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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May 06. 2022

내 수고는 내가 알아주면 됩니다

나는 한 보따리를 준비했는데, 그만큼 준비하느라 내 것을 비우고 남에게도 비워달라고 굽신거리기까지 했는데 막상 그것을 받아 든 사람은 그걸 모릅니다. 왜 이것밖에 안되냐고, 심지어는 누가 그렇게까지 준비해 달라고 했냐며 반문합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하나하나 준비해왔는지를 설명하려 했을 것입니다.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들은 어떤 게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 희생을 각오했는지 조목조목 따지려 했을 것입니다. 게슴츠레해지는 상대의 눈과, 따분한 듯 귀를 후비적거리는 손가락이 제 심장박동수를 올리겠지요. 말이 꼬이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물컹하고 끈적한 섭섭함이 가슴 한가운데를 쓸고 내려가는 게 느껴지고 사용하는 어휘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합니다. 격해지는 표현들에 상대방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흥분해? 당황스럽다고 어깨를 으쓱하는 상대의 제스처가 찬물처럼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그의 마음과 내 마음이 더 이상 하나가 될 수 없음이 새로 산 수학책의 첫 단원처럼 신선하게, 익숙하게, 노곤하게 다가옵니다. 처음부터 그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또 굳이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 어떤 때보다 나의 어리석음을 인지하는 순간이, 자책하는 순간이 가장 괴롭습니다.



언젠가 방탄소년단의 멤버 '진'이 자신에게 했다던 말이 떠오릅니다.

"네 수고는 너만 알면 돼"

알리려 하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수고는 내가 압니다. 할 만큼 했다는 걸 내가 압니다. 나도 나를 잘 몰라줬으면서 어떻게 상대가 나를 알아주기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매번 관계를 시작하려 하는지요. 그 사람도 자기 수고를 몰라줘서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물컹한, 아니 어쩌면 가시 같은 섭섭함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을 지 모릅니다. 상대방에게 나의 수고를 설명하는 것은 내 수고의 100분의 1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뿐더러 서로의 섭섭함을 더 무겁게 만들 뿐입니다.


오늘, 너무 섭섭하여 바위를 머리에 이고 지내는 듯한 한나절을 보냈습니다. 너무 섭섭하니 얼굴에 웃음기도 사라졌습니다. 웃음기가 사라진다라는 것은 나를 돌봐야 하는 때가 왔다는 신호입니다. 오늘의 신호에 응답하겠습니다.

내 수고는 내가 알아주겠다고요.

그리고 이왕이면, 남의 수고도 알아줄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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