철되기 시작한다. 미국인과 중국인이 원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인인 회장이 보기에 미국 공장은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하는 골칫덩이처럼 보인다. 모든 것은 사람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에 미국인 사장을 경질하고 중국인으로 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중국인은 우리네 7-80년대 근면한 노동자들과 닮아있다.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주말 출근과 야근을 불사하고, 이 회사에 속해있다는 소속감과 자부심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이다. 보호 장구 없이 작은 손을 가지고 망설임 없이 기계에서 유리를 꺼내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회장과 회사가 이들을 다루기는 쉬워 보인다. 이미 회사와 목적 함수를 공유하고 일종의 동일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인 노동자들은 이와 다르다. 이들에게도 일터는 너무 소중하다. 그러나 자신의 영역으로 회사가 들어오기 원치 않는다. 회사가 주는 소속감 때문이 아니라 소득과 일자리를 주기 때문에 소중하고 감사한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라던 중국 회사의 뜻대로는 흘러가진 않는다. 이렇게 8년 전인 GM 보다 시간당 시급은 7-8불이나 적은데도 더 많은 일을 해야하고, 와중에 중국 공장과의 생산성 비교와 타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도 불만이 쌓여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사에 대한 불만은 노조 설립 운동으로 이어진다. 전미 자동차노조와 지역 국회의원 등이 지지에 나서고, 회사에서는 혹시라도 노조가 설립되어 인건비에 더 많은 비용을 들일까 봐 전전긍긍한다. 외부의 지지에 힘입어 소망을 불어넣는 사람도 있고, 반면 회사의 노조 설립 방해 공작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다. 회사는 노조 설립의 부작용과 고용 문제로 압박을 주고, 관련자를 해고하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엔 6:4의 큰 차이로 노조 설립은 무산되고 만다. 이후 생산성은 조금씩 높아지지만, 임금은 조금도 오르지 않고 동결된다.
노조의 효과는 사실 경제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노동경제학에서는 노조의 설립 만으로도, 분명한 임금 상승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잘하는 노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조"이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조가 없으면 사실상 자유로운 해고와 임금 하락이 가능한 반면, 노조가 있을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노조는 회사의 선택지를 줄여주는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회사는 이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대량 생산의 시대로 들어선 1900년대 직후부터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다양하고 체계적인 활동을 해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창조컨설팅"으로 유명한 노조 와해 컨설팅이나, 해고에 대한 위협, 사용자에게 유리한 노동법 개정 지원 등이 그러한 노력이다. 최근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해, 2020년 미국의 노동조합 설립률은 6%대에 그치고 있다. 이 말은 94%의 노동자들은 조합의 보호 없이 거대한 골리앗인 회사와 싸워야 하는 위치에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노조 설립이 사용자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까? 노동자가 (주로) 거대한 자본으로 무장한 사측과 권리를 놓고 싸우기 위해서는 조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무직 노조 설립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나, 기존 파업에 대한 여론을 보면, 대부분 기존 노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마치 이기적인 트러블 메이커처럼 보이고 있다. 노동을 둘러싼 사회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했음에도 여전히 투쟁 이미지만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는 기존 노조를 외면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구별 짓기의 끝엔 결국엔 다시 (사무직이라고 이름은 붙었지만) 노조 설립으로 돌아온다. 앞서 이야기했듯, 골리앗인 사측과 적어도 대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덩치를 불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 설립이 쉽지만은 않다. 회사는 외력을 이용해 불법으로 노조를 와해하기도 하지만, 교묘한 심리전을 사용하는 컨설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사용자에게 유리한 노동법은 사측의 공작에 날개를 달아준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발된 아마존의 노조 설립 시도도 푸야오 공장과 같은 상황이었다. 전술했듯 공장에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은 없다고 해도, 여전히 대안이 없는 일자리이고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큰 노동자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회사의 (끝이 보이는) 게임이다. 푸야오 노동자들은 GM공장이 그렇게 문을 닫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더더욱 (떠날 수 있는) 회사를 잡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는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지금 나의 고용을 위협할 수 있는 노조에 대한 반대의사 표명이 되었다.
그러나 노조 설립 무산의 대가는 혹독하다.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누구든 저 성과를 이유로 얼마간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해고당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푸야오 공장은 임금은 몇 년 동안 동결하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동시에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과 생산설비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다. 이제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지역에 공장이 있다는 것이 더 이상 고용창출이 되지 않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무노동의 시대. 로봇과 AI 등 다양한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더 이상 인력 투입 없이도 생산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더 이상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는 무의미한 논쟁이 된다. 애초에 노동 투입이 없는 성장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미국 공장>이 보여주는 미래는 노동자들에겐 디스토피아다. 단순히 양국 간 문화의 차이나 개인주의 문화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구조적으로 노동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무직 노조 설립이나 성과급 논란 역시, 단순히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이제 정년을 채우는 평생직장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는 데서 시작한다. 언젠가 떠날 회사라면, 푸야오의 중국인처럼 자신과 동일시해 헌신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회사가 나중을 기약하거나 성장한 후를 약속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MZ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취급을 기대하며 노조 설립운동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에 맞는 성과급을 받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분명히 가능한 결과이다. (위에 노동조합 자체가 노동자의 후생을 증가시킨다고 이야기했던 것 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조금 역부족일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노동권과 인권이라는 가치나 비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회사가 원하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고용 없는 성장. 노동자들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제도론자는 아니지만, 결국 굵직한 환경 변화에서 성패를 가르는 건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AI나 로봇이 도입될 미래에서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으려면, 로봇세의 도입이 사실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전체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편익을 회사 즉, 로봇을 소유한 사람만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도 나누어주기 위함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로봇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제 생산요소로서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 인력(human labor)이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더 인간다운 일을 하며, 계속해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로봇세의 도입과 노동 관련법 개정 등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참조.
1.노동경제학 제13장 노동조합과 노동시장
http://contents.kocw.or.kr/contents4/document/lec/2013/Konkuk/Jooseonghwan/13.pdf
2. 한겨레 신문기사 아마존, 노조 설립 무산됐지만…“노동법 개정” 후폭풍 거세 : 국제일반 : 국제 : 뉴스 : 한겨레모바일 (hani.co.kr)
3. Mother Jones: You will lose your job to a robot
https://www.motherjones.com/politics/2017/10/you-will-lose-your-job-to-a-robot-and-sooner-than-you-th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