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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꾸 Sep 23. 2022

프랑스 여자, 마리

내가 아는 프랑스 혹은 파리 여자는.. 


마리는 27살에서 28살이 되어 가는 시기에 있었다. 섣불리 친구라는 말을 쓰지 않는 나에게  그녀는 친구라기보다는 지인에 가까웠지만 외국인이 많지 않은 타향살이 덕에 우린 거의 매일 만나다 시 피했다. 그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 어떤 일이 생겼는지  얘기하곤 했다. 그중 가장 많은 한탄은 '나 너무 늙었어.' 서른 살을 훌쩍 넘은 내게 이야기할만하지 않은 신세한탄이었지만 난 묵묵히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들어주었다. 마리는  담배를 많이 피워서였는지 아니면 이전에 1년 정도 살았다는 아프리카 지역의 태양 때문인지 피부가 쪼글쪼글 주름이 많았다.  내가 파리 여행을 하면서 본 하늘하늘한 마른 몸에 먹는 거라고는 크로와상과 커피 한잔이 다인 것처럼 보이는 파리의 여자들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가끔 그녀의 집에 놀러 갈 때면 커피를 주었다. 커피 산지인 지역 시장에서는  갈았다기보다는 절구에 빻군 건 같은 아주 고운 원두커피를  비닐봉지에 넣어 팔았다.  마리는 이 커피를  컵에 넣어 뜨거운 물을 붓고 몇 번 저은 후에 커피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후 윗물만 따라 주었다. 종이필터나 드립퍼를 구할 길이 없는 곳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두커피다.  사약의 맛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마시고 나면 입안에 쓴 커피가루가 남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커피는 기다란 고깔 모양의 천 필터에 한 사발 정도 되는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에 여러 번 걸러서 연유와 설탕을 잔뜩 넣어  얼음 가득 넣은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는데 40도가 넘는 더위에는 그게 최적의 커피다.  달고 쓴 걸쭉한 끈적끈적한 맛.  마시면 벌떡 힘이 나는. 인도의 길거리에서 사 마시던 작은 간장 종지 만한 황토색 도기 그릇에 주던 짜이와 비견할 만한.


마리는 사약 같은 커피와 담배를 피우며 외로움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곤 했는데 어느 날은 급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내게 달려왔다.

"나 사랑에 빠졌어." 마리가 말했다.

"누구와?" 난 정색을 하며 물었다.

"너네 학교에서 일하는 프랑스어 선생님. A" 마리는 눈을 깜빡거리며 좀은 부끄러워했다. 

"아..... 그래.." 난 덤덤히 대답했다.

"A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어. A 너무 잘생기지 않았니? 이곳 사람들치고 키도 큰 편이고. 거기다 내게 너무 친절해." 마리는 좀 흥분한 듯했다.

"너도 A가 좋아?" 이런 질문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이 또 있을까.

"나도 관심이 있어." 

"그럼 잘됐네." 

난 차마 프랑스 선생님 A가 내게도 사랑한다고 말했다는 걸 마리에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며칠 전 학교 파티가  강가 레스토랑에서 있었다.  파티에서는 음악 선생님은 건반을 연주하고 선생님들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  플라스틱 물통에 얼음을 반쯤 넣고 거기에 맥주를 붓는다. 잔이 돌아간다. 맥주를 몇 잔씩 들이켜면 흥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춤을 춘다.  어색하게 맥주만 들이켜고 있는 내게 A가 와서는 춤을 청했다. 손을 잡거나 몸을 부여잡고 추는 춤이 아니라 그저 가까이 서서 바로 보며 빙빙 도는 정도의 춤이다.  

A가 내게 귀속말로 속삭였다. "사랑해요." 

학교에서 몇 번 오며 가며 인사만 나누는 사이인데  사랑이라니. 난 그저 웃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같이 일하는 여선생님이 내게 와 말했다.

"A랑 가까이 지내지 마. A 바람둥이야. 지난번에 왔던  미국인 영어 여자 선생님하고 같이 다녔었는데. 같이 미국에 간다니 어쩌니 하더니. 그 영어 선생님은 임기 끝나고 갔어."


학교에서 A를 오며 가며 만나면 지나치게 반가워하며 인사하는 통에 나는 그가 보이면 가능하면 멀찌감치 길을 돌아갔다. A는 외국인에게 그저 쉽게 반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외국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나..



그 이야기를 한 이후 마리는 내게 놀러 오는 날이 드물어졌다.

해가 어스름히 져가던 시간 마리가 왔다.  침울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냥 좀 이상해서." 마리가 말했다.

"요즘 A와 자주 만나. 그런데 어제 지나가다  A가 어떤 여자와 있는 걸 봤어. 나중에 우리 집 왔을 때 누구냐고 했더니. 여동생이라는데 너네 학교에서 그 여자를 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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