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어설픈 도전을 하다가 죽을 뻔한 적보다, 죽을 힘을 다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바람처럼 빠져나가는 의지 때문에 어설프게 죽어, 확실히 죽을 길로 가는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때에 비로소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이 죽을 길인지 살 길인지조차 계산하지 않고 그저 달렸던 때, 즉 '죽을 각오'를 했던 때 말이죠.
친정 엄마가 저와의 다툼 끝에 독립을 선포하시고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버린 날이 기억납니다. 새까만 우주 공간에잡을 끈 하나 없이 내던져진 것 같았습니다. 당장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유치원생 쌍둥이들은 울어대고, 직장일에만 매달렸던 남편도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직 제 힘으로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 오듯 쏟아지는 걱정과 불안들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직장에 연차를 냈습니다.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이고 유치원에 보낸 뒤 친정 엄마의 흔적이 가득한 주방을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어른으로서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저에게 언젠가는 닥쳐오리라 예상했던 순간이비로소 왔다는 것을요. 무언가로부터 계시를 받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시작!'이라고 외친 것처럼 그때부터 하루 종일 주방을 정리했습니다. 고추장, 된장, 간장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엄마와의 다툼의 씨앗이 되었던 저와 맞지 않는 살림들을 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엄마가 언젠가 오면 돌려드리기 위해 엄마의 물건들을 한 곳으로 모으고, 엄마가 드시던 반찬도 냉장고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텅 빈, 아니 비로소 '저'로 속이 가득한 저는 그렇게 움직이고 움직였습니다. 제 걸음과 손길이 스친 곳이 저를 닮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공간, 비슷한 물건들이 다른 빛을 내는 것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그때 느낀 에너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코 좋은 순간만 있지는 않았으나 친정 엄마로부터 독립을 하며 보낸 시간들은 저에게 저조차 몰랐던 힘이 있었음을 느끼게 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로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는 날들입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달려야 하는데 자꾸 피곤하다고, 이 정도면 되었다고 핑계를 만들고 핑계가 만든 따뜻하고 아늑한 굴 속에서 확실히 죽기를 기다리는 저를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어설프게 살려고 하니 오히려 에너지가 없어지고, 얇은 습자지 같던 잠시의 휴식과 게으름이 어느새 저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저는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때, 절벽의 끝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마다 다시 일어섰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저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必死則生必生則死'
잊고 지내던 표지판을 지팡이 삼아 짚고 다시 일어납니다. 살기 위해 죽을 각오로 다시 걷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