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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Mar 13. 2022

타인을 지적하며 오늘도 저를 속였습니다

나아가기 위한 반성문

타인의 말과 행동 중 특별히 제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몸의 아픔을 호소하는 것과 무언가를 탓하는 행동입니다. 머리가 아프다, 어깨가 아프다, 발바닥이 아프다고 앓는 목소리와 구부정한 자세, 찡그린 얼굴이 새까맣고 매캐한 연기처럼 제 호흡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마음의 아픔이 몸의 아픔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자신의 아픔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의사의 무능을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거나 시대를 탓하는 모습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탓을 하기 시작하면 답을 찾을 수 없는데, 왜 '나'를 돌아보려 하지 않고 외부의 요인만을 저리도 부지런히 찾아댈까?'


우아한 사자처럼 높이 솟은 바위에 앉아 느긋하게 몸을 누이며 생각합니다. 자신이 풍성한 갈기를 휘날리는, 고독을 즐기는 멋진 사자라 생각하며 제 모습을 봅니다. 듬성듬성 빠진 털과 얼룩진 몸이 보입니다. 저는 사자가 아니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들이 저입니다.

그들은 제가 가장 인정하기 싫은 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보기 싫어서 꽁꽁 감추어 둔, 저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잘 숨겨둔 제 모습을 그들은 밖으로 꺼내는 것도 모자라 거울에 비친 것처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들이 불편합니다. 맞서 싸우다 지쳐 차라리 없었던 문제라 생각하자는, 없었던 꿈이라 생각하자는 유혹에 빠져버린 제가, 자신마저 속여버린 제가 더 교묘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자기 꾀에 빠진 저는 한 발 더 나아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을 합니다. 바로 '어쭙잖은 충고하기'입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스스로에게도 과제로 남아있는 해법들을 그들에게 조언이랍시고 해댑니다. 당연히 반발이 일어납니다. 반발하는 그들의 모습 또한 저의 것과 닮았습니다.


'이 쉬운 걸 왜 몰라, 왜 못해, 왜 자신을 보지 않고 주변을 탓해.'


도와준다며 이런 말들을,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그들에게 반복합니다. 그렇게 저는 저를 두 번  번 속입니다. 자신을 속이고, 저를 닮은 그들을 속입니다.


오늘, 남 탓만 하는 지인이 또 남 탓할 거리를 찾아 하소연하기 위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통화하는 내내 매캐한 공기로 호흡하는 듯 답답했습니다. 어떤 말로 설득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지인의 탈을 쓴 '저' 지독히 고집스러웠습니다. 남 탓이라는 덫에 걸린 '저'는 자신을 돌아보는 고통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편리한 사고방식에 도취되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말을 공격하고, 공감해주지 않는다며 원망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전화로 나눈 대화는 서로에게 몇 주간 풀어내야 하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 섭섭하다며 지인이 먼저 전화를 끊었습니다. 마음속에도 먹구름이 잔뜩 었습니다. 비를 흠뻑 머금은 먹구름이 이내 눈물로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저는 아픈 사람 마음에 생채기를 더하고 말았습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저란 인간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다시 전화를 걸어 나도 잘 모른다고, 내 것으로 만들지도 못했으면서 입으로만 내뱉은 말들이었다고 용서를 구해야 할까요.


마음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움이 더해져 갑니다. 이런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제보다 더 나은 제가 되어야 합니다. 저를 넘어서야 합니다. 실수한 저를 미워하고 탓하기보다 자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더 절실히 깨달은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탓을 하면 나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탓을 하는 편리함은 달콤한 사탕과 같아서 자꾸 주워 먹고 싶고, 먹은 만큼 치아를 상하게 합니다. 나를 꼭꼭 씹어 돌아보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건강한 치아를 말입니다.


한 발이라도 더 나아가는 내가 되어 제가 실제로 이루어낸 해법을 들고 지인을 다시 찾아가 참된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오만하지 않은, 진실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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