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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Aug 04. 2022

오전 6시 10분에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

'꾸준함'을 갖고 싶은 자의 반성문


푸른빛을 머금은 새벽.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거실로 나와 베란다 창을 향한 테이블에 앉습니다. 여름 나무가 무성한 잎을 이불처럼 덮고 새벽빛 속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 같습니다. 저층에 살면 계절이 지나가는 게 보여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며 노트북을 펼칩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듯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글로 남기고픈 생각과 장면이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노트북을 펼치면 하얀 화면처럼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틈틈이 메모해두었던 글감을 찾으려고 구글 keep에 접속합니다. 그 순간,


휙.


창 밖으로 누군가가 지나간 걸 느끼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듭니다. 하얀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우리집 앞을 지나 옆 동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제법 빠른 속도로 새벽 공기를 가르는 모습이 날쌔 보입니다. 시계를 보니 6시 10분입니다. 이른 아침에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다음 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거실 창을 보고 앉습니다. 오늘은 독서를 해볼까 하고 얼마 전 친구에게서 받은 책을 펼쳐봅니다. 친구가 잘 아는 분이 쓴 책입니다. 친구가 작가님께 두 권 선물 받아서 저에게 한 권 줬습니다. 이 책의 작가님은 아이를 셋이나 둔 어머니이면서 교사인 분으로, 새벽에 일어나 등산을 하고 남은 시간에 책을 쓰셨다 합니다. 친구에게 책을 건네받으며 "정말 대단하다"를 진심을 담아 연발했습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셋을 키우면서 새벽에 일어나 등산을 하고 글을 쓰고 출근까지 했을까?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책을 읽지도 않고 표지만 만지작거리다 상념에 젖어듭니다. 예쁜 그림으로 채색된 책 표지가 저를 꾸짖는 것 같습니다. 왜 '하루 이틀 정도'라고 자신에게 틀을 지우냐고요. 이 책을 쓴 사람이 초능력자가 아님을 네가 잘 알지 않냐고. 뭐든 간절함의 크기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실컷 혼나면서 울적해져 있는데 또 창밖으로 누군가 휙 지나갑니다.

어제 그 사람입니다. 하얀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를 입고 어제와 비슷한 속도로 달려갑니다. 또 6시 10분입니다.

"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심지어 가늘게 비가 내리던 그다음 날도 그는 우리 집 앞을 달려서 지나갔습니다. 탄탄하게 잡힌 근육이 노력한 시간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탄탄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굵고 힘찬 목소리도 들리는 듯했습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조차 멋진 배경으로 바꾸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창 읽고 있는 책의 작가님을 떠올렸습니다.


작가님과 창 밖을 달리는 저 사람의 공통점은 '꾸준함'입니다. 살면 살수록 '꾸준함'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깨닫습니다. 지성을 온통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것에 쏟아붓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부끄럽게 살다가 후회만 하며 죽을까봐 두렵습니다. 이 부끄러움은 윤동주처럼 행동하는 자의 부끄러움도 아니고, 자신을 갉아먹는 부끄러움입니다. 그럼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요. 그러게요. 왜 행동하지 않을까요. 얼마나 간절한 상황이 와야 부끄러움을 박차고 일어날까요.


오늘의 글은 하소연에 가깝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잘 쓰는 작가님들이 너무나 많이 계셔서 완성된 한 편의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글쓰기를 주저하게 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가 그냥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꽤 글이 길어지네요. 이런 글을 감히 쓰게 된 이유는, 저 같은 부담과 주저함을 느끼는 작가님들의 글을 최근에 많이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의 글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비슷비슷한다는 데에 안도를 하고 슬며시 미소도 지었답니다.


내일도 그 사람은 오전 6시 10분에 창 밖을 달리며 지나가겠지요. 제 손에 들린 이 책의 작가님도 지금은 퇴직하셨다지만 여전히 새벽 등산과 글쓰기를 하고 계실 겁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꾸준함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용기도 생깁니다. 근육도 필력도 꾸준함이 바탕이 되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통해 필력이 조금은 상승했겠지요. 어떤 발걸음도 헛된 것은 없습니다.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습니다.

네, 이 말은 제가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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