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이 멀 수 있는지 궁금한 우리들에게
그때 그 사람이랑 다시 만났으면 어땠을까?
정말 내 외모가 맘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 사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연애에서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만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중한 마음이었던 까닭에, 우리는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보며 계속 곱씹어 본다. 그때 내가 문자를 보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때 괜찮다 말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게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를 뱅뱅 도는 끊임없는 질문과 추측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사랑을 맞이해서야 끝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비슷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로맨스물을 보면서 스스로를 주인공의 선택에 대입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야말로 '현실적일' 때가 많기 때문에, 장미빛 드라마에 비추어 보기가 어려운 때가 많다. 결국 주인공은 해피엔딩 하도록 두고, (우리의 연애만)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기 일쑤이다. 그런데 여기,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세상에 있는 사랑이 어떤지 궁금한 우리를 위해, 실제 그 질문들을 실험으로 옮겨놓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사랑에 대한 통념을 실제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연애 실험 : 블라인드 러브>와 <내겐 너무 완벽한 EX>가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중 사랑에 정말 눈이 멀 수 있는지를 탐구한 <연애 실험 : 블라인드 러브>에 대해 다뤄본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1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상대방을 보지 않고도 사랑의 서약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골자다. 우리보다 프러포즈(약혼)에 큰 의미를 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하여,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만 나눈 상태에서도 헌신의 서약을 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포드라고 하는 공간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오직 결혼을 약속하는 커플만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실제 연애 및 결혼 준비로 나아갈 수 있다. 과연 얼굴을 보지 않고도 자신의 평생을 약속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약혼 여행(1주)과 결혼 준비(1주)를 거쳐 알게 된 지 3주 만에 결혼에 골인할 수 있을까. 여러 참가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또 자신의 평생의 짝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에 부푼 채 포드로 입장한다.
우리가 지난 연애에서, 혹은 말다툼을 하고 나서, 가장 답답한 점은 대체 상대방이 어떤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눈빛에 담겨있던 감정이 억울함인지, 분노인지, 서운함인지, 말로 표현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그 조차도 말로 표현하는 데까지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서는 상황만 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속마음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곳곳에 개인 인터뷰를 배치해두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처음 만났을 때 남자는 여자의 이름을 듣고 (가명이라고 생각해서) 어느 스트립바에서 일을 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여자는 어이없음이 섞였지만 웃으며 점수를 깎이고 싶냐고 반문한다. 남자가 장난이라고 웃으며 대화의 장면은 지나간다. 곧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남자는 정말 친해지고 싶은 장난이었음을 밝히지만, 여자는 다시는 그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친구들의 연애 상담가로 살며 들어왔던 수많은 소개팅 후기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잘 될 것 같다며, 자신의 개그에 배시시 웃었던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가, 얼마 되지 않아 애프터를 하지 못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오는 식이다. 우리는 한쪽의 시선으로밖에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연애 실험을 보다 보면, 그 장면에 숨어있던 그의 손짓과 그녀의 눈빛이 사실은 어떤 의미였는지를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렇게 전지적 작가 시점을 부여받게 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지난 연애나 기억에 대한 공감도 더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를 하자면,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몇몇 커플이 서로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일주일간의 대화를 통해서만 사랑의 서약을 하고, 실제 손을 맞잡고 결혼 준비 단계로 나아간다. 여행과 결혼 준비 과정에서 한 때 자신의 연애 상대가 될 수도 있었던 소개팅녀, 소개팅남을 친구로 만나기도 하고, 이제 외모뿐 아니라 가족, 친구, 사는 곳 등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실제 연애의 모습과 더 닮아간다. 그러나 실험의 제한이 각 커플에게 상이한 효과를 미치기도 한다. 어떤 이들에게 3주는 평생을 약속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오히려 그들에게 3주라는 시간제한은 더 신속한 결정을 하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면 몇몇에게 3주는 서로를 알기에는 너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도 하며, 이로 인해 과중한 부담만을 느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갈등이 깊어진다. 각 사람이 실제 결혼식에서 혼인 서약에 "예"라고 대답할 것인지 2주 동안 끊임없이 고민한 후, 곧이어 커플들의 결혼식이 시작된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포드에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서로에게 사랑의 서약을 하는 것으로 실험이 마무리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약혼의 의미가 결코 작지 않은 미국에서, 얼굴을 보지 않은 채로 프러포즈를 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눈먼 것인가?”라는 질문에 충분한 대답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제 연애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명제보다는, 사람들마다 (헌신을 서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는 걸, 혹은 2주 안에 결혼 준비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과정으로 보였다. 서로를 매일 보고 함께 지내며 여러 현실을 고려하는 것과 "눈먼 것"은 조금 다른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결혼에까지 골인한 커플을 보면, 역시 인연은 정해져 있다는 오래된 속담이 더 맞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갈등과 화해, 사랑싸움을 거친 후 잘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결국에는 사랑에 눈이 먼다는 명제에 동의하면서 이 실험은 막을 내린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와 남편은 이와 비슷하게, 소개팅 전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얼굴을 모른 채 통화와 문자를 통해 친해진 이후에 만났었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이기도 했던 4년 전 그 만남은,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여러 번의 딜레이 끝에 한 달 만에 성사되었지만, 그때는 이미 하루 한두 시간씩 통화를 하고 난 터라 이미 친밀해진 이후였다. 낯가림이 심하기 때문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친밀해지고 난 후에 만난 것이 오히려 신의 한 수였다. 그래서인지 이 다큐멘터리를 볼 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만났다면 가장 먼저 접수했을) 시각적 정보를 제외하고 대화를 시작했을 때, 오히려 그 사람의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의 소리가 먼저 영혼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든 슬픔이 못난 외모 탓이라고 슬퍼하시는 분들 계시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시고, 지나간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던) 경험에서 벗어나, 진짜 사랑의 길을 찾아가시길 추천해본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