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주말 아침입니다. 오늘부터 탁구를 배우게된 아들을 데려다주는 길입니다. 아들의 민트색 티셔츠가 햇살을 받아반짝입니다. 제 마음속찰랑이는후회와 미안함이 아들의 등에 반사된 건지도 모릅니다.
며칠 전 아들을 많이, 많이 혼냈거든요.
아이가 얼이 빠지도록 혼을 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감정은, 제 말은, 제 행동은 아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엔 저를 향한 것도, 딸을 향한 것도, 남편을 향한 것도, 직장 동료를 향한 것도, 그리고 언젠가 깜빡이를 켜지 않고 제 앞에 끼어든 운전자를 향한 것도 있었습니다.한 마디 더 덧붙일수록 후회할 시간을 연장시킬 걸 알면서도 저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내리막을 내달리는 자전거같이 행동했습니다.
잠에 든 아이의 손을 잡습니다. 얼굴을 쓸어봅니다. 아이가 숨을 몰아쉬며 기지개를 켜는 듯하더니 자세를 바꿔 눕습니다. 아이의 속눈썹을 바라봅니다. 귓불의 실핏줄도 한참 바라봅니다. 어리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엄마의 불쾌한 감정을 다 받아내야 했던 아이를 보며 '차라리 반항이라도 하지 그랬어'라고 조용히 중얼거려 봅니다. 힘이 세다고, 뭘 더 아는 것 같다고, 내가 너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너무 어른스럽지 못하게 행동했습니다.
부끄러움이 엄습해옵니다. 방의 어둠이 부끄러움에 오롯이 집중하게 합니다. 부끄러움이 어둠을 타고 살갗을 쓸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습니다.
방에서 나와 목을 축이려 주방에 왔는데 식탁 위에 올려진 메모가 보입니다.
'엄마, 미안해. 나라도 미웠을 거야. 진짜 미안해...'
종이를 만지지도 못하고 물끄러미 보다가 괜히 거실로 시선을 돌립니다. 어둠이 내린 거실은 몇 시간 전의 소동을 고요한 얼굴로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자신에 대해 알기를 소홀히 한 것에 화가 난 여자가 자신보다 훨씬 작은 남자아이를 세워놓고 혼내고 있는 장면을, 쭈뼛거리며 그 주변을 맴돌던 여자 아이의눈빛을.
거실이 생각할 자리를 내주며 이제는 너를 돌아보라 합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사는 것이 불러온 결과를 보라고. 하지만 자신을 미워하지는 말 것이며, 후회할 짓을 한 걸 배움의 기회로 삼으라고.
아들은 그 이후로 저를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평소처럼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놉니다. 숙제를 하기도, 까먹기도 합니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하는 아들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몸은 저보다 작지만 그릇은 저보다 커 보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온갖 생각과 후회로 얼룩진 제 마음보다 훨씬 낫습니다.
아이들은 한결같은 마음을 저에게 보냅니다. 실수를 하는 자신을 그래도 사랑하냐고. 이렇게 모르는 것이 많은 자기를 그래도 사랑하냐고.
그리고, 자신은 엄마를 그래도 사랑한다고.
조건 없는 사랑을 듬뿍 주는 민트색 등짝이 오른쪽으로 코너를 돕니다. 놓칠세라 걸음의속도를 올려 따라갑니다. 새로운 배움을 시작한 아들을 응원하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눈물 머금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엄마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후회하는 것도 제 일이 아닙니다. 제 자리에서 배워야 할 것을 놓치지 않고 배우고, 아이와 나란히 걸어야 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등짝에 대고 중얼거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