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아픔이 아이의 아픔이 되지 않도록

by 하얀밤

4학년이 된 딸의 뒷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찰랑거리는 머리를 당장이라도 손으로 쓸어주고 싶습니다. 속눈썹과 볼의 솜털에 당장이라도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이렇게 예쁜 딸이 학교를 가기 싫다고 합니다. 어제 하루 종일 배가 아파 수업도 제대로 못 들었다고, 급식소에 정해진 자리를 찾느라 너무 힘들었다고, 밥을 먹자마자 담임 선생님께서 강당으로 모이라고 해서 체육을 시키는 바람에 속이 울렁거려서 학원도 못 가겠다고. 눈에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자 결국엔 소리 내 울어버립니다. 우는 딸을 덥석 안는 건 저의 습관입니다. 안으면 씩씩거리던 숨이 새근새근으로 바뀌는 걸 알거든요. 최근 제대로 못 먹어 더 가늘어진 어깨를 안으니 다 제 잘못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 아이가 왜 이럴까, 잘 먹고 잘 놀던 아이가 왜 이럴까..


딸이 힘듦을 호소하기 시작한 지 4개월이 넘어갑니다. 잠시 지나가는 소동일 줄 알았는데 장기화되니 아이는 점점 말라가고, 저도 걱정이 점점 커집니다. 밥도 싫다, 학교도 싫다, 학원도 싫다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화도 납니다. 달래다 달래다 제 안의 응어리에 불이 붙는 걸 느끼는 순간 제 눈빛과 말투가 변합니다. 저를 힐끔 올려다보는 딸의 눈빛을 통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엄마를 두려워해?'

억울한 마음도 들고 나는 이 마음을 어디다 풀어야 하나 싶어 저도 같이 울어버리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딸은 겨우 학교에 갔습니다.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이 너무 싫다는 말에 사람마다 어찌 다 좋을 수 있냐는, 저라도 위안받지 못할 말을 내뱉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는 엄마를 미워하기 딱 좋은 말입니다.


딸이 학교에 간 동안 지난 4개월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저는 딸의 교우관계가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교우관계가 문제이긴 했습니다. 그럼 그 교우관계는 어쩌다가 나빠졌을까?라는 질문을 처음으로 던져 보았습니다. 상대방 아이와 우리 아이의 성격 차이로만 생각해 왔기에 다른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던 중, 당시 딸의 친구들과 우리 아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친구와 가족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딸을 저는 다그쳤습니다. 가족에게 잘못한 아이들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냐고요. 여자 아이에게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지만 가족도 그만큼 중요했기에 마냥 딸의 편에서만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딸이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지만 분명하게 결정짓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결국 제가 답을 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멀리하라고요. 딸은 마지못해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럼, 그때의 저는 어떤 상태였을까요.

저 또한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컸었고,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는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니 퇴근 후에 아이들에게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었지요. 아이들에게 나의 감정을 전이시키지 말자고 결심은 했었지만,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와 책상 위의 쓰레기를 치우다 보면 어느새 눈에 쌍심지를 켠 엄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다정한 엄마와 불호령을 내리는 엄마 사이에서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저 또한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책을 하고 우울에 빠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힘 없이 한숨 쉬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도 엄마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들 품을 내주지 못하는 스스로가 미워 또 자책하고, 미안함에 자책하고. 온통 자책하는 날들이었습니다.


아,

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딸의 문제는 저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엄마가 스스로의 아픔을 못 이겨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동안 딸은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직도 엄마를 껴안고 자야 하는 엄마 껌딱지였기에 미묘하게 거칠어지는 엄마의 숨소리와 목소리를 금세 알아챘을 것이고, 자신이 해결하지도 못하는 엄마의 고통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관계나 학교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계속 아팠던 거지요. 원인이 바로 옆, 엄마에게 있었으니.


저는 '엄마가 다 미안해' 류의 자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문제의 원인이 엄마에게 있다는 저도 믿지 않는 케케묵은 이론을 가지고 오려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와 엄마의 마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새롭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요.


이제부터는 제가 행복해져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저를 사랑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겁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주문처럼 말하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요. 그래서 저를 사랑하는 방법의 하나인 글쓰기를 더 부지런히 하려고 합니다.

제 마음을 알게 해 주고,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을 위로하고 서로 공감하게 하는 글쓰기가 저는 너무 좋거든요.

이 시간의 조각들이 모여 딸의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기를 바랍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아프지 않아도 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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